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김부겸(왼쪽) 행정안전부 장관이 허대만(오른쪽) 전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에게 정책보좌관 임명장을 준 뒤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고 허대만 정책보좌관은 포항 영흥초·포항중·대동고·서울대를 졸업하고, 지난 1995년 포항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행정안전부 제공
정치인 허대만이 만 53년 짧은 생을 살고 지난 22일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는 진지한 신념을 가진 한 인간이 얼마나 숭고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는 지금의 세상에서 손가락질받는 정치가 왜 의미있는 일이고, 순수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할만한 것인가를 일생을 통해 증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고향 형산강을, 송도의 솔밭과 금빛 모래를, 죽도시장의 사람들을 누구보다 사랑한 ‘포항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 정치를 하면서도 결코 고향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아끼는 주변 선후배들이 이제 그만하자고 말릴 때마다 ‘제가 저의 고향을, 제 부모형제의 땅을 포기하면, 누가 이곳을 지키겠습니까?’라고 답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6살에 시의원에 당선된 뒤, 포항에서 7번 선거에 나가서 모두 낙선했습니다. 지역주의의 거대한 벽은 청년 정치인 허대만이 나이 50이 넘도록 한번도 고향을 위해 일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도 낙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노무현의 철학을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체화했던 것 같습니다.
계속되는 낙선 속에서도 그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늘 공부했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 일할 수 있는 역량을 미리 키워놓지 않으면 안된다고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원외 정치인이지만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고, 정치와 행정 경험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제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낼 때는 정책보좌관으로서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사심 없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했습니다.
포항 지진이 났을 때가 기억납니다. 수학능력시험을 연기해야 할 정도로 급박했던 상황을 온 국민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진으로 인한 포항시민들의 심적, 물적 피해는 전례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정부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행안부 장관 정책보좌관이었던 그는 침착하게 현장 상황을 파악해 나갔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저와 행안부, 아니 대한민국 정부는 현장에서 꼭 필요한 판단과 지원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허대만에게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수습 과정에서 그는 한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다투고 여론을 호도하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허대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와 행정을 넘나들며 고향 주민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누가 공을 세웠는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피해를 당한 포항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면 됐지, 그걸 누가 했다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듬해 포항시장 선거에서 그는 또다시 낙선했습니다.
요즘 많은 정치인이 권력만 좇는다고 합니다. 정치가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그런 정치권에서 허대만은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렇게 순진한 사람이 무슨 정치를 하느냐는 타박을 들을지언정, 그의 순수한 열정에 감명을 받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알고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참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일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고향에서 정치에 입문한 이래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는 무관의 공직자였고, 이름 불리지 못한 영웅이었습니다. 그가 병석에 누워서도 마지막까지 바랐던 것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고향이 발전하는 것, 그리고 그런 정치풍토가 전국으로 퍼져 정치가 정말로 국민을 위해 일하고 신뢰를 받는 세상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지역주의를 넘어보자는 그 무모한 도전을 함께하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참 든든했습니다. 허대만 동지는 지역주의의 벽을 넘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정치인에게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으로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정치인 허대만의 이름을.
김부겸/전 국무총리·행정안전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