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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하느님에게 화내도 괜찮다”

등록 2017-05-23 18:08수정 2017-05-23 20:20

[조현 기자의 휴심정] 속풀이 상담하는 홍성남 신부
홍성남 신부가 양을 지고 가는 예수의 그림을 가리키며 자기는 양을 바닥에 내팽개쳐 스스로 기어올라오게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홍성남 신부가 양을 지고 가는 예수의 그림을 가리키며 자기는 양을 바닥에 내팽개쳐 스스로 기어올라오게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63) 신부만큼 욕을 많이 먹는 사제도 드물다. 그의 강의에 등장하는 ‘하느님·예수님’은 완전무결한 분이 아니다. 그의 일화에서는 ‘하느님이 과로사 직전’이거나 ‘개나 소나 천당에 가 천당이 완전히 망가졌다’거나, ‘내가 혼자 살다 죽어 총각귀신이 된 것도 억울한데 나를 힐난하다니’라고 하소연하는 예수까지 등장한다.

그가 이번에 <챙기고 사세요>(아니무스 펴냄)란 책을 냈다. <풀어야 산다>, <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 쉬어>에 이은 ‘신부님의 속풀이 처방전’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그의 책엔 이렇게 ‘망가진 하느님과 예수’의 일화가 가득하다. 그러니 엄숙하고 경건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 예수를 농담 대상으로 삼는 이야기를 선뜻 받아들일 리 없다. 그가 본당 주임으로 있을 때 이런 일화를 들어 강론을 하고 나면 아침부터 전화가 와서 이름도 안 밝힌 채 “왜 복음대로 안 하느냐”, “정신 나간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술자리만 찾고 상종도 안하고..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가 있는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만난 홍 신부는 “왜 그렇게 욕먹을 일을 자처하느냐”는 물음에 “우리가 저 위로 못 올라가니까, 그분을 우리 곁으로 오게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모든 종교들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인다. 나를 죽이고 남을 살리는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게 마련이다. 다른 이들도 높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인간의 마음은 여리고 약한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도 기대치를 더 높인다. 그러면 자신은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돼 숨도 쉬기 어려운 신경증까지 생긴다.”

홍 신부가 신자들의 속풀이에 발 벗고 나선 것은 40대 중반 ‘심리상담’을 공부하기 전까지 자신이 바로 화를 쌓아놓고만 있던 전형적인 환자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당에 나간 그는 침묵과 절제된 수도원 수도자가 되기를 꿈꾸며 엄격하고 경직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 죄에 대해 성찰하면 할수록 불안과 세심증이 심해졌다. 예쁜 여자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겉으로는 열심인 신자였지만 내적으로는 감옥살이였다.

그는 그 후 성당에 발길을 끊었다. 개신교 교회를 다니기도 하고, 불도를 닦기도 했다. 대학도 ‘돈을 벌어보겠다’며 경제학과를 다녔다. 그러던 중 1980년 크리스마스 때 ‘종교적 환시’를 경험한 뒤 신의 존재를 알고 싶어 가톨릭신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신학을 통해 신 존재를 규명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베라와 해방신학자들의 책을 탐독하면서, 노동동아리 밀알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마침내 서품을 받고 근무한 1980년대 후반의 명동성당은 시위대와 경찰로 문전성시였다. 그러나 사회변혁에 앞장서 달라는 청년들의 요구를 들어줄 용기도 없었다. 그때 다른 성당으로 발령이 났다. 무기력증이 왔다. 그러자 술자리만 찾고 싫은 사람들과는 상종하기조차 싫었다. 철밥통을 지켜야 하나, 양심상 옷을 벗어야 하나 결단이 필요한 지경이었다. 그때 심리상담을 해주는 가톨릭수도회의 한 신부를 만났다.

“그 신부님은 ‘신’ 얘기는 하지 않고, 자꾸 ‘내 마음’에 대해 물었다. 얘기를 하다 보니, 그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았다. 그게 화도 나고 신기해서, 나도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서 심리상담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강의하는 홍성남 신부.
강의하는 홍성남 신부.

상담하는 홍성남 신부.
상담하는 홍성남 신부.

그만큼 욕 많이 먹는 사제도 드물다
강론 다음날 전화통에 불이 났다
‘망가진 하느님과 예수’ 일화에
“정신 나간 것 아니냐”는 비난 쏟아져

욕 먹을 일을 자처하는 건
“우리가 저 위로 못올라가니까
그분을 우리 곁으로 옥 한 것뿐”

엄격하고 경직된 신앙생활에 지쳐
개신교나 불교에 기웃거리기도 했다

40대 중반 ‘심리상담’ 공부 전까진
화를 쌓아놓고만 있던 환자

“꼴도 보기 싫으면 이혼해라”
벼랑 끝 처방도 서슴없이 한다

“좀 더 평안하게 하느님 만나도 돼”

그는 심리치료를 공부하면서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돌볼 수 없다는 것과 함께 예수님이야말로 탁월한 상담가이자 심리치료사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자신을 재발견한 것도 그 공부를 통해서라고 한다. 그는 “앞에 열 명만 있어도 말하는 게 떨려 내성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지금은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나고, 앞에 카메라만 있으면 신나서 떠든다’는 것이다. 자기 욕구의 재발견이었다.

그가 내담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기다려주는 일반적인 상담가와 달리 “남편이 그렇게 꼴도 보기 싫으면 이혼하라”고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것도 나름 용기가 생긴 때문이다. 그는 “벼랑 끝에도 아무도 구해줄 사람이 없다고 느껴야만 변하지 좀체 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때로는 극약처방을 쓰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그렇게 되기 전에 평소부터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 마음 안에 상처와 콤플렉스가 많은데도 치료받지 못한다. 콤플렉스가 누적되면 폭력적이 된다. 어려서 상처에서 피가 철철 나는데 아무도 그 피를 안 닦아줘 지금도 피를 흘린 채 살고 있다면 정신이 건강할 수 없다.”

그는 “화를 쌓아놓지 말고 그때그때 해소하라”며 “그 대상이 하느님이어도 괜찮다”고 한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목사인 아버지가 열성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도 신을 무서워하고 우울한 것을 보면서 그 고통을 덜어주려 심리학 공부를 했다고 한다. 스페인 카르멜 수도원이 타락했을 때 개혁한 대데레사는 타고 가던 마차가 넘어지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하는데, 홀로 ‘이게 뭐냐’며 하늘에 삿대질을 했다고 한다. 이제 좀 더 평안하게 하느님을 만나도 된다.”

“문 대통령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

그는 세대별로 다른 심리 특성을 설명한다. 나이 든 세대는 공동체 의식과 충성, 우애, 효도 같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 모든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스트레스를 쌓아와 신경증이 강하다고 한다. 반면 과보호를 받고 자란 젊은 세대는 자기밖에 모르거나 손해 보는 일을 조금도 하려 들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성격 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성격 장애’가 심하면 뭐든 자기 마음대로 다 하려고 하고,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온 국민이 죽어난다”면서, ‘본인을 왕족쯤으로 생각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이런 부류로 설명했다.

그는 이와 달리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경건한 ‘수도자 콤플렉스’에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끝까지 도와야 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성향이어서, 힘들면 주위에 하소연도 하고, 휴식과 수면, 소화 등을 잘 챙겨야 한다”고 권했다.

홍 신부는 상담가 25명과 함께 도반모임 카페(cafe.daum.net/withdoban)를 통해 인터넷 상담을 해주고,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대면상담과 전화상담을 하루 5명씩 해주기도 한다. 상담신청 전화는 (02)727-2516, 문자신청은 010-5032-7422.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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