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고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를 추모하며
참 좋은 건축학자 한 사람이 끝내 우리를 떠났다. 박철수 교수.
엘에이치(LH)의 전신인 한국주택공사의 주택연구소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모교인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로 자리를 옮겨 20년 동안 봉직한 그는 한국의 주택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구자요, 교육자이며 학자였다. 또한 대단한 집필가여서 무려 50권이 넘는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어떤 책이든 관성으로 쓰지 않았다. 이 땅의 주거와 그 역사에 관한 방대하고 심층적 내용을 담은 대부분의 책들은 박 교수 특유의 집요한 조사와 엄정한 통찰의 결과물이었다. <한국공동주택계획의 역사>(1999)를 비롯해 <아파트의 문화사>(2006),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2013), <박철수의 거주박물지>(2017) 등. 그중 지난 2021년 출간해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은 <한국주택유전자>라는 책은 지난 100년 동안 역사적 전환기에 지어졌던 이 땅의 주택들을 다룬 내용으로 그 분량만도 1400쪽에 이르도록 기술했으니 가히 경이로웠다. 그가 도달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너무도 궁금해 나보다 연배가 적은 그에게 존경한다고 말하고 말았다.
그는 또한 대단한 독서가였는데 특히 국내 소설은 옛 것부터 현대 것까지 읽지 않은 게 없을 정도였다. 주거 공간을 파헤치는 건축학자답게 그 소설들에 나오는 집과 건축 공간들을 죄다 기억하며 우리에게 건축적으로 다시 번역하듯 들려주곤 하더니, 급기야 <소설 속 공간산책>이란 제목으로 3권의 책을 연이어 내기도 하였다. 그의 지식은 광대무변이고 말은 종횡무진이었지만 늘 적확하여 내 찬탄을 불렀다.
무엇보다 그는 공공성의 가치를 신봉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그랬을 게다. 학교 교수들이 흔히 맡는 용역 업무를 결단코 배척하며 사리와 사욕이 잉태할 인연의 뿌리를 잘랐고,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권력이나 단체들에 결연히 맞섰다. 그리고 공공의 광장에서 그에게 맡겨진 임무에 누구보다도 충실하고 헌신하는 그였다. ‘인간성은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를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에 바친 사람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떠올렸다. 내가 서울시 총괄건축가일 때, 또 국가건축정책위원장직을 힘겹게 하고 있을 때, 그래서 현실적 여건 탓을 하며 곧잘 좌절하고 있을 때면 그는 나를 질타하듯 가야 할 길을 재촉했으며, 모자란 내 능력을 보충하고 나를 이끌었다.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그의 눈빛은 늘 형형하고 굵은 목소리는 위엄이 있었다. 삼가고 홀로 있는 자, 신독(愼獨), 바로 그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심성은 참으로 따뜻해서 주변과 약자들에 대해 늘 친절하고 배려가 있었으며 우리 모두가 이루는 일상적 삶에서 얻는 신비를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위대한 인물의 영웅적 스토리나 세기적 걸작의 건축이 내뿜는 스펙터클보다는 장삼이사의 작은 이야기나 골목길의 누추한 풍경에 대해 더욱 큰 애정을 가졌고 이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를 환호했다. 그렇게 그가 나와 같은 지대에 서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위안이었고 늘 고맙고 감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가다니….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수시로 전화 걸어 안부를 물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의 회복을 기도했는데… 그가 가진 고단한 삶의 피로를 치유하는 도구라고 하는 탓에 그의 담배를 강제로 빼앗지 못한 걸 참으로 후회했다.
그가 살아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한 <한국주택유전자>라는 책, 유명한 특별한 집이 아니라 일반인이 사는 보통의 집들을 그의 열정으로 해부하고 다시 조직해 대단히 견고한 체계를 만든 이 책의 서문을 그는 이렇게 끝맺는다.
“누군가에게 세계의 모두였거나 지금도 여전히 그런 곳일 수밖에 없는 보통의 집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살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늘 엄습했던 우울을 이제는 떨쳐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우울했다니…. 그래 박 교수, 이제 평화하시라. 같은 길 걸은 우리, 다시 만날 게니.
승효상/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지난 14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난 박철수 교수. 향년 64. 승효상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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