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국방송>(KBS)의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 검증보도에 대해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위원회 산하 기구로서 여당 쪽 추천 위원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보도교양방송 특위는 이미 중징계 의견을 냈다. 이제 곧 방송통신심의위 본 회의에서 의결을 하게 될 텐데 이 위원회 구성도 정부·여당 편향이라서 방송사에 남을 또 한 번의 ‘정치 심의’가 우려된다.
한국방송은 지난 6월 문 후보자가 지명된 다음날부터 이틀에 걸쳐 검증 리포트 5꼭지를 내보냈다. 그 중 3꼭지는 교회 강연 발언 몇 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나머지 2개는 그가 썼던 칼럼과 대학교 강의 내용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강연 발언 보도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짜깁기를 통해 전체 강연의 취지를 왜곡했다”는 것과 “특수 공간에서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문 후보자의 낙마를 달가워하지 않는 쪽의 궁색한 자기위안 논리일 뿐이다.
모든 언론의 기본은 ‘짜깁기’를 통한 사실과 진실의 전달이다. 이번 경우에 해야 하는 짜깁기는 강연 취지의 요약이 아니라 그의 역사관을 나타내는 중요 발언들을 찾는 것이었다. 행정부 2인자이며 대통령 궐위 때 권한을 대행할 국무총리 후보자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문제적’ 발언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발언들의 문제 여부는 다른 언론을 포함한 공론의 과정에서 검증될 것이었다. 결국,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부분의 주류 언론과 여론은 문 후보자의 발언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특수 공간이며 신앙적 발언이라고 해서 사회와 유리된 것으로 볼 수도 없다. 교회 강연 화면을 보면 그는 이미 ‘대기자’와 ‘중앙일보 주필’ 등의 직책으로 소개되고 있다. 총리 후보자의 종교관이 국가관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국민이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6·25를 “미국을 붙잡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총리 후보자가 말했고 그것이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국민들이 생각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
한국방송의 보도와 그 밖의 여러 검증 사실들을 바탕으로,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문 후보자의 대응 탓으로 여론은 부정적으로 흘러갔고 그는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이제 한 단락 끝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 원인이 왜곡보도라며 보복하려는 엉뚱한 시도가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8년 졸속적인 쇠고기 협상을 반성하여 추가협상을 해냈다던 여권이 사후에 <문화방송>(MBC)의 <피디수첩> 때문이라며 무리한 징계와 형사처벌을 총동원한 일을 연상시킨다. 굳이 이번 보도의 잘못을 찾자면 요약 자막을 “‘일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 발언’ 파문”이라며 스스로 ‘파문’이라고 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정성은 한국의 텔레비전 뉴스에서 하루에도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좋다. 정파적 태도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파적 임명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위원들의 결정으로 이 보도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배했다고 할 것인가? 여권에 부정적인 보도에 대해 여권 추천 위원들이 ‘객관적’으로 심의할 수 있을까? 여권 추천 위원들이 다수인 국가기관이 여권에 부정적인 보도를 제재하는 것은 공정한가? 지난해 7월 남북정상회담 녹취록을 발췌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왜곡했던 보도는 왜 제재하지 않는가? 심의위원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주길 간절히 부탁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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