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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밖에서 문 잠긴 3평 독방 감옥은 안인가 밖인가

등록 2017-02-14 18:45수정 2017-03-07 14:52

조현 기자의 휴심정/ 백담사 90일 동안거 무문관 문 열던 날

90일 독방수행을 마치고 무문관을 나서는 백담사 무금선원 조실 무산 오현 스님이 “무슨 사진이냐”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오른쪽 문 옆에 배식구가 있다.
90일 독방수행을 마치고 무문관을 나서는 백담사 무금선원 조실 무산 오현 스님이 “무슨 사진이냐”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오른쪽 문 옆에 배식구가 있다.

무문관을 나와 백담사로 가고 있는 조실 무산 오현스님
무문관을 나와 백담사로 가고 있는 조실 무산 오현스님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큰길에서 내설악 백담사까지 7㎞는 좁은 외길이다. 굽이굽이 구절양장이다. 지난 9일 눈이 쌓이면 길이 끊겨 고립무원이 된다는 백담사길에 들어섰다. 얼어붙은 외길을 차가 겨우 기어간다.

그 백담사에서도 무금선원 무문관은 더 깊숙이 눈밭 속에 잠겨 있다. ‘설악’(雪嶽)의 한자 자획을 풀어보면 ‘설산의 감옥’이니, 바로 이곳이 아닌가. 무문관은 밖에 열쇠가 채워진 감옥이다. 90일간의 겨울안거를 해제하는 법회를 하루 앞두고, 그 안에 갇혀 있던 스님 9명이 석방됐다. 그중에는 84살의 노승인 무금선원 조실 무산 오현 스님도 있다. 스님은 지난 3년간 여름, 겨울 3개월씩 연중 절반은 자신을 이곳에 가뒀다. 감옥이 고통스러운 것은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옥을 자처한 이들에겐 부자유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을 직시하는 것일지 모른다.

84살 노스님인 조실 무산 오현 스님
3년간 여름·겨울 2번씩 스스로 가둬

부자유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나를 직시하는 것

혼자이자 비로소 홀로가 아님 알아
한 몸 견성성불 못한 것보다
중생 뜨겁게 사랑 못한 게 더 한탄

겨울잠 깬 개구리처럼
우물 뛰쳐나와 세상 속으로

조실 스님 “자기를 먼저 보라” 사자후

“미꾸라지나 잡룡 아닌 잠룡이 있나”며
‘오늘’이라는 시조 읊어

“가재도 잉어도 살았던 봇도랑에
더러운 물만 흘러들어
진흙탕 미꾸라지가 용트림하는 오늘”

애벌레가 나방이 된 것일까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조실 무산 오현 스님의 ‘내가 나를 보니’다. 선시조에 일가를 이룬 노승의 고백치고는 너무도 적나라하다. 그 애벌레가 나방이 된 것일까. 나이답지 않게 날렵한 몸과 사뿐한 걸음걸이다. 얼굴은 청수하다. 그보다 젊은 스님들도 해사하고 경쾌하긴 마찬가지다. 이번 무문관 결제에 동참한 법인 스님은 몸무게가 5㎏이 빠졌다.

이번 무문관 안거엔 선방 고참으로 무문관 주요 책임인 ‘유나 소임’을 맡고 있는 영진 스님과 선·교(禪·敎)를 겸비한 한산사 선원장 월암 스님, 일지암 암주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인 법인 스님, 지리산 백장암 전선원장 원융 스님, 백양사 선원장 무아 스님 등 고참이 많았다. 이들은 3평 독방에서 철저히 혼자였다. 그러나 혼자 있으면서 비로소 ‘홀로’가 아님을 알았다니 아이러니다. 이날 독방에서 나온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내 덕행으로 음식을 앉아 받아먹기가 너무도 부끄러웠다”고 했다. 월암 스님은 “한 끼 밥과 쌀 한 톨에 담긴 중생들의 은혜가 너무 커서, 가시방석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한 몸 견성성불을 하지 못한 것이 한탄스러운 것이 아니라, 중생 한 분 한 분을 한번도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한탄스러워 참회가 되더라”는 것이다.

무문관엔 오전 10시30분~11시까지 한번의 식사가 배달됐다. 백담사 공양간에서 이곳까지 음식을 지게로 져나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젠가는 식사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 식사가 들어오지 않았다. 2시간도 더 지나서야 행자가 배식구를 열었다. 행자는 눈물을 글썽인 얼굴을 푹 숙인 채 손을 모으며 “죄송합니다”라고 사죄했다. 밤사이 큰 눈이 와 행자 몇이서 눈 터널을 뚫어가며 오느라 그렇게 늦어진 것이었다. 밖에 일이 있어 출타한 대중들이 큰 눈으로 돌아오지 못해 갓 출가한 행자 몇명만이 노심초사하며 밥을 해 배달해온 것이다. 영진 스님은 “땀으로 범벅이 된 행자를 본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고 고백했다.

