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기 열린편집위원회 아홉번째 회의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보도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6월15일 여덟번째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서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제관계’ 관련 보도를 살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공교롭게도 지난 6월16일 북한은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어디로 치달을지 모르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보여준 사건이었다. 뒤이어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내용이 알려지며 관련 뉴스에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 모인 8기 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은 <한겨레>가 남북·국제 관계 뉴스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톺아봤다. 아홉번째 열린 이번 회의에는 홍성수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강혜란 위원(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김미경 위원(한겨레온 편집위원), 박영흠 위원(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우태희 위원(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최지희 위원(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이 참석했다. 한겨레에서는 백기철 편집인과 권태호 기획부국장, 이정연 참여소통데스크가 함께했다.
우태희 오늘 살펴보기로 했던 게 한겨레의 남북관계, 국제관계 관련 보도였는데, 주제로 정하자마자 남북관계가 얼었다. 한겨레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있었던 뒤 예리하게 잘 분석한 기사들을 내놓았다. 북한이 연락사무소는 폭파했지만,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는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북한 쪽이 협상과 대화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는 걸 이 기사를 읽고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남북관계의 방향을 잡아주니 다른 언론도 유사한 논조를 뒤이어 보이더라.
그러나 남북관계를 제외한 국제 뉴스의 비중이 지나치게 적게 느껴진다. 국제면은 거의 한개 면이더라. 대외경제 의존도가 80% 넘는 한국에서 국제 뉴스가 홀대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면은 적지만, 한겨레다운 기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미국 직장인 성 소수자 차별금지 판결’, ‘루이지애나 임신중지권 제한에 대한 미 대법원 판결’ 같은 기사는 다른 신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어떤 남북관계, 국제관계 뉴스가 발생했을 때 경제 쪽 여파 등을 다룬 기사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서 제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박영흠 국제 뉴스 보도가 언론사의 품격을 평가하는 중요한 부분이고,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보는데 한국 언론은 여전히 이 영역을 소홀히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국제 뉴스와 관련해서는 제3세계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과 무지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중심의 패권 질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제3세계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기사를 썼지만 여전히 미국 보도 비중이 높다.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중심의 보도로 보인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기사도 많았으면 좋겠다. 베트남과 교류가 늘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베트남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낮다. 관련 기사도 거의 읽어보지 못했는데, 여러가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 최현준 기자가 디비 딥(DB deep)이라는 코너에서 벨기에가 과거 식민 지배를 했던 콩고에 사과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도 피지배 경험이 있으니 시사하는 바가 컸는데, 이런 기사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특파원 제도를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해당 국가에 있지 않더라도 쓸 수 있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꼭 파견해야 한다면, 정치나 외교 관련 기사만 쓰지 말고, 파견 국가의 제도 중 한국이 알면 좋을 제도나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이야기를 발굴해 전달해주면 좋겠다. 이런 맥락에서 특파원보다는 깊고 유익한 정보와 해설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기자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연락사무소 폭파했을 때
대화 여지 있단걸 기사 읽고 파악
김미경 독자들은 중요한 국제 뉴스는 아침 신문이 나오기 전 대부분 접하기 때문에 신문에서는 심층적인 분석이 들어간 기사를 보고 싶어 한다. 심층 국제관계 관련 읽을거리로 최근 시작한 박민희 논설위원의 ‘시진핑시대 열전’이 정말 좋았고, 길윤형 기자의 ‘신냉전 한일전’ 같은 코너도 아주 좋은 시도로 보인다. 홍콩 보안법 사태가 터졌을 때는 정의길 선임기자의 ‘세계만사’에서 전문적 분석을 해줘 고마웠다. 일반적인 국제 기사보다 이런 칼럼 등이 재미있다. 한반도 관련 기사로는 이제훈 선임기자가 정제되고 차분한 기사를 잘 써주고 계셨다. 시민들도 예전에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같은 일이 일어나면 흥분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고 “이번엔 무슨 일이지?” 하는 궁금증을 갖는다. 한겨레가 앞으로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면 좋을 거 같다.
