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하신 외조부께서는 내가 어릴 적 세로쓰기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되던 종이신문 기사 제목을 가위로 오려 유리병에 담아 두시곤 했다. 그리고 손주들이 올 때마다 그 병에 손을 집어넣고 무작위로 뽑아 읽게 하셨다. 한문 공부에 신문이 최고일 뿐 아니라 소리 내서 읽으면 말하기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외조부 덕에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신문 보는 습관을 키웠다. 어쩌다 보니 <한겨레> 지면에서 4년 넘게 칼럼도 썼다. 만약 외조부께서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셨다면 손주들에게 읽히게끔 하셨을까. 아마 유리병에 담아 영구히 밀폐하셨을 것 같다. 봐야 할 뉴스나 정보보다 볼 필요조차 없는 거기서 거기인 ‘복붙’(복사해서 붙인) 기사 제목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2024년부터 학교 교육을 통해 매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말 확정된 교육부의
‘2022 개정 초·중등학교 과정’ 보도자료를 보면 “디지털 문해력(리터러시) 및 논리력, 절차적 문제해결력 등 함양을 위해 다양한 교과 특성에 맞게 디지털 기초소양 반영 및 선택 과목을 신설”할 수 있게 되었다. 초·중학교에서 ‘매체’ 영역을, 고등학교 선택 교육과정에서 ‘문학과 영상’, ‘매체 의사소통’ 등의 선택 과목을 신설해 매체 관련 교육을 초등학교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구성한 것이 큰 변화이다. 수학 과목에서도 지능 정보화에 필요한 수학 개념과 원리를 바탕으로 디지털 역량을 함양하도록 개정했다. 국어, 사회, 수학, 영어, 정보 과목에서 미디어 교육을 통합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미디어와 디지털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어려서부터 미디어와 정보·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까닭은 미디어의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매일 생산되는 뉴스와 정보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지고 있는데, 부모나 보호자, 선생님도 미디어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또 플랫폼이나 포털 사이트 같은 콘텐츠 제공자가 선한 의도를 갖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지속 가능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불량식품과 마찬가지로 불량 콘텐츠, 불량 정보, 불량 플랫폼이 많다. 기관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디지털 기술을 도구화하는 것을 ‘편리함’으로 착각할 수 있다.
실제로 미디어 기술은 우리의 ‘인지적 게으름’을 지렛대 삼아 발전해왔다. 미디어 플랫폼들은 이용자의 검색 기록, 이용 기록, 구매 기록 등을 활용해 ‘추천’ 알고리즘을 학습시켜 우리가 굳이 수고롭게 심사숙고할 필요 없는, 편리한 제안을 수시로 해온다. 직관적으로 판단하기 쉬운 지름길을 친절하게 ‘추천’하고 안내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능동적이고 옳은 선택을 하는 기분이 들게끔 만들기도 한다. ‘좋아요’ 공감 버튼이나 댓글 달기도 재미 삼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재화로 활용하는 플랫폼 기업의 소셜리티 설계와 맞춤형 기술의 의도와 활용을 이해해야 한다.
초·중등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앞으로 고등교육기관의 미디어 교육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새 학기 강의를 앞두고 고민이 크다. 뉴스와 포털 사이트, 동영상 플랫폼을 보고 있노라면 내 디지털 문해력으로는 이해 불가한 표현과 댓글, 배열이 너무 많아서다. 이 희한한 현상에 대한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다. 그야말로 ‘혼돈 오브 카오스’에 빠졌으니까!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