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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올곧은 남편 떠받친 ‘자애’ 덕분에 고난의 세월 이겨냈지요”

등록 2022-11-20 19:43수정 2022-11-20 22:25

[가신이의 발자취] 고 김찬국 교수 부인 성창운님을 기리며
1997년 서울 광림교회에서 열린 감리교 목사 은퇴식 때 김찬국(오른쪽) 교수와 부인 성창운(왼쪽)씨의 모습이다. 유족 제공
1997년 서울 광림교회에서 열린 감리교 목사 은퇴식 때 김찬국(오른쪽) 교수와 부인 성창운(왼쪽)씨의 모습이다. 유족 제공

연세대 신과대학장을 지낸 고 김찬국(1927~2009) 교수의 부인 성창운(윤순) 사모님이 지난 11월 7 일 소천하셨다. 향년 93. 성창운 사모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김찬국 선생님과 인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1974년 4월 어느 날, 나는 보안사 서빙고분실의 호출을 받아 꽁꽁 묶인 채 교도관에 이끌려 서울구치소 마당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푸른 수의의 웬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 또 그렇고 그런 이 땅의 민중이 아수라 속으로 들어왔구나, 하며 보안과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순간 낯익은 얼굴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김찬국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각자 교도관에 이끌려 선생님은 감방으로, 나는 서빙고분실행 지프 차를 탔다. 그날 나는 서빙고분실에서 무수히 얻어맞았지만, 그 고통과 수모는 지금 내 머리에 남아있지 않다. 그날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 사모님에 대한 죄책감으로 울기만 했던 생각은 선명하다. 조사가 끝나고 구치소로 복귀해, 함께 수감 중이던 박형규 목사께 선생님 구속 소식을 알리니, “야, 학생이 들어오면 교수도 들어와야지!” 쿨하게 말씀하셨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선생님과 나는 같이 감옥에 갔고, 그 이듬해 2월 감옥에서 나와서도 똑같이 대학에서 쫓겨났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선생님은 해직교수로, 나는 제적학생으로 살았다. 사모님은 그런 험난한 시절을, 50대 초반에 직장을 잃은 남편과 올망졸망 4남매의 버팀목으로 살아오셨다. 사모님은 그 어려운 중에도 감옥에 갇히거나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돕는 선생님의 일상을 적극 뒷바라지했다.

제자들이 방문하면 항상 허투루 보내지 않으셨다. 근황을 물어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안타까워했고, 기쁜 일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또 아무리 사양해도 꼭 밥을 먹여 보내야 직성이 풀리셨다. 1970년대 중반 연세대 여학생 양경희가 시위 중 건물에서 떨어져 세브란스병원에 장기입원하면서 병원비가 많이 밀린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해결에 나서자 끊임없이 지인들에게 부탁해 도운 것도 사모님이셨다.

선생님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을 산 것도 어느 면으로 보면 사모님 ‘덕분’ 이었다. 연세대 재직 시절 새해가 되면 선생님 댁은 총학생회, 운동권, 기독학생회 등등 학생들로 종일 북적였다. 그 많은 제자에게 항시 웃으며 다과와 떡국 등을 수발하시니 어찌 사람들이 몰리지 않겠는가. 1974년 1월 ‘유신헌법 개정 청원 서명’도 선생님께서 댁으로 세배 온 제자들에게서 받았으니, 그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가 가만히 있었겠는가.

훗날 결혼해 아내와 함께 어린 딸을 데리고 세배를 갈 때면 선생님은 껄껄 대견해 하시고, 사모님은 고사리손이 넘치도록 세뱃돈을 쥐여주셨다. 나의 고단한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온유하고 자애로우신 성창운 사모님! 부디 천국에서 선생님 다시 만나 주님의 보살핌 아래 영원한 삶을 누리소서.

김학민/전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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