최지희 지난 한달 존 볼턴 회고록 기사가 정말 많았는데, 한겨레는 그 이벤트에만 끌려가지 않는 균형을 잡는 톤을 보여줘서 좋았다. 다른 기사들도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기사로 한주연 베를린 통신원이 쓴 ‘베를린 임대료 동결’ 기사를 읽고 주거권에 관심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그 현장을 보고 싶어 유럽 연수도 다녀왔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소송 관련 기사가 5월에 나왔는데 역시 인상 깊었다. 이어 다른 언론에서 왜 베트남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는지, 베트남의 문화와 연결 지어 설명해준 기사를 냈다. 한겨레 기사를 읽고, 이 기사를 읽으니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강혜란 남북관계가 위기의 국면에 다다랐을 때 한겨레가 차분하게 다양한 각도의 시선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독자들의 기대에 비춰보면 아쉬운 점도 있다. 남북관계 위기가 진정 국면에 들어가면서 인터뷰 기사로 전문가들 의견이 나오는데, 이런 내용을 긴장이 고조됐을 때 앞서서 제시하면서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 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위기 상황이 어느 정도 해결된 뒤에 그런 기조를 가져가는 건 한겨레에 기대하는 것에 비할 때 아쉬웠다.
한겨레의 디지털 뉴스를 보면,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관련 기사에 붙는 사진은 일관되게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언론에서는 김여정 부부장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진을 싣는데, 왜 한겨레는 반복해서 이 사진을 싣는지 궁금하다.
권태호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 것으로 안다. 디지털 기사에서 자료 사진을 붙일 때 되도록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사진을 쓰려고 한다. 과거 서울 방문 때 웃는 표정의 사진들이 많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강 위원님 의견 참고해 앞으로는 개선하겠다.
트럼프 기행 등 미 보도비중 높아
제3세계 문화·정보 제공 등 부족
본받을 제도 등 발굴기사 썼으면
홍성수 외교 관련 보도를 보면, 한겨레다운 좋은 기사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느낀다.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한겨레만의 매뉴얼, 관점을 갖고 움직인다기보다는 사안마다 대응하는 게 들쭉날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부분과 관련해 한겨레다운 관점과 취재 방침이 조금 다듬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에 견줘서 남북관계 보도는 한겨레의 스탠스가 엿보인다. 한겨레가 갖고 있는 남북관계 취재 노하우가 느껴진다. 하지만 북한 관련 보도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거 같다. 개인적으로 관심 많은 부분은 새터민(북한이탈주민) 관련 이슈다. 북한과 교류를 지속하고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면 북한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흔히 남북관계라고 하면 북한 고위관료와의 교류만 생각하는데, 북한 전체와의 교류를 생각하면 새터민들은 소중한 존재다. 그런 부분에 대한 관심도 한겨레가 가져줬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새터민 하면 뻔한 이야기를 예상했는데, 지금은 새터민 사이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으면 남북관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양한 계층의 새터민 목소리를 전해 기사 품질도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박영흠 언론학계에서 2~3년 전 평화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전쟁이나 폭력이라는 부분적 사실만 보도하지 말고, 전체적인 맥락과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폭력과 전쟁은 연기고, 갈등이 불이다”라는 비유가 있다. 왜 언론은 연기만 보도하고, 불이 왜 발생했는지 전달하지 않는가 하는 지적이다. 이런 면에서 한겨레는 평화 저널리즘에 가장 가까이 간 매체라는 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종이 신문 제작 관성의 영향인지, 국제관계 보도를 할 때 1면은 스트레이트 기사가 나가고, 3면에 해설과 전망 등이 나온다. 종이 신문을 보면 한겨레의 방향과 의지가 보이는데 디지털 뉴스로 읽으면 한겨레 특유의 시각이 녹아 있지 않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뉴스 유통까지 고려하는 기사 배치가 필요해 보인다.
