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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미디어 전망대] 따옴표 제목의 선전 전략 / 강형철

등록 2015-07-13 20:30

한국 언론은 기사 제목에 따옴표 달기를 좋아한다. 지난달 24일치 <한겨레> 수도권판을 임의로 골라 세어보니 총 32면에 실린 기명기사, 칼럼, 사설 89개 가운데 43개(49%)가 제목에 따옴표가 있었다. 소제목을 포함하면 그 비중은 더 높다. 이날 1면 헤드라인은 작은따옴표 친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다. 같은 날 <조선일보> 종합섹션 총 32면을 같은 방식으로 보니 기사 92개 가운데 54개(59%) 제목에 따옴표가 있다. 1면 머리기사 제목은 큰따옴표로 “우리는 대통령이 버린 군인의 부모였습니다”이다. 조선일보는 한겨레보다 큰따옴표 비중이 높았다. 방송뉴스는 더 심하다. 같은 날 <한국방송>(KBS) <뉴스 9>의 리포트 기사 33개 중 26개(79%)가 따옴표 제목이다.

한국 사례를 미국 <뉴욕타임스>와 비교해 보면 큰 차이를 알 수 있다. 같은 날 이 신문 뉴욕판 종합섹션 총 23면에는 기사 72개가 실렸는데 그 중 단 2개만이 따옴표 제목이었다. 따옴표 한 개는 드라마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뉴욕시의 주택정책 이름이었다.

언론은 객관을 가장하면서 자신의 주관을 말하려는 전략으로 큰따옴표를 쓰곤 한다. 연평해전 전사자 중 특정 유가족을 인터뷰하고, 특정 내용을 요약해서 싣고, 다시 그 내용 중에서도 특정 문장을 따서 제목으로 삼는 것에서, 그리고 이것을 1면 머리기사로 배치하면서 언론사는 스스로 말하고 있다. 2013년 한국방송은 국가정보원이 만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근거로 “엔엘엘(NLL) 바꿔야”라는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실제로 그 말을 한 것이라고, 즉 객관적인 보도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맥락을 잘라낸 인용은 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작은따옴표는 맞춤법 상으로는 혼잣말에 쓰는 것이지만 단어를 강조하거나 익숙치 않은 고유명사를 일컬을 때도 쓴다. 그런데 언론은 ‘낙인찍기’(name calling)에 이것을 동원한다. 낙인찍기는 1930년대 미국 선전분석연구원이 해부한 나치 프로파간다(선전) 전략 중 하나다. 이 기법은 나쁜 이름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과 보수언론 <폭스뉴스>는 의료보험개혁법안(Affordable Care Act)에 ‘오바마 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이것이 전형적인 편가르기 프레임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법안에 대해 반사적으로 부정적 생각이 들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 통과 다음날인 지난 5월 30일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을 크고 굵은 글씨로 ‘입법부 독재’라고 달아 강렬한 낙인찍기를 선보였다. 위에서 언급한 한겨레의 ‘현대판 음서제’도 그렇고 메르스 확산 원인으로 일부 언론들이 지목하는 ‘의료 쇼핑’도 언론사의 생각이 들어간 낙인찍기 사례들이다. 때로 낙인찍기와 반대로 ‘통일대박’ 등 취재원이 만든 미사여구를 그대로 따옴표로 제목에 옮기면서 언론이 선전도구를 자임하기도 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세상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기능이다. 언론은 주관적 견해를 밝힐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을 가장한 주관은 프로파간다다. 기사 제목의 따옴표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언론사가 자사의 세계관을 점잖게 펼치면 권위언론이 되지만 이용자를 특정방향으로 몰아가려고 꾀를 쓰면 정파언론이 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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