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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어느날 통증이 산산이 박하사탕같이 ‘싸~’

등록 2017-03-28 20:48수정 2017-03-29 08:37

[조현 종교전문기자의 휴심정] 위파사나 체험기

명상하는 사람들. 사진 담마 제공.
명상하는 사람들. 사진 담마 제공.

엎어진 김에 쉬어 가는 것도 좋다. 땅에서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쓰러진 그 땅이 다시 설 수 있는 발판이다. 1년의 휴직기에 해외 대안공동체들과 히말라야를 순례한 것 말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게 명상이었다.

세상엔 수많은 명상·수행법이 있다. 그런데 동서 종교를 망라해 다양한 수도법을 경험해본 내가 이번에 선택한 것은 위파사나였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고엔카 위파사나’로 알려진 것이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행법인 위파사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의 관찰명상법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를 깨달음으로 이끈 수행법이다. 위파사나는 인도에서는 사라졌으나 미얀마에서 보존됐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위파사나도 진화하고 변화했다. 그런데 ‘고엔카 위파사나’만은 붓다가 수행할 당시 그대로 원형을 유지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위파사나가 ‘생각’ 관찰을 중시하는 데 비해, ‘고엔카 위파사나’는 ‘몸의 감각’을 관찰한다. 오랜 ‘등 통증’에 시달려온 내가 이 명상을 택한 것은 내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을 세밀히 관찰하고 싶어서였다.

인도 장기 여행자 체험 1순위

미얀마 출신 인도인 고엔카(1924~2013)에 의해 인도로부터 전세계로 전해진 이 명상법은 인도 장기 여행자에게 체험거리 1순위로 꼽힌다. 특히 서구 지식인들이 많이 한다. 지난해 방한한 <사이언스>의 유대인 저자 유발 하라리는 “지난 10여년 동안 매년 연말이면 30~60일씩 인도의 위파사나명상센터에 가서 외부와 단절한 채 이 명상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얀마에서 스승 우바킨으로부터 14년 위파사나를 배우고, 스승의 명에 따라 조국 인도로 건거나 명상법이 멸실된 인도에서 위파사나 붐을 일으키며, 전세계에 위파사나 명상법을 널리 퍼트린 재가자 고엔카. 담마코리아 제공
미얀마에서 스승 우바킨으로부터 14년 위파사나를 배우고, 스승의 명에 따라 조국 인도로 건거나 명상법이 멸실된 인도에서 위파사나 붐을 일으키며, 전세계에 위파사나 명상법을 널리 퍼트린 재가자 고엔카. 담마코리아 제공
나도 15년 전 인도 장기 순례 때 10일 코스를 두 차례나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다 통증이 심해지자 다시 생각난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일하게 그 명상을 하는 전북 진안 ‘담마코리아 명상센터’를 찾았다.

담마코리아는 모든 명상센터를 통틀어 가장 엄격하다. 하루 전에 도착하고, 10일 명상을 마친 다음날 퇴실하기에 12일이 필요하다. 도착 즉시 휴대폰과 자동차 열쇠나 책, 잡지는 모두 맡겨야 한다. 선승들조차 안거 중에도 외부와 전화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이곳에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새벽 4시 기상하고 30분 뒤 명상을 시작해 식사 시간과 잠깐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밤 9시30분까지 빈틈이 없다. 식사도 ‘오후 불식’이다. 아침 6시 죽, 오전 11시 밥을 먹으면 그날 식사는 끝이다. 식사는 채식뿐이다. 신체를 접촉해서도, 말을 해서도 안 된다. 모두 독방을 사용한다. 지루함을 달래줄 어떤 이벤트도 없이 지상에서 가장 지루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어떤 종교적 예식도 없다. 종교적 상징물이나 그림조차 걸려 있지 않다. 오직 관찰법만을 제시하기에 무종교·기독교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처음부터 몸 전체의 감각을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엔 호흡을 관찰한다. 오직 들숨과 날숨이 드나드는, 코와 윗입술 사이의 감각만을 관찰한다. 번뇌로 인해 흩어지는 마음을 한 지점에 모아 집중력을 개발하기 위함이다. 번뇌 망상으로 가득 찬 마음이 쉽게 한군데로 모아지긴 어렵다. 심장이 멎기 전엔 코로 숨이 드나드는 게 분명하지만, 처음엔 어떤 감각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 무료한 집중을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코 아래 미세한 감각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그만큼 마음이 예리해진 것이다.

그러면 4일째부터 감각 관찰이 시작된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부분 부분으로 나누어 관찰한다. 가려움, 통증, 발열감, 냉기 등 일체의 감각을 세밀히 관찰한다. 이 명상법은 마음의 모든 불순물은 결국 감각으로 표현된다고 본다. 즉, 감각을 보는 것이 마음을 보는 것이다.

명상홀에서 위파사나 명상중인 사람들. 앉아서 좌선하기 힘든 예외적인 경우엔 의자에 앉아 명상하는 게 허용된다.
명상홀에서 위파사나 명상중인 사람들. 앉아서 좌선하기 힘든 예외적인 경우엔 의자에 앉아 명상하는 게 허용된다.

