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철 위원ㅣ녹색연합 기후위기기록단
기후위기는 곧 생물다양성의 위기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깨졌고, 기후위기가 닥쳤다. 곧 생물다양성 위기가 이어졌다. 한 생물이 사라지는 것은 비단 그 생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인류 생존을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인 이유다. 기후위기는 감축과 적응 두 가지가 핵심이다. 감축은 화석연료를 극복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며, 적응은 재해재난에 대응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것이다.
2023년 경북 북부 예천, 영주, 봉화의 산자락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발발한 산사태는 다시 한번 한반도 기후재난의 위기를 일깨웠다. 지난 5년간 신도시 한 개의 면적과 맞먹는 산이 (산사태로) 무너졌다. 2019년 156㏊, 2020년 1343㏊, 2021년 27㏊, 2022년 327㏊, 2023년 올해는 492㏊. 동탄2신도시가 2400㏊, 운정신도시가 1647㏊다.
그간 한번도 피해가 없던 곳에서 산사태가 속출했다는 현지인들의 증언도 나왔다. 한반도에 전개되는 기후 양상이 달라진 것이 큰 피해의 배경으로 꼽힌다. 과거 산사태 피해 훼손 지역의 복구가 조림 녹화를 통한 응급 복구가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생물다양성을 고려한 복원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경북 영천 보현산과 강원도 정선 오장폭포는 2010년 이전에 대규모 산사태 피해 지역을 숲으로 되돌리기 위한 복구·복원을 실시한 곳이다. 영천 보현산은 20년 전 태풍 매미가 남긴 산사태의 흉터 위로 마치 샛길과도 같은 초록색 무늬가 정상을 따라 흐르고 있다. 해발 1천미터 고도의 깍아지른 산줄기의 사면을 녹화하며 토양 침식을 막은 복구 작업의 결과다. 당시 해발 1126m 정상 능선부의 도로를 따라 4개 지역에 산사태가 발생했다. 2000년 이후 산사태 발생지역 중 가장 높은 고도다.
보현산 정상에 천문대시설을 세우면서 경북 화북면 정각리에서 보현산 정상까지 도로를 개설한 것이 산사태의 주 원인으로 꼽혔다. 오늘날 보현산에는 소나무와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우거져 자라났다. 군데군데 사방오리나무와 물오리나무 등 산사태 복구에 주로 심는 수종들이 눈에 띈다. 관목으로는 싸리나무도 있다. 소나무, 오리나무 등 일부 현지 지형에서 잘 자라는 식생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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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발생한 강원 정선 오장폭포 산사태의 경우도 역대급 복원사업이 이뤄졌다. 산 중턱이 무너져내려 하천까지 범람시켰던 대형 산사태 이후, 복원 면적만 5.11㏊로 단일 면적의 산사태 피해를 복원한 것으로는 최대 규모로 꼽힌다. 410번 지방도로가 정선 여량리를 통과하는 오장폭포 주차장에서는 복원 현장이 한 눈에 보인다. 오랫동안 터전을 잡아 온 아름드리 소나무 군락 곁에, 복구 현장의 신생군락이 점차 어엿한 숲으로 자라나고 있다.
산사태 복원을 추진하면서 주변의 식생을 고려하여 소나무를 주로 심었고 싸리나무·박달나무·오리나무 등을 함께 심었다. 더불어 주변의 자생 소나무 씨앗이 날아와 자연 천이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추가 산사태 피해 방지를 위한 지반과 토양의 안정이 우선이기에 사면 복구에 선택되는 조경 수종 위주로 심었다. 당시로는 일반적인 선택이었지만 다양성 측면에선 아쉬움도 남는다.
복원은 곧 우리가 살아갈 미래다. 산사태 피해 지역을 생태적으로 건강한 숲으로 되돌리는 복원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단순 복구를 넘어 생물다양성 즉 생태계, 종, 유전자 등을 고려한 산림 복원이 필요하다.
유엔에서도 국제사회에서 생물다양성 보전의 핵심을 생태복원과 보호구역 확대로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산사태 피해 지역의 산림생태복원은 중요한 생물다양성 보전 과제가 될 것이다. 산사태 훼손 지역의 응급 복구를 넘어서 생태계 교란 우려가 없는 식물을 도입하고, 주변 동식물을 고려한 산림 생태 복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