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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한국 사회 주요 개혁 과제와 한겨레

등록 2020-01-23 19:10수정 2020-01-24 02:35

<한겨레> 8기 열린편집위원회 세번째 회의
제8기 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은 2020년 첫 회의의 주제를 ‘한국 사회 주요 개혁 과제와 한겨레’로 정했다. 지난 21일 오전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는 홍성수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김미경 위원(한겨레온 편집위원), 김제선 위원(희망제작소 소장), 박영흠 위원(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최지희 위원(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과 김종구 편집인, 이재명 제3에디터, 임지선 참여소통데스크가 참석했다.

제8기 열린편집위원회의 세번째 회의가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제8기 열린편집위원회의 세번째 회의가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홍성수 ‘한국 사회 주요 개혁 과제와 한겨레’란 주제가 너무 넓어서 범위를 좁혀가며 논의해보자. 촛불 이후 대선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의 적폐를 해소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열망이 작동했다. 문재인 정권 3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개혁 과제가 어디까지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한겨레는 어떤 역할을 했어야 했을까.

박영흠 그동안 한겨레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개혁 의제를 발굴해 진보의 외연을 넓힌 것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그런 이슈가 있는 줄 몰랐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것은 진보의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던 부분을 새롭게 제기하는 것이었다. 언론의 기능인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의 힘이 예전보다 쇠퇴했지만 진보적 의제를 공론화하는 한겨레의 역할은 여전히 크다. 그런데 최근 한겨레는 이미 제기된 의제를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검찰개혁이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집중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보다 서민들 삶에 직결된 이슈도 많지 않았을까. 문재인 정부의 성과가 빈약하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한겨레도 그 원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김미경 기사 수나 사설·칼럼 수를 봐도 한겨레가 검찰개혁에 올인한 것은 맞다. 좋은 칼럼, 명문도 많았다. 하지만 일단 검찰개혁의 첫 단추를 끼웠으니 다음은 경찰개혁인데, 이게 잘 안되면 권력이 검찰로 집중될 수 있으니까 그 부분도 주요하게 다뤄줬으면 좋겠다. 사법개혁도 아쉽다. 지난해 한겨레가 해외까지 다녀오면서 사법개혁 기획 보도를 했는데 후속이 안 보인다. 국민들이 여러 개혁 의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다양한 기사를 내줬으면 한다.

최지희 검경 개혁은 묵은 과제라 기회가 될 때 다루는 것이 중요하고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 같다. 정권 따라 바뀌는 프레임이 아니라 그를 넘어서는 생활 이슈를 제시하는 걸 한겨레가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젠더, 불평등, 지역격차 등을 많이 다뤄왔고 최근에도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 기획 기사를 통해 본질에 가닿는 보도를 했다. 저를 포함해 젊은이들이 신문을 잘 안 보는데 생각해보면 내 생활에 와닿는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인 것 같다. 경찰 수사권 이야기 나올 때 주변에서는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더라. 이런 부분을 언론이 다뤄줬으면 한다.

김제선 개혁 과제를 보도할 때 한겨레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소위 보수 쪽에서는 한겨레를 정파적 찌라시, 가짜 뉴스로 생각한다. 한겨레는 함께 정론지의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주요 독자와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고, 뉴스의 유입통로가 포털로 변하는 등 언론 시장의 지형이 바뀌었다. 조국 사태도 촛불항쟁으로 대표됐던 시대정신과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에서 보도와 논평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팩트 보도에서 좀더 균형을 갖추되 논평은 독창적이어야 하고, 문제 제기를 넘어 해법을 제시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보여줘야 한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같은 전통적인 의제뿐 아니라 젠더 이슈,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기후변화 등 절실한 사회문제에 대한 의제 설정이나 관점의 전환을 보여줘야 한겨레의 매력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

