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적용대상에 언론인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 굵직한 현업 언론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다. 언론이 권력 감시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높은 수준의 자유와 자율을 보장해야 하는데, 언론에 대한 권력의 임의적인 개입의 여지, 곧 이 법을 도구 삼아 비판적 기사를 쓴 언론인을 표적 수사하는 등 악용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전국의 신문발행인 모임인 신문협회는 아무래도 기업의 논리가 강한 단체니 그렇다 치고, 편집인과 기자들의 모임까지 김영란법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의외였다. 그래서 나는 김영란법의 어느 대목에 그런 위험요소가 있는지를 찾기 위해 법의 전문을 읽어 보았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청탁’이라기보다는 ‘부탁’이라고 하여, 관행적으로 인정해 온 모든 행위가 이 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다.
‘공직자’에게 금지한 행동들을 언론인들에게도 꼭 같이 적용한다면, 앞으로 기자들도 참 피곤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두고 언론자유를 위축시킨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김영란법이 언론인에 대한 표적수사의 빌미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주장은 아마도 공직자가 수사대상이 되는 경우를 규정한 법 22조(벌칙) 때문일 것이다. 22조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공직자와 배우자가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이상 또는 연간 300만 원 이상에 해당하는 현금이나 술, 골프, 교통, 숙박 등의 접대를 받으면 수사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표적수사의 대상이 되려면 100만원, 또는 300만 원 이상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받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받은 경우를 상정하여 걱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한겨레> 창간 당시 창간에 참여한 기자들은 ‘촌지’ 안 받기를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로 설정했다. 그래서 내부 윤리강령에 현금 등의 촌지는 전혀 받을 수 없고, 선물은 부득이한 경우 5만 원어치 이하만 받는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100만 원부터 수사대상이 된다는 규정은 어쩌면 서민의 눈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관대한 규제로 비칠 수도 있다.
언론인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특별한 대우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를 들면 기자가 취재원인 공공기관의 장에게 무엇인가 부탁을 하면(선의의 부탁인 경우가 많지만), 부탁받은 사람은 최선을 다해 이를 검토한다. 언론사가 기업에 대해 광고를 부탁하면, 기업은 웬만하면 이를 들어준다.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은 언론인의 부탁을 그들은 ‘부탁’이 아니라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이고, 소홀히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공직자들에게는 괜찮은 금지조항들을 언론인들에게는 적용하지 말라는 주장은 언론인의 몸에 배인 특권의식에서 나온다. 언론의 자유와 자율은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와 자율은 도덕적인 우월성에서 온다. 청탁하지 말고, 촌지 받지 말라는, 모든 공직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조문을, 언론인은 공직자가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적용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은 보기가 참 민망스럽다. 반대로 이법을 지키겠다고 앞장서 나서면서, 도덕적인 우월성을 보여줄 때, 언론단체들이 주장하는 권력 감시 기능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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