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궂긴소식

“고단했던 투쟁 잊고 편히 잠드소서…통일 그날 깨우겠습니다”

등록 2020-10-28 20:22수정 2022-03-17 12:08

20대 교사 시절부터 평생 통일운동
반독재투쟁 나선 큰아들은 의문사
고난 연속이었지만 ‘옳음’ 의미 실천
[가신이의 발자취] 통일운동가 고 기세문 선생을 보내며

지난 23일 광주광역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통일운동가이자 비전향장기수 고 기세문 선생의 안장식이 열렸다. 고 기세문 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제공
지난 23일 광주광역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통일운동가이자 비전향장기수 고 기세문 선생의 안장식이 열렸다. 고 기세문 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제공
“기세문 선생님! 님이 계시오메 든든한가 여기었는데 이렇게 홀연히 가십니까? 참으로 애통합니다.”

지난 21일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서산(曙山) 기세문 선생님은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선생님은 1934년 전남 광산군 임곡면 성내리에서 어머니 임소례·아버지 기인섭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53년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선생님은 1956년 5월 고향 임곡초교 재직 때 ‘조국평화통일동지회’를 조직하고 ‘평화통일 선언문’을 발표해 동료 12명과 함께 구속돼 2년간 옥살이했다. 전국 교사 조직 최초로 선언된 이 노선은 이승만의 북진통일 노선에 용기 있게 반대했던 일대 사건이었다. 1958년 만기출소 뒤 온갖 감시와 병역문제 등 어려움 속에서도 선생님은 농업에 종사하며 독서회, 야학 등의 활동을 했고 4·19 직후 통일전선체 ‘민족자주통일중앙회의’에 참여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연탄 배달부와 자동차 조립공장 청소부, 철근조립부 노동자로 은신 생활을 해야 했다. 선생님은 민족문제가 너무도 중요하기에 1968년 통일혁명당 호남지역책 대리인으로 통일사업을 이어가던 중 1971년 이른바 ‘통일혁명당 재건사건’으로 구속돼 1심에서 사형선고, 대법에서 15년형을 받았다. 1986년 5월 만기출소한 선생님은 이듬해 6월항쟁 참여를 거쳐 88년 민자통중앙회의 재건, 90년 민자통 광주전남의장, 중앙회의 공동의장으로 쉼 없이 통일운동을 이어갔다. 1995년 통일애국열사 윤기남 선생 장례식 사건, 범민련 활동 관계로 3번째 구속됐으나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서 강력히 항의해 집행유예로 석방되기도 했다. 1999년 장기수후원회 ‘통일의 집’ 운영위원장, 2000년 6월 광주전남양심수후원회장, 또 2004년 백운산 전적비사건으로 긴급체포됐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평소 선생님은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하고 중대한 민족적 과업은 조국통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분열주의와 분파주의는 반민족・반통일 행위이며 가장 엄중한 과오라고 지적하셨다. 둘째는 역사는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의 투쟁이며 역사 발전을 위해 올바른 인식과 판단, 올바른 실천을 하라고 역설하셨다. 셋째, 과거도 중요하지만 현재, 아니 미래가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과거에 과오가 있더라도 자기비판과 새로운 결의를 하고 현재 옳게 행동하고 있으면 그를 다시 평가하고 존경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에 대한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 1986년 5월 출소해 집에 오셨을 때 “우리 큰아들 혁이는 어디 있냐”고 묻자 이절자 사모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저 방에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 방에는 유골함이 있었다. 아버님이 출소해 오실 때까지 아들 기혁은 집을 떠나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1985년 1월 전남대 의대생이던 기혁은 반독재민주화투쟁 중 의문사를 당했다. “혁아, 혁아, 가슴이 무너진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통곡이 메아리쳤다. 정말로 슬픈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또 2004년 늦가을, 전쟁 끝난 지 50여년 만에 박영발 전남도당위원장 비트를 찾으러 지리산 반야봉 밑을 탐사했을 때 칠십 노구를 이끌고 운동화에 나뭇가지 꺾은 지팡이로 어찌 그리 그 험한 산을 잘 타시던지 일행도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 조국통일 그날까지 고단했던 몸 이제 편안히 쉬소서. 통일 그날 깨우겠습니다.” 선생님은 민족사랑과 더불어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통일운동가이셨다. 유유한 창천(蒼天)아! 어찌 이리도 무심하단 말인가! 그 빈자리의 여운이 길기만 하다.

박동기/남녘현대사연구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계엄군, 실탄 최소 5만7천발 동원…저격총·섬광수류탄 무장 1.

[단독] 계엄군, 실탄 최소 5만7천발 동원…저격총·섬광수류탄 무장

방첩사, 이재명 체포조 5명 꾸려 가장 먼저 국회 출동시켰다 2.

방첩사, 이재명 체포조 5명 꾸려 가장 먼저 국회 출동시켰다

노인단체 시국선언 “윤석열 지킨다는 노인들, 더는 추태 부리지 마라” 3.

노인단체 시국선언 “윤석열 지킨다는 노인들, 더는 추태 부리지 마라”

윤 쪽 변호사 “현직 대통령 찍찍 불러대…” 공수처 원색 비난 4.

윤 쪽 변호사 “현직 대통령 찍찍 불러대…” 공수처 원색 비난

‘윤 체포방해’ 경호처장 경찰 조사 불응…“한시도 자리 못 비워” 5.

‘윤 체포방해’ 경호처장 경찰 조사 불응…“한시도 자리 못 비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