홍성수 대중의 관심사를 따라가는 속보 경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조국 사태 당시에 어디를 가도 그 얘기를 할 만큼 국민의 관심이 몰렸다. 하지만 그 보도가 언론사 역량을 총집중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의제였냐는 다른 문제다. 한겨레는 거기에 상당한 역량을 투입하고 지나치게 비중을 뒀던 건 같다. 검찰개혁, 조국 장관 임명 찬반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아쉽다. 세부적으로도 검찰개혁 중 수사권 조정은 시민의 삶에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도 이에 대한 심층 보도는 부족했다. 많은 이들이 경향신문의 ‘산업재해 보도’, 한겨레의 ‘요양보고서 기획’ 등을 칭찬했던 이유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가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언론에서 부각하고 재조명하니까 소홀히 했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중의 관심사를 쫓더라도 이런 부분의 역량 배치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향후 개혁 과제도 검찰개혁이나 조국 찬반 논의로만 환원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많다. 대학·청년·비정규직 문제, 기후변화 등에도 정부가 내세울 만한 뚜렷한 성과가 없다. 간과됐던 시민의 관심사를 중요 의제로 부각하고 논점을 제시하는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재명 젠더 이슈와 수도권 집중 문제는 그동안에도 한겨레가 많이 다뤄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슈를 어떻게 새롭게 보여줄 것인가가 늘 고민이다. 지역 문제와 기후변화 문제는 설이 지나면 기획으로 다뤄볼 예정이다.

최지희 20~30대 청년들의 삶이 불안정하다 보니 한번에 이를 해결하려는 식의 행태도 보인다. 비트코인, 유튜브 등에 빨려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한방을 기대하고 표리부동할 때 한겨레가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김제선 독자들은 한겨레가 문재인 정부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도록 끌어주는 선도적 진보 매체인지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 절실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이 제대로 다뤄지고 있는지,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그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짚어줄 수 있었는데 그런 노력이 미흡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한겨레의 신뢰도, 열독률, 페이지뷰가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를 추종하는 언론이 아니라면 시대가 절실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이끄는 언론이어야 한다. 전통적 사회 이슈는 물론 새로운 이슈에 대처하기 위해 내부에 준비팀을 구축하거나 외부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시스템을 둬야 한다. 단순 방어나 추종이 아닌 정론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박영흠 신뢰도를 기준으로 저널리즘의 질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도 비교적 양심적이라고 평가받는 <아사히신문>의 신뢰도가 <산케이신문>보다 낮게 나오기도 한다. 일본 시민사회의 우경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뢰도 하락의 원인 분석과 대응은 필요하다. 한겨레는 기자들이 신뢰하는 매체 1위 자리를 내준 뒤 지속적으로 신뢰도가 떨어졌다. 정파적 매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다. 한겨레가 정파를 가리지 않고 신뢰할 매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줘야 한다. 신뢰도는 시민의 삶에 얼마나 밀착된 방식으로 개혁 의제를 다루느냐 여부와 직결된다. 검찰개혁도 검사들이 상갓집에서 싸우는 데만 관심을 두지 말고, 권력집단 내부의 문제만 보지 말고 시민들의 삶과 연결지어 이야기해야 한다.

김미경 한겨레가 한국 언론이 어떤 식으로 나가야 할지 방향 설정을 해주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제일 어려운 게 노동개혁과 교육개혁이라고 본다. 유치원 3법이 통과됐지만 사학법은 손도 못 대고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나를 집중 보도해줘야 하지 않을까. 경제민주화 문제도 지금처럼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김제선 미국의 주권 침해적 발언에 균형 있는 보도를 해준 한겨레에 감사한다. 주한미국대사의 언행을 집중 조명해주는 기사도 필요해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한 여러 재판이 진행되는데 한겨레가 재판을 모니터하는지 모르겠지만 검찰 수사만 쫓지 말고 법정에서 어떤 공방이 이뤄지는지 팩트 중심으로 알려주면 좋겠다. ‘2020 노동자의 밥상’은 매우 좋은 기획임에도 편집 등 보여주는 방식이 조금 아쉽다. 나아가 취약한 이들의 밥상뿐 아니라 일반 직장인의 쫓기는 일상까지 담는 기획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흠 민주당 인재 영입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당 내부의 정치인 육성이 아닌 외부 영입은 정당정치를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한겨레다울 수 있다.

김미경 총선 보도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총선 이후에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과제까지 제시해줬으면 한다. 또 ‘청소년 부모’ 기획처럼 우리 사회 최약자에 대한 보도도 계속해 달라.

홍성수 문재인 정권이 탄생한 지 3년이 다 돼가는데 여전히 안 된 개혁이 너무 많다. 총선이 지나면 바로 정책화할 과제들을 리스트업 해야 한다. 올해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그런 강력한 의지를 북돋울 수 있도록 언론이 분위기를 조성했으면 한다.

정리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녹취 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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