권태호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국제 뉴스는 적극적으로 디지털 기사로 유통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 기사의 양적 부족은 종합면 활용 등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 한겨레 국제부에는 전문기자나 다름없는 기자들이 포진해 있다. 적은 인원임에도 각종 국제관계 뉴스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적해주신 부족한 점, 아쉬운 점은 지속해서 신경 쓰고 개선하겠다. 특파원 제도 존속 여부는 인터넷 이후 언론계에서 꾸준히 논의된 주제다. 개인 의견은 최소한의 특파원은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파원이 파견 국가에서 (국내에서도 할 수 있는) 외신을 종합보도하기도 하지만, 현장 취재 및 인터뷰를 발 빠르게 진행할 수 있고, 현지 분위기를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또 취재 네트워크를 형성해 장기적으로 언론사의 자산으로 축적된다. 특파원은 한반도 관련 이슈를 우선순위에 두니, 정작 해당국 뉴스는 뒤로 밀릴 때가 있다. 한겨레는 한때 파리 특파원도 뒀다. 유럽 쪽 진보적 시각에 갈증을 느낄 때가 많다. 현지 통신원 제도를 더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외교 관련 보도는 취재가 어렵다. 외교 인사들은 말을 않거나, 하더라도 해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외교 기사들이 명쾌하게 전달되지 않는 느낌을 주는 이유라 본다. 그래서 외교 분야는 전문적 지식과 네트워크를 쌓은 기자들이 담당하게 된다. 통일외교팀은 한겨레 안에서도 특히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기자들로 구성돼 있다. 그럼에도 매번 어려움을 느낀다. 앞으로 전문성을 더욱 벼리는 동시에 주문하신 대로 일반 독자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고 쉽게 전달하는 방식으로도 노력하겠다. 또 전문성 있는 기자들을 계속 육성해 평화를 추구하는 한겨레의 통일·국제 보도 방향성이 한국 언론의 좌표가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
정리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녹취 설선정
열린편집위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8기 열린편집위원들은 2020년 6~7월의 좋은 기사로 ‘코로나 최전선 공공의료 긴급진단’ 기획을 꼽았다. 김미경 위원은 “코로나 사태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대처를 잘할 줄 몰랐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공공의료였다. 정부에서 이 기사를 꼭 참고했으면 좋겠다”라고 평가했다. 아홉번째 회의 주제인 ‘남북·국제 관계’ 관련 기사도 좋은 기사로 선정됐다. 이제훈 선임기자가 쓴 ‘누굴 위해 대북전단을 날리나’와 노지원 기자가 쓴 ‘북의 폭파 정치… 이번엔 평화의 길 파괴’를 열린편집위원들은 좋은 기사로 선택했다.
1. [기획] 코로나 2차 유행 ‘경고음’ 최전선 공공의료 긴급진단
사회정책부 황예랑, 최하얀, 권지담 기자
심사평: “기사의 지적과 제안에 꼭 따라줬으면 좋겠다. 정부가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2. [뉴스분석-‘북 인권개선’ 명분의 허상] 누굴 위해 대북전단을 날리나
정치부 이제훈 선임기자
심사평: “항상 성실하고 차분한 자세로 기사를 쓰는 이제훈 선임기자를 칭찬한다.”
3. [한겨레TV-내 손안의 큐(Q)] 갑질·과로…나는 인국공 보안검색요원입니다
방송제작부 조성욱 피디
심사평: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이 많았는데, 당사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콘텐츠 중 하나였다.”
4. [한겨레21-프로젝트 너머n] 그루밍 성착취 “2분 안에 답하지 않으면 그들이 왔다”
한겨레21부 장수경, 고한솔 기자
심사평: “한겨레21에서 보니 디지털 성착취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고, 더 고민해볼 지점들을 던져줘서 의미 깊었다.”
5.
[박다해의 젠더101] 법 보장돼 있는데…‘엄마 성’ 물려주기 왜 이리 어렵죠?
사회정책부 박다해 기자
심사평: “엄마 성을 따르는 걸 나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기사를 읽고 많이 배웠다.”
6. 북의 ‘폭파 정치’… 이번엔 평화의 길 파괴
정치부 노지원 기자
심사평: “다른 언론에서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장면만 내보냈는데, 2008년, 2018년 사진을 넣어 보여주며 남북관계를 요약한 것이 아주 좋았다.”
이정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