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1월3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9일 <한겨레>는 ‘한겨레 대표이사와 편집국장 사퇴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1면 알림에서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로부터 2019년 5월 9억원을 빌린 편집국 간부를 해고했다고 알렸다.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 편집국 간부의 실명을 밝히지 않는가. 한겨레가 자정 노력을 대외적으로 표방한 것은 가상하나, 이 사건은 단순 징계로 끝낼 수 없는 일이다. 해당 언론인의 실명 공개가 중요한 까닭은 그가 최근까지 편집국 신문 총괄이었고 2019년 3월 정치팀장, 2020년 이슈부국장 겸 사회부장으로서 사시에 영향을 주는 칼럼·기사를 작성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편집국 데스크로서, 기자로서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으로 민주 언론의 소임과 역할을 다 해왔을까. 그의 지난 기사들을 훑어보았다. 애꿎은 대상을 탓하고 꾸짖는 기사가 많아 어처구니없고 새삼스러웠다.
2020년 9월 그는 “기자로서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부정한 청탁을 가리고 덮은 일을 흔히 접했다”며 “공정의 기준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억울해하기보다” 그 가혹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기사에서는 오탈자에 가슴이 철렁하고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썼다. 맞춤법은 지키려 하면서 공정함은 깔봤다는 게 더 기막히다. 고 채현국 선생의 발언을 인용해 강직한 척 호통친 그의 기사에 답한다. “기자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시라. 까딱하면 모두 저 꼴에 당하니, 봐주면 안 된다”.
한겨레가 첫번째로 할 일은 그의 과거 기사와 업무 행태를 면밀히 분석해 돈에 유착한 위선과 악취가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것이다. 편집국과 기사 논조에 그가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 그의 게이트 키핑으로 인해 은폐한 진실은 없는지, 만약 그가 은폐하려 했던 진실이 있다면 그 또한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 왜곡된 진실이 있었다면 바로잡는 일에 용기를 내야 한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대장동 사건을 집중 취재해 보도하고 있는 <뉴스타파>는 지난해 12월29일
“김만배씨가 기자들에게 현금 2억씩, 아파트 분양권도 줬다”고 보도했다. 김씨가 언론사 ‘기자 관리’를 ‘끝없이’ 하면서 카톡으로 차용증을 받고 기자들에게 돈과 아파트 분양권을 줬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2020년 7월29일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실소유자) 녹취록에 충격적인 내용이 있음을 알렸다. 정영학씨가 김씨에게 “형님, 맨날 그 기자분들 먹여 살리신다면서요”라고 말하자 “걔네들은 현찰이 필요해. 걔네(기자)들에게 카톡으로 차용증을 받어. 그런 다음에 2억씩 주고. 그래서 차용증이 무지 많아, 여기. 분양받아준 것도 있어. 아파트. 서울, 분당에”라고 말한 녹취록을 공개한 것.
한겨레뿐만 아니라 <중앙일보>, <한국일보> 간부, <채널에이> 기자가 김씨로부터 대여금 형식의 큰 돈 또는 명품 구두를 받았다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난지라 녹취록의 신빙성이 크다.
김씨가 ‘현직 기자’ 신분으로 기자 경력을 활용해 화천대유 대주주가 된 것이 대장동 사건의 큰 아이러니다. 수천억원의 배당금이 나오기 시작한 2019년 봄, 일부 기자들 사이에 달달하고 요란한 돈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이들 사이에 어떤 유혹과 협박이 오갔을까. 언론을 막아야만 했던 은폐된 진실은 무엇일까.
언론사 기자와 대장동 사건의 금전 거래 정황은 막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쥐가 있기는 할까. 한겨레는 과연 미스테리한 대장동 사건의 진실을 용감히 알릴 수 있을까.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