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 아직도 죄가 되나? 지난 4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린 시민 박성수씨가 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단에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이유였다. 이보다 2주 전 아프리카의 짐바베에서도 무가베 대통령을 비난한 죄로 10여 명의 시민이 구속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무가베는 총리와 대통령으로 37년 간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다.
민주 선진국에서도 대통령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시민이 재판에 회부되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 2008년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에 한번 있었다. 2008년 2월 28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파리의 농업전시회 시찰을 갔을 때였다. 시찰하면서 관람객들과 악수를 하는데 한 시민이 악수를 거절하면서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하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사람들 보는데서 무안을 당한 사르코지는 “그럼 꺼져”라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시민도 “나를 더럽히지 말란 말이요”라고 되받았고, 대통령은 “그럼 꺼져. 형편없는 머저리야!” 하고 지나갔다. 이 장면을 두 프리랜서 기자가 전부 녹화해서 <파리지엥> 신문에 팔았다. <파리지엥>이 인터넷에 이 동영상을 올리자 클릭 수가 순식간에 수백 만에 이르렀고, 전 유럽 신문과 방송이 잇달아 퍼날랐다. <에이피>(AP)통신, <비비시>(BBC)는 물론이고 <시엔엔>(CNN)도 그 동영상을 내보냈다.
같은해 10월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 중부의 도시 라발을 방문했을 때였다. 사르코지의 정책을 반대하는 좌파 정치인 에르베 에옹이 사르코지가 말한 “꺼져, 형편없는 머저리야”라는 구절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대통령 환영 행렬에 나타난 것이다. 프랑스에는 1881년 7월 29일 공포된 ‘언론자유에 관한 법’이 있는데 그 26조에 대통령 모독죄가 규정돼 있다. 말이나 인쇄물, 영상, 그림, 조각 등 모든 매체를 통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동은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그러나 이 법은 제5공화국 드골 대통령 때 여섯 차례 적용된 경우를 제외하면 사문화된 법이었다. 지스카르 데스탕 대통령은 스스로 이 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를 이은 미테랑 대통령이나 시라크 대통령도 비슷했다.
그런데 라발시 경찰과 검찰은 에르베 에옹을 심문하고 그에게 이 법을 적용했다. 반 세기 이상 잠자던 법을 누가 왜 깨웠는가? 그건 바로 사르코지 대통령이라는 것이 이 문제를 책으로 다룬 라파엘 멜츠의 해석이다. 한국의 대통령 모독죄도 같다고 본다.
프랑스 법원은 에옹에게 벌금 최소액인 30유로(한화 약 4만원)를 부과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무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에옹은 가벼운 벌금에 만족하지 않고 상고했다. 프랑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자 에옹은 유럽인권법원에 제소했다. 표현의 자유와 정권비판의 자유가 걸린 중요한 문제에 대한 원칙을 법적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럽인권법원은 2013년 3월 14일 프랑스 법원의 판결이 정치적 성격의 비판을 위축시킬 수 있는 부당한 결정이라고 판결했다. 이 결정에 따라 프랑스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죄를 폐지해야 했다. 유럽인권법원의 결정은 47개 회원국 전체에 유효한 것이므로, 유럽에서는 더 이상 대통령에 대한 모독죄가 존재할 수 없게 한 결정이었다. 대통령 모독죄는 민주국가에서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청와대와 경찰이 명심할 일이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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