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700 메가헤르츠(MHz) 주파수 대역의 사용을 놓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주파수 대역은 원래 지상파 방송사들이 아날로그 방송용으로 써 오던 것이다. 2012년 12월 지상파가 아날로그 송출을 중단하고 전면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폭이 108 메가헤르츠 달하는 이 대역은 비게 되었다. 디지털 방송은 600 메가헤르츠 대역 이하의 주파수만을 사용하여도 되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비게 된 700 메가헤르츠 대역 중 40 메가헤르츠 폭을 이동통신용으로 우선 배정하겠다는 내용의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을 지난해 말 제시하였다. 최근에 미래부는 세월호 참사로 조성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20 메가헤르츠 폭을 재난안전통신망에 배정할 것도 발표했다.
지상파 방송사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700 메가헤르츠 대역은 법적으로 지상파 방송용으로 규정돼 있으며 방송 기술과 콘텐츠 발전을 위해 지상파가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상파 쪽은 텔레비전이 고선명(HDTV)을 넘어 초고선명(UHDTV)으로 발전하는 추세를 따라잡기 위해서도 이 대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상파 방송 기술인들은 지난 6일 ‘국민행복 700 플랜’을 발표해, 초고선명 텔레비전으로 전환하기까지 걸리는 12년 동안 이 대역 중 54메가헤르츠 폭만 쓰게 해주면 나중에 최대 150 메가헤르츠 폭을 반납하겠다고 약속했다.
미래부는 통신 쪽에 기운 것 같다. 주파수를 통신용으로 할당하면 경매를 통해 국고 수익을 올릴 뿐 아니라 경제적 효과도 얻지만 방송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방송용 주파수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하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700 메가헤르츠 대역은 초고선명 텔레비전에도 써야 하며, 주파수 할당 문제는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가능하면 통신용 40 메가헤르츠 폭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물러섰다. 제3자들은 귀한 자원을 놓고 방송계와 통신계가 ‘밥그릇 싸움’을 한다며 양시양비론을 편다.
사업자들은 자신들의 이익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정부는 이해관계의 중재보다는 공적 자산인 전파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쓸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방송 차원에서는 보편적 서비스 원칙이 유지되는 방안을 우선해야 하겠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 5개 채널 정도의 무료 보편적 서비스가 가능했다면 현 디지털 시대에는 그 이상이 가능하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나라들이 디지털 전환과 함께 많게는 40여개에 이르는 무료 지상파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시청자는 고선명 화질만을, 그것도 디지털 유료방송에 가입한 사람들한테만 가능할 뿐이다. 무료 다채널 혜택은 받지 못한다. 이제 초고선명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이것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한국은 초고선명 화질은 물론 고선명 다채널 서비스도 유료방송에 가입해야만 가능한 국가가 될 것이다.
미래부는 최근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사에 ‘8레벨 잔류 측파대’(8-VSB) 변조방식을 허가했다. 저가 아날로그 서비스 가입자들이 디지털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아도 고선명 채널을 서비스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값싸게 디지털 서비스를 하는 것 같지만 지상파로 무료로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케이블로 유료화할 뿐 아니라 케이블의 장점인 양방향성은 포기하는 거꾸로 된 정책이다. 무료로 할 수 있는 것을 유료로 하는 정책, 유료로 하는 것의 품질은 낮추는 정책, 이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면 참 안타깝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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