오랫동안 괴롭혀온 등 통증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붓다가 수행한 원형 유지한
고엔카 위파사나 명상을 택했다
한국 유일의 ‘담마코리아 명상센터’
10일 코스 지상 가장 지루한 여행

새벽 4시 깨 밤 9시30분까지 촘촘
식사도 아침 6시, 오전 11시 두 끼
어떤 말도 해선 안되고 독방 수행
5일째부터는 한 시간씩 하루 세 번
몸 꼼짝 않는 좌선으로 고행
이 명상 목적은 치병술 아닌 깨달음
쾌감도 불쾌감도 그냥 관찰할 뿐
중도에 벌떡 일어나 포기하기도

전북 진안에 폐교터에 꾸민 담마코리아 명상센터. 최근 한 수련생의 기부로 새로운 명상센터 건립 계획을 시작했다.
전북 진안에 폐교터에 꾸민 담마코리아 명상센터. 최근 한 수련생의 기부로 새로운 명상센터 건립 계획을 시작했다.

이 명상이 통증 치료법은 아니다. 고엔카는 20대에 미얀마의 재벌이 됐지만, 편두통이 극심했다고 한다. 그는 전세계의 명의를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미얀마 독립정부의 초대 재정장관으로 이 명상법을 가르치던 우 바 킨을 찾아갔다. 그때 편두통을 나으려고 이 명상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우 바 킨은 ‘이 명상은 진리를 깨닫기 위함이지 치병술이 아니다’며 ‘당장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러나 전미개오(번뇌를 깨달음으로 전환시킴)가 미혹한 중생의 꿈이듯,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는 고진감래(고생 뒤의 기쁨)를 고대하기 마련 아닌가.

그러나 어찌 거저 주어지는 것이 있으랴. 5일째부터는 한 시간씩 하루 세 번 ‘아딧타나’(강한 결심으로 앉기)라 하여,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 좌선이 시도된다. 골반과 무릎이 조여오고 복숭아뼈가 부서질 듯하고 파리나 모기가 앉아도, 가려워도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고행이다. 다리뼈가 엉겨 부러질 듯해도 움직이지 않고 참다 보면 끝나는 종소리는 영원히 울릴 것 같지 않다. 이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 중도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고행을 이겨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통증이나 가려움에서 미세한 파동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단 한 번의 10일 코스로 원하는 체험을 다 얻을 수는 없다. 내 경우 연이은 3번째 코스에서 통증이 진동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토록 고통스럽던 통증 부위로 박하사탕이 쏟아져나오는 듯한 시원한 감각이 일었다. 그 쾌감에 잠겨서는 종이 울려도 한나절씩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명상은 통증처럼 싫은 감각을 쫓아버리고 쾌감을 불러오는 게 목표가 아니다. 인간은 늘 쾌감을 갈망한다. 반면 통증 같은 감각을 혐오한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여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 대해선 죽고 못살 듯 애착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에 대해선 증오심에 불탄다. 그래서 갈망과 혐오의 쳇바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명상코스 참가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12일간 아무 대가없이 식사를 비롯한 일체의 뒷바라지에 나선 봉사자들.
명상코스 참가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12일간 아무 대가없이 식사를 비롯한 일체의 뒷바라지에 나선 봉사자들.
상주자 없이 경험자가 무료 봉사

이 명상에선 쾌감도 불쾌감도 오직 ‘있는 그대로’ 관찰할 뿐이다. 그래서 어떤 감각도 ‘일어났다가 사라져갈 뿐’이라는, ‘아니짜’(무상)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따라서 쾌감에도 집착하지 않고 불쾌감을 증오하지도 않는 평정심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은 쾌감이나 불쾌감을 나와 동일시해서 들뜨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실험동물을 관찰하듯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가능한 경지다.

거친 감각들이 미세한 진동으로 용해되면 오래 묵은 상카라(부정성)들이 피부 표면으로 올라온다. 그래서 가끔 독충이 문 것처럼 벌겋게 피부가 부풀어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도 평정을 지켜내는 노력은 지속된다. 그렇게 금이 정련되기 위해 불가마를 통과하듯 관찰과 평정 속에서 마음의 불순물이 태워지는 것이다.

붓다의 명상법을 순수하게 보존해온 미얀마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고엔카 주도로 양곤의 쉐다곤파고다를 본띠 인도에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진 위파사나명상센터인 글로벌센터
붓다의 명상법을 순수하게 보존해온 미얀마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고엔카 주도로 양곤의 쉐다곤파고다를 본띠 인도에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진 위파사나명상센터인 글로벌센터
이곳에서 놀라운 것은 명상만이 아니다. 이 명상센터엔 평소 상주자가 한 명도 없다. 코스가 열릴 때만 명상 경험자들이 타인들의 명상을 돕기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며 돕는 무료봉사에 나선다. 코스 참가비도 없다. 코스를 마친 뒤 다음 코스 참가자를 위해 원하는 만큼 기부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방식으로 세계 160여개 명상센터가 유지되고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담마코리아 명상센터 누리집 https://www.korea.dhamma.org/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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