동안거 해제법회에서 법문에 앞서 절을 받는 동안 합장하고 있는 무산 오현 스님
동안거 해제법회에서 법문에 앞서 절을 받는 동안 합장하고 있는 무산 오현 스님

오현 스님이 백담사 무금선원과 기본선원, 신흥사 향상선원에서 동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을 향해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보라”는 법문을 하고 있다.
오현 스님이 백담사 무금선원과 기본선원, 신흥사 향상선원에서 동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을 향해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보라”는 법문을 하고 있다.

월암 스님과 영진 스님, 법인 스님(왼쪽부터)이 무문관을 나온 자신들을 마중나온 신자들과 만나고 있다.
월암 스님과 영진 스님, 법인 스님(왼쪽부터)이 무문관을 나온 자신들을 마중나온 신자들과 만나고 있다.

‘산과 들 어혈 다 풀었다는 개구리’

그러니 아무도 보지 않는 안에서도 게을러질 수 없었다고 한다. 벽에 기대거나 오래 누우려고 해도 허리가 아파 그리할 수가 없고, 정좌로 앉아 참선하는 게 최선이었다는 것이다. 좁은 방에서 포행을 하거나 108배를 하거나 기침을 할 때도 옆방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단다.

그나마 지금은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 1998년 무문관을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조실 스님이 “공부하는 출가자들이 바람 맞고 비 맞아가면서도 공부하는 것 아니냐”며 흙집에서 시작해 10년 넘게 그런 시설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한번은 옆방에서 문을 쾅쾅쾅 차며 악을 쓰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 소란이 계속되는데도 문이 잠겨 있으니 나가볼 수도 없었다. 영진 스님은 해제 날 옆방 스님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내 방을 한번 보라”며 보여주는데, 흙벽이 뻥 뚫려 있었다. 갑자기 보일러가 터져 보일러실의 물이 방으로 밀려들어 물이 차오르는데도 피신할 수 없어 그랬다는 것이었다. 영진 스님은 “그때 보일러실 물이 덜 데워졌기에 망정이지, 닭백숙이 될 뻔했다”며 웃었다.

겨울잠을 깬 개구리처럼 이들은 우물을 뛰쳐나와 세상 속으로 향한다. ‘경칩, 개구리/ 그 한 마리가 그 울음으로// 방 안에 들앉아 있는/ 나를 불러쌓더니// 산과 들/ 얼붙은 푸나무들/ 어혈 다 풀었다 한다’

조실 스님의 시조 ‘출정’(出定)은 ‘선정에서 나올 때’, 즉 참선을 끝내고 세상에 나가는 것을 동면을 깬 개구리에 비유했다. 지금 얼어붙어 있는 것은 산과 들이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이다. 어떻게 어혈을 풀까.

“좋은 것에도 싫은 것에도 평등하게”

무문관 수행자들은 “무문관보다 우리를 더 구속하는 것은 따로 있다”고 했다. 월암 스님은 안이비설신의(눈귀코혀몸뜻)에 지배당하는 것이야말로 구속이라고 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등 외부 상황에만 끌려다니는 게 진짜 속박”이라는 것이다. 법인 스님은 “좋아했던 것만 애착하고 싫어했던 것을 혐오하기만 하는 것이 진짜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더라”며 “좋은 것에도 싫은 것에도 평등하고 자애롭게 대할 때가 감옥에서 나오는 때”라고 했다. 그러니 “이곳이 감옥이 아니라 집착과 혐오에 사로잡힌 바깥세상이야말로 감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치열하게 자신을 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선악 2분법의 세상에서는 “그러면 좋은 자와 나쁜 놈을 똑같이 대하라는 말이냐”고 면박당하기 일쑤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조실 스님은 그런데도 10일 해제법회에서 “자기를 먼저 보라”고 사자후를 토한다. “대통령, 대기업 회장, 고위 공직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검판사가 아니라 자기의 행위이므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보고, 자신의 행위를 똑바로 보라”는 것이다. 그는 또 대선 정국과 관련해 “이번엔 삼독(탐욕·분노·무지)의 불길을 잡는 사람이 민심도 잡고 대권도 잡을 것”이라며 “먼저 자기 자신이 삼독에 젖어 있는지를 못 보면, 타인의 허물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을 바로 세우기는커녕 자신도 그 허물을 되풀이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니 “자기의 허물을 먼저 봐야 공명정대해지고,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시인다운 해학을 담아 “미꾸라지나 잡룡이 아닌 잠룡이 있느냐”며 ‘오늘’이란 시조를 읊었다.

‘가재도 잉어도 다 살았던 봇도랑에/ 맑은 물 흘러들지 않고 더러운 물만 흘러들어/ 진흙탕 좋아하는 미꾸라지 놈들/ 용트림할 만한 오늘’

백담사(인제)/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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