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이 보도한 ‘채널에이’ 의 검언유착 의혹.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최근 종합편성채널(종편) <채널에이(A)> 기자가 유력 검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취재원을 겁박한 사건을 계기로 취재윤리 논란이 언론계 화두로 다시 떠올랐다. ‘기레기’라는 지탄 속에 갈수록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는 언론의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비판과 함께 ‘검-언 유착’ 의혹과 협박 취재 등을 둘러싼 실체적 진실이 조속히 규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채널에이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의 언론윤리 논쟁을 되짚어본다.
■ “강압 취재 철저 조사” 청와대 청원
<문화방송>(MBC)은 지난달 31일 채널에이 기자가 취재원에게 “가족을 지키려면 여권 인사의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협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녹취파일과 편지 등을 공개하며 ‘검-언 유착과 취재윤리 위반’ 의혹 등을 제기했다. 언론시민단체에선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키려한 족벌언론의 민낯을 드러낸 것으로, 그동안의 왜곡·편파 등 불공정 보도가 여전하다는 방증”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채널에이는 의혹이 제기된 다음날 메인뉴스를 통해 “자체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보도한 뒤 최근 발표문을 내어 “사내 6인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에서 취재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단체들은 “사쪽의 조직적 개입 정황이 있는데 기자의 개인 일탈로 몰아가며 꼬리자르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7일 채널에이 기자와 해당 검사에 대해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날 청와대엔 “방통위는 방송의 공적 책임 방기하고 언론이기를 포기한 채널에이와 티브이조선의 재승인을 취소하라”는 국민 청원도 올라왔다. 막장 방송을 보고 싶지 않다며 사건의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이를 재승인 심사에 반영하라는 요구다.
한편에선 특검의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은 “검찰과 언론이 담합해 여권 실세를 결딴내겠다는 내용인데,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면 총선에 큰 영향을 끼칠 사건이었기에 특검 대상”이라며 “녹음의 실제 내용, 목소리의 주인공 등 사실관계를 종합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보도에 대해 채널에이는 메인 뉴스를 통해 “진상조사위 구성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널에이 화면 갈무리
■ 보수언론의 이중 잣대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취재윤리와 관련해 사회적 파장이 가장 컸던 사건으로는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화방송> 피디수첩팀의 협박 논란을 들 수 있다. 당시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발됐던 제작진이 검찰 조사에서 ‘보도의 공익성’을 인정받아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 사건이 언론윤리 측면에서 던진 시사점은 컸다.
사건은 <와이티엔>(YTN)이 그해 12월3일 미국에 파견 중인 황 교수팀의 김선종 연구원과 한 인터뷰에서 “피디수첩팀이 취재윤리를 위반하며 황 교수를 음해하려 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문화방송>은 ‘뉴스데스크’ 머리기사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다음날 모든 신문이 이를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특히 조중동 등 보수신문들은 ‘피디수첩 협박·함정 취재’(조선), “다 털어놓으면 신분 보장 하겠다 말해”(중앙), “황 교수 죽이러 여기 왔다”(동아) 등 몰카와 불법 녹취가 넘친다며 피디 저널리즘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와이티엔이 황 교수팀과 국정원의 지원을 받아 청부 취재를 벌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취재윤리 논쟁은 더욱 확산했다.
하지만 피디수첩의 보도에 “협박 취재”라며 대대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냈던 보수언론들은 이번 채널에이의 취재 방식에는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침묵을 지키거나 양쪽의 공방으로 몰아가는 등 논점을 왜곡하는 식이다. 여권과 친조국 세력의 ‘윤석열 때리기’라는 프레임을 들이대며 총선을 겨냥한 정파적 보도로 정치쟁점화에 나선 것이다.
피디수첩의 황우석 보도 논란 당시 조선일보의 보도.
■ 기자 목소리 변조한 인터뷰 조작 사례도
방송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취재윤리 위반은 익명 인터뷰 조작 논란이다. <청주방송>(CJB)은 2018년 익명의 소비자 2명을 인터뷰하며 전·현직 직원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나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대상에 올랐다. 심지어 기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변조해 취재원을 인터뷰한 것처럼 조작한 사례도 있다. 부산민방 <케이엔엔>(KNN)은 2018년 11월 부산신항 리포트에서 이런 허위방송을 내보내 방심위에서 가장 높은 징계인 과징금 처분을 받기도 했다. 지난 2월 <문화방송> 피디수첩은 폭등하는 집값을 둘러싼 무주택자들의 불안심리를 다룬 ‘2020 집값에 대하여’ 편에서 계약금을 지불한 주택 소유 예정자를 무주택자로 인터뷰해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문화방송의 ‘채널에이’ 관련 보도에 대해 ‘윤석열 때리기’ 프레임을 씌운 조선일보.
학계에선 취재윤리 위반이 여전한 것은 잘못된 보도 관행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증표라며 실추된 언론 신뢰 회복을 위해 내부 성찰 등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기자들이 불법행위를 목도하면 동료라도 경계하고 비판해야 하는데 묵인하고 감싸는 분위기가 강하다. 조직 내에서 비판할 수 있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고 짚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도 “윤리의식 제고와 내부적 담론체계 활성화 등을 통해 언론사의 통제 기제가 제대로 작동돼야 하고, 그에 따른 징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