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텔레비전과 종이신문이 주된 정보원이었던 시기와 비교해 인터넷과 사회연결망서비스 이용이 보편화된 지금의 유권자들이 더 높은 수준의 정치 지식을 갖췄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정치 지식 수준의 증가는 가용한 정치 정보 양의 증가와 비례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 원인을 미디어 환경 변화에서 찾는다. 미디어 환경이 정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하는 학자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두 가지이다. 정보 유통 구조가 미디어 환경에 의해 결정되므로 뉴스를 자발적으로 찾아나서는 게 아니라 그저 흡수할 뿐이고, 유권자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토대로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곧 선거가 열리므로 누군가를 선출해야 하는 이유를 언론이 반복해서 알려준다면 유권자는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디어 환경이 권력의 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프린스턴대학의 프라이어 교수는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미디어와 미디어의 속성이 정치 관심도와 투표 참여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설명한다. 1970~80년대는 텔레비전 외에 다른 미디어를 선택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시민들의 정치 관심도는 낮았고 정파적인 성향도 심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케이블 텔레비전 및 인터넷의 등장으로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되자 정치 관심도가 낮은 이들은 뉴스 대신 오락물을 즐기고 뉴스를 선호하는 이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더 많은 뉴스를 탐색할 수 있게 됐다. 결과적으로 뉴스 노출이 정치 참여 동기를 자극하기 때문에 오락물을 즐기는 이들은 정치에 덜 관여하게 되고 뉴스를 즐기는 이들이 정치에 더 참여하는 상황이 되어 두 집단 간 정치 참여의 불평등은 이전보다 더 커지게 됐다. 정치적 선택 영역에서도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진다. 퓨리서치센터가 2014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 이념 측정에서 양 극단에 위치한 이들의 비율이 지난 20년 동안 10%에서 21%로 두 배 증가했는데, 이들은 주요 정치적 이슈의 옳고 그름을 이념적 잣대로 평가했다.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의적인 태도는 각각 2.4배(16%→38%)와 2.5배(17%→43%) 높아졌다. 일관된 편향성을 보인 두 집단은 주요 정보원과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 평가에서도 극단적인 차이를 보였다. 일관되게 보수적인 이들은 <폭스뉴스>를 가장 선호하고(47%), 사회연결망서비스 환경에서도 자신과 이념성향이 같은 이들과 교류하는 이들도 절반에 가까웠다(47%). 반면, 일관되게 진보적인 이들은 대개 공영방송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뉴스를 학습하지만, 이 가운데 44%는 사회연결망서비스 환경에서 정치적 의견이 다른 이의 접근을 막거나 친구 끊기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연구들은 다매체 다채널 환경에서 정치 이념이 정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미디어 환경에 의해 조절된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한쪽의 입장을 편드는 미디어를 선택하는 이들은 미디어에 노출되기 전에 이미 편향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이 제기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의 미디어 환경이 일관되게 보수적인 집단의 목소리를 과도하게 반영하여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해도 뉴스와 저널리즘의 공적 책무는 다르게 정의될 수 없다. 계층 간 참여 불평등과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언론을 감시하고 평가해야 한다. ‘미디어 전망대’의 필진이 바뀌었습니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 김세은 강원대 교수,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정재민 카이스트 교수가 돌아가며 연재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필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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