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주주 통신원
한겨레와 6만7천 주주 사이에 <한겨레:온>이 있다. 주주들이 만드는 온라인 소통 공간이다. 한겨레 소식도 전하고 주주들 사는 얘기도 담는다. 전국에서 150명이 ‘주주 통신원’으로 활동 중이다.
9일 아침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1987년 민주언론에 대한 시민의 열망을 담아 만들어진 <한겨레>가 15일로 창간 28돌을 맞는단다. 스물여덟 청년으로 성장한 한겨레의 생생한 모습을 궁금해하는 주주와 독자들이 많았다. 6만7천여명의 주주와 전국의 독자를 대신해 ‘아줌마 주주통신원’이 세계 유일의 국민주 신문을 탐방해보기로 했다.
지하철 공덕역 6번 출구를 나와 만리동 고개 방향으로 800미터쯤 걸어가니 건축가 조건영씨가 설계했다는 한겨레신문사 사옥이 나왔다. 황지우 시인은 사옥이 완공되자 “건축 주위로 몰려 있는 ‘예리한 긴장감’으로부터 어떤 ‘싸움의 기록’을 읽는다”며 “60년대 서울의 목탄화 같은 풍경 속에 정지시켜 놓은 듯한 외장 마감이 다정하지만 우울해 보인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2016년 5월 햇살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한겨레는 박수근의 목탄화에 어린아이 색동옷을 입힌 듯, 공주 활옷을 입힌 듯 고우면서도 강렬하고 산뜻했다.
3층 로비에 들어서니 생옻칠 장인 이익종 작가와 나전 끊음질 장인 황삼용 작가가 만들었다는 ‘큼지막한 조약돌’ 3개가 놓여 있다. 첫인상은 ‘반짝반짝’. 벽면엔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이란 글귀가 붙어 있다.
갑자기 시끌벅적하다. 초대 사장 송건호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로비 옆 ‘청암홀’에서 들리는 소리다. 서울의 한 중학교 여학생들이 와서 한겨레신문사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있었다. “한겨레가 세계 유일의 국민주 신문인 거 아세요? 최초로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선보였어요~”라는 진행자의 설명에 다들 “우와~” 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한겨레’의 시작이 국민모금이었고 세계 유일의 국민주 신문이 한겨레라는 점을 대부분의 학생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슈퍼데스크 중심 방사형 구조
의자만 돌리면 곧바로 구수회의
각 언론사 모니터링 장비 곳곳에
오후 6시 지면 꼼꼼히 점검
밤 9시에 또 한차례 회의
하루가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한겨레의 심장인 7층 편집국. 폭풍 전야처럼 ‘조용한 분주함’이 공기를 압도했다. 들어서자마자 방사형 공간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중앙엔 ‘슈퍼데스크’란 명패 아래 원형 탁자가 놓여 있었고, 편집국장, 신문부문장, 디지털부문장, 총괄기획에디터, 전략부국장 자리가 둥그렇게 배치돼 있다. 의자만 뒤로 돌리면 곧바로 구수회의를 할 수 있는 자리배치였다.
책상엔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고, 기둥과 벽면엔 각 언론사의 누리집을 번갈아 보여주는 커다란 모니터가 여러 대 걸려 있다. 아날로그 종이신문과 디지털뉴스의 어색한 공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한겨레 주주통신원 안지애씨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편집국 편집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0시30분, 딩동댕동~ 학교에서나 울릴 법한 벨이 울렸다. 백기철 편집국장이 아침 편집회의를 알리는 소리다. 긴장감이 더해지며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에디터들이 하나둘 회의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편집국 한쪽 구석에 마련된 회의실은 투명한 유리벽이다. 그런데 모두 맨손으로 회의실에 들어온다. 회의 자료는 어디 있지? 비서가 있어서 다 프린트해 놓은 건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자 회의자료를 프린트해서 들고 왔지만 이제는 다르다. 회의실 탁자 위엔 태블릿피시(PC)가 하나씩 놓여 있다. 편집회의 자료가 이미 전송돼 있었다.
편집회의는 공기업 낙하산 인사, 북한 노동당대회, 단원고 교실 존치 문제, 김앤장의 옥시 유해성 보고서 은폐 의혹 등 묵직한 주제들을 다뤘다. 주요 사안들을 점검한 뒤엔 각자 스마트폰을 켜고 <한겨레> 누리집 기사들을 점검했다. 신문 1면에 어떤 기사를 쓸지, 기사들을 면별로 어떻게 배치할지는 그다음이었다. 기사를 어느 방향에서 쓸지, 취재는 어느 정도 되어 있는지, 각 면에 어떤 기사를 어떤 크기로 배치할지까지 논의했다. 회의엔 도통 신경을 쓰지 않고 연필로 뭔가 스케치에 열중하는 사람이 보여 ‘어느 교실에나 딴짓하는 사람은 있는 법이지’ 하는 생각에 ‘풋’ 웃음을 터뜨릴 뻔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그림판을 맡고 있는 권범철 화백이었다.
점심시간 뒤에도 회의실과 슈퍼데스크에선 수시로 길고 짧은 회의가 진행됐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자 다시 벨이 울린다. 기자들의 손놀림은 엘티이(LTE)급이 되고 다들 “지금 나에게 절대 말을 걸지 마시오”라는 말을 온몸에서 아우라로 내뿜으며 컴퓨터를 노려보고 있다. 국장의 마감 독촉 벨소리였다. 6시가 되자 다시 벨이 울리고 저녁 편집회의가 시작됐다. 초벌로 제작된 지면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회의였다. 각 부문 에디터들이 제목이나 내용을 수정할지 여부 등을 얘기하며 지면을 훑어나갔다.
에디터들 퇴근은 언제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밤 9시쯤 또다시 회의가 열린다고 했다. 퇴근은 기약 없어 보였다. 한겨레의 하루는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기자들은 무한 충전되는 에너자이저인 양 늦도록 반짝이지만, 아줌마 주주통신원은 아이를 재우기 위해 집에 갈 시간, ‘기자 아무나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의 하루를 경험하며 국민 성금을 모아 세계 최초의 국민주 신문을 만들고, 인터넷 뉴스사이트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글로벌 웹툰회사 ‘롤링스토리’, 모바일 미디어 플랫폼 ‘뉴스뱅’까지 끊임없는 변화를 꾀하며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보폭을 같이해 나아가는 한겨레의 노력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국민주 신문사를 만든 대한민국 국민도 대단했고, 언론탄압에 맞서 올곧음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꿋꿋이 버텨준 한겨레도 장했다. 송건호 선생이 일선 기자부터 한겨레 퇴임 때까지 해마다 쓰던 취재수첩 첫 장에는 언제나 안중근 의사의 어록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인내와 노력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 인내야말로 환희에 이르는 길이다.” 그야말로 국민과 한겨레가 같이한 인내와 노력이 지금의 한겨레를 만들었을 거다. 2016년 한겨레는 ‘한겨레 두근두근 비전’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했다. ‘국민주 언론으로서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사명 아래 우리 사회의 모든 가정과 소통하는 한국 사회 1위 미디어 채널을 만들겠다는 비전이라고 한다. 이 비전처럼 한겨레가 한국 사회 1위뿐 아니라 세계 1위의 미디어 채널이 되는 꿈을 꾸어본다.
안지애 <한겨레:온> 주주통신원
phoenicy@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