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오현 경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유족 제공
신오현 선생님! 진정한 철학자, 구도자로서 존경하던 선생님을 지난 2일(향년 83) 황망히 떠나보내게 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한 달 전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렇게 작별 인사조차 할 겨를이 없이 급히 가시니 하늘이 너무 무심합니다.
경북대 신입생 시절부터 ‘철학계의 혜성’으로 유명했던 선생님과 첫 만남은 2학년 때였습니다. 명강의로 불렸던 <근세철학사> 수업에서 선생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제가 철학의 매력에 빠져 평생 업으로 삼도록 해주었습니다. 특히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근세철학사>를 새롭고 명쾌하게 해석하던 선생님의 혜안과 그 후 <실존철학> <현상학> <정치사회철학> <현대철학> 등의 수업에서 동서양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철학적 깨달음을 설파하실 때 느꼈던 감동은 저에게 아직 잔잔한 희열로 남아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사회 민주화와 함께 좌파이론이 유행하던 대학원 시절, 선생님과 치열하게 학문적 논쟁을 하며 좌충우돌하던 부족한 저에게 늘 애정의 마음으로 깨달음의 죽비를 내리치셨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그때 좌파 이념의 맹점을 리버럴한 지식인의 관점에서 냉정히 꾸짖던 선생님의 불같은 모습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후 학문을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좌우 균형을 잃지 않는 귀중한 보약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 시절 선생님은 경북대에서 여러 신드롬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 교수’였으며, 좌·우파를 불문하고 학생들 사이에 자주 회자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는 선생님의 뛰어난 지성과 열정적인 강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회식과 술자리 등에서 학생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사랑을 베푸시던 순수한 모습 덕분이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경북대 철학과의 르네상스였고 전성기였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다른 학교 학생들도 경북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문전성시를 이루었지요.
그리고 한가지 빠뜨릴 수 없는 그 시절의 추억은 매월 시내에서 열린 ‘낙도회’ 공부 모임과 매년 여름의 청송 연습림에서 열린 ‘철학 심포지엄’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늘 시간을 황금같이 아끼던 선생님이 어떻게 저희와 의기투합하여 그렇게 열성적으로 공부하고 낭만을 즐겼는지 의아합니다.
경북대 철학과 교수와 제자들이 지난 4일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고 신오현 교수의 영결식을 열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조영준 교수 제공
고 신오현 교수 영결식에서 필자 조영준 교수가 제자 대표로 추모사를 읽고 있다. 조영준 교수 제공
신오현 선생님, 무엇보다 제가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은 평생 세속적인 명예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구도자인 자세로 학문에 정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저 <자아의 철학>, <철학의 철학>, <절대의 철학>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깨달음이란 것을 학문적으로 증시하기 위해 평생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마치 세속적인 가치를 초월한 채 묵묵히 진리의 길을 간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처럼 말입니다. 아니, 선생님은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반야와 해탈’을 추구한 학승이고 선승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저희를 철학의 미로에서 참된 길로 인도해주신 엄격하면서도 훌륭한 스승이셨습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저희는 대구라는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한국에서 학문적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철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절대의 철학’은 오늘도 저를 조용히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마천은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가장 가슴 아파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비록 저희 곁을 떠났지만, 저는 선생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후학들의 사표이자 진정한 구도자로 기억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사제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앙주의 말로 추도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해질녘의 붉은 노을은 동틀 무렵의 금빛 햇살 못지않게 아름답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공부한 사람은 저무는 해처럼 고요하고 아름답게 삶을 끝맺을 수 있다. 그가 죽고 나면 줄곧 그와 함께 공부는 우리에게 남는다.”
선생님, 지상에서의 이별이 천상에서의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는 그날까지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조영준/제자·경북대 철학과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