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진보언론과 시민 사이의 갈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진보언론의 딜레마, 즉 ‘구조적 관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구조적 관성이란, 조직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핵심 특성을 바꿔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개별조직의 문제라기보다 조직군의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진보언론 전반의 문제를 돌아보는 데에 적합한 개념이다. 진보언론의 적응을 요구하는 새로운 환경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수용자와의 관계 변화, 즉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깨어 있는 시민’의 출현과 진화다. 이것은 물론 진보언론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최근에 전개되는 시민의 관여는 진보언론을 상대로 이뤄지기에, 이는 진보언론의 문제로 더욱 부각되었다. 언론과 수용자의 관계는 오래도록 비대칭적이었다. 언론은 뉴스를 매개로 수용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지만 권력은 언론에 있었다. 권력관계는 계층적 차이를 반영한다. ‘엘리트로서의 기자, 가르쳐야 하는 계몽의 대상으로서의 수용자’라는 관계 도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한 권력관계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앞세운 관계는 불안정하다. 대부분의 뉴스가 실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정파성으로 가득한 뉴스, 저열한 언어로 사회갈등을 부추기는 언론, 거침없이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기자들을 보면서 시민은 언론을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 수많은 팟캐스트와 1인미디어 등 대안언론의 ‘자유경쟁’ 덕분에, 과거 언론이 독점하던 의제 설정, 담론 생산의 권위와 권력은 분화와 해체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시민이 정치 참여의 적극적 주체로 거듭나면서 언론과의 관계도 대칭적이고 역동적인 국면으로 바뀌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데도, 진보언론은 이러한 새로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9년 만에 맞이한 진보정부 체제다. 큰 틀에서 이념적 방향성을 같이하는 정부의 출범을 전후하여 진보언론은 다소 혼란스러운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보수정권 아래에서 ‘직진’만 하면 됐던 진보언론은, 새로운 정치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이 작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본질은 권력 감시와 비판이지만 바람직한 사회변화를 희구하는 시대정신의 구현 역시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따라서 시대정신과 유리된 채 감시와 비판만 하려 든다면 그 또한 시민의 기대와는 어긋나는 것일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진보언론이 언론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수행하는 감시와 비판의 진정성을 시민들이 인정하느냐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문빠’니 ‘개떼’니 하는 보수 쪽 언어 프레임을 진보언론이 그대로 사용한 것은 대단히 안타깝다. 이러한 용어들은 시민들이 진보언론에 가지는 의구심, 즉 이념보다 생존을 우선시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시장친화적 태도가 ‘그들끼리의’ 공고한 엘리트주의와 어우러지면서 진보언론도 보수언론과 별다르지 않다는 의심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을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셈이 되었다. 진보언론은 이번 사태를 통해 “내가 문빠다”라고 외치는 수많은 비조직화된 시민들의 문제제기와 합리적 의심을 기꺼이 수용하고 성찰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진정한 진보언론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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