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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권력자 향한 고승의 일침…“친구면 ‘그래선 안 된다’ 해야”

등록 2023-06-13 15:51수정 2023-06-14 02:46

탄허스님 생전 녹취록 정리한 ‘탄허스님의 선학 강설’
탄허 스님. <한겨레> 자료 사진
탄허 스님. <한겨레> 자료 사진

사해의 바닷물을 다 마셔보아야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선지식은 바다 구경을 하지 못한 중생에게도 바다의 짠맛을 단박에 일러준다. 장강대하 같은 고금의 지식의 요체를 손에 쥐여주는 이로서 탄허 스님(1913~1983)을 능가할 이가 있을까. 유·불·도에 달통했던 탄허 스님의 육성법문이 후학들의 노력으로 40여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탄허스님의 선학(禪學)강설>(불광출판사 펴냄)이다.

‘유교는 정(正)으로써 교(敎)를 베풀고, 도교는 높은 것으로 교를 베풀고, 불교는 큰 것으로 교를 베푼다.’ 불교 하나만으로도 팔만사천경이라고 하는데, 탄허 스님은 유불도를 통달한 자답게 쾌도난마식으로 요체를 선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다고 해서 불교로 정치를 못한다는 말이 아니고, 또 유교로서 마음을 못 다스린다는 말이 아니다”라며 “어떤 것이 깊으냐 옅으냐, 어떤 것이 우세하냐 열세하냐를 따지는가다”라고 해설한다. 이어 옛글을 인용하며 “불(佛)로써 마음을 다스리며, 도(道)로써 몸을 다스리며, 유교로써 세상을 다스린다”고 요약 정리한다.

탄허 스님은 독재자에 대한 일침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초기 경전을 들어 ‘아이들은 우는 걸로 자기 요구를 관철하려 들고, 국왕은 칼자루를 들고 있기 때문에 툭하면 말 안 들으면 죽이려고 교만으로 능(能)을 삼는다’고 했다. 탄허 스님은 또 “최고 권력자에게 요즘 친구가 없다”고 꼬집으며 이렇게 말했다.

“최고 권력자 옆에 친구라는 것은 ‘그래서는 안됩니다’라고 해야 한다. ‘옳소, 옳소, 지당하외다’ 하는 건 친구가 아니다. 무조건 지당하다고 하는 것은 ‘지당대신’이지, 강태공 같은 친구가 있으면 천자가 앞에서 잘못할 수가 있겠나. 어림도 없다. 병법에도 첫배기에 뭬라 나오는고 허니, ‘천하는 천하 사람의 천하지,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다’고 딱 못 박아놓았다. 얼마나 잘됐어? 유교적이지. 옛날 군주정치라고 독재인 줄 알았지?”

탄허 스님은 마치 요즘 ‘안보’를 되뇌며 전쟁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세태를 보듯 진시황의 만리장성 이야기를 통해 이를 비꼰다. 이른바 소위 ‘도인’이라는 자들이 내놓는 비결(秘訣)에서 ‘나라 망칠 놈은 호(胡)라’고 하자 오랑캐를 막는다며 헛되이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실은 나라 망친 자는 자신의 아들 ‘호해’로, 밖이 아니라 자기 집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탄허 스님이 들려주는 고려의 유학자 목은 이색 이야기를 보면, 요즘 한·중 관계의 기세 싸움과 별반 다름이 없다. 목은이 중국에 특사로 가자 중국 대신은 목은의 기를 죽이려고 <맹자>를 들어 ‘금수 같은 것들이 중국에 왔구나’라고 비웃는다. 그러자 목은 역시 <맹자>를 들어 ‘웬 개소리, 닭소리가 나네’라며 그들을 압도했다. 목은은 중국에 가서 과거를 봐 장원을 해 장안을 놀라게 했다. 또한 중국 특사가 고려에 들어오며 압록강을 건너올 때 뱃사공으로 변장한 목은이 해박한 문장과 변설로 중국 특사가 입도 벙긋 못하고 돌아가게 했다는 일화를 전한다. 당시도 한·중간 기세 싸움은 있었지만, 품위 있는 문장과 말씨로 실력 대결을 펼친 셈이다.

이 책은 탄허 스님을 가깝게 모셨던 교림출판사 서우담 대표가 보관한 녹취록을 이승훈 전 한국불교학회 사무처장이 윤문 주석하고, 월정사의 후원을 받아 김성철 전 동국대 교수가 정리해 세상에 나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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