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허허벌판 ‘커피발전소’가
이웃사촌 정 나누는 마중물
세월호 참사 울분으로 새 삶 눈떠
분향소 차리고 주말마다 촛불문화제
마을책방에 하나둘 모이면서 ‘작당’
공방 가게, ‘마당’ 탁구대, 만둣집…
빈 집터 텃밭에선 음식 나누고
두세명만 모여도 모임, 모임…
술꾼모임이 남성합창단으로
아내들은 속상한 마음 푸는 ‘천불회’
협동조합 만들고 마을잡지도 내
교하·파주 등 이웃들도 점점 동참
이웃사촌 정 나누는 마중물
세월호 참사 울분으로 새 삶 눈떠
분향소 차리고 주말마다 촛불문화제
마을책방에 하나둘 모이면서 ‘작당’
공방 가게, ‘마당’ 탁구대, 만둣집…
빈 집터 텃밭에선 음식 나누고
두세명만 모여도 모임, 모임…
술꾼모임이 남성합창단으로
아내들은 속상한 마음 푸는 ‘천불회’
협동조합 만들고 마을잡지도 내
교하·파주 등 이웃들도 점점 동참
파주 문발동 28통 공방골목 사람들
경기도 파주 문발동 28통 공방골목은 10여년 전부터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들이 한 집 두 집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 변두리에 하나둘 모여든 새내기 주민들이 수백년 된 전통마을에서도 보기 어려운 ‘이웃사촌’이 되었다. 8년 전 허허벌판인 이곳 사거리에 세워진 ‘커발’(커피발전소)이 마중물이다. 인근 교하도서관에서 일하던 이정은(48)씨 등이 ‘커발’ 안에 ‘동네책방’인 ’발전소책방.5’를 내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작당’이 시작됐다. 삼삼오오 수다를 떨던 사람들은 이제 매주 독서모임을 하고, 일본어 공부를 하고, 함께 여행을 한다.
‘커발’ 옆엔 ‘짝작’이라는 가게가 있다. 이 인근에서 도자기공방을 하는 김연희씨(47)와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인 김영진씨(49) 등 문화예술인 12명이 조합을 만들어 낸 가게다. 조합원들이 도자기나 가죽제품 같은 자기 상품을 진열할 가게가 없어서 이 가게를 낸 게 아니다. 조합원들도 다 가게를 가지고 있는데도 공동가게를 낸 것은 순전히 ‘함께 놀기 위해서’다.
맞벌이 부부 아이, 마을이 키워
‘짝작’에서 다시 몇걸음 옮기면 ‘마당’이 있다. 성공회 최석진(51) 신부가 제공한 1층 실내공간 20여평이 이 마을 ‘마당’이다. 마당 한가운데는 이사 간 이웃이 버리고 간 헌 탁구대가 놓여 있다. 이 탁구대에서는 ‘우동탁’(우리동네탁구)을 비롯해 불금엔 ‘불탁’, 청년들의 ‘청탁’, 아이들의 ‘아동탁’, 부부 복식조인 ‘부부탁’ 등의 모임이 있다. 매주 한 번씩 마을합창단 ‘파노라마’ 연습도 이 탁구대에 둘러앉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틈만 나면 온갖 핑계를 만들어 ‘밴드’에 누군가 ‘모이자’고 선동을 하면, 금방 요리 하나씩을 해서 들고 포틀럭 파티를 펼치는 곳도 이 탁구대다. 한마디로 비용 대비 효율 면에서 세계 최고인 탁구대다. 부모들을 따라온 아이들은 탁구대 주변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가자’고 하면 더 놀겠다고 떼를 쓴다. 이곳에 엿을 붙여놓은 모양이다. 이 마을에 사는 김영준 피디(47)가 이곳 마당을 주제로한 단막 드라마를 찍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지원에 당첨돼 이 마을 이야기를 리얼드라마로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당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박상희(47)·박경희(43)씨 부부네 이층집 1층 공간도 마을사람들의 아지트다. 이 집에 사는 산이(13), 연이(10), 훤이(6) 등 3남매도 부모를 따라 친구들이 놀러 오는 게 반갑다. 박씨 부부가 맞벌이를 했는데도 육아 돌보미를 따로 두거나 아이를 딴 데 맡기지 않고 세 아이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마을사람들과 ‘함께해서’ 가능했다.
‘커발’의 오른편엔 또 하나의 아지트가 있는데, 이재정(51)·전영미(47)씨 부부가 하는 만둣집 ‘손수’다. 모임을 끝내 출출해진 마을사람들이 ‘만원의 행복’ 파티를 열곤 하는 곳이다. 만원 범위 내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으니 이윤이 남을 턱이 없는데도 부부는 ‘주린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두 팔을 벌린다.
이래저래 마을사람들은 갈 곳 천지다. 이제 봄이 왔으니, 아직 집을 짓지 않은 땅을 빌려 텃밭도 가꿀 때다. 텃밭 가에 둘러앉아 상추튀김도 해 먹고 콩나물비빔밥도 해 먹는다. 그 옆에선 공방 사람들이 내놓은 작품들을 전시한 ‘프리마켓’도 열린다. 공릉천에서 자전거를 타는 자전거타기모임, 낚시모임, 주말이면 10여㎞를 달리는 마라톤 모임, 함께 시를 읽는 시모임 등 모임의 수를 다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저 두세명만 모여도 모임이 하나씩 만들어진다.
자전거, 낚시, 마라톤, 시 읽기…
이렇게 희한한 동네로 변모한 것은 불과 4년 전부터다. 그 전까지는 만둣집 이재정씨를 비롯한 중년 남자 몇명이 심심하면 모여 술이나 마시고 당구를 치는 정도가 주모임이었다. 그런데 4년 전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이재정씨는 세월호가 큰아들과 같은 나이의 아이들과 함께 영영 가라앉아 버리는 것을 보고 공황장애가 왔다. 그러던 중 동네 술친구들과 분향소라도 가보자고 했다. 그런데 파주엔 분향소마저 없자 이들이 나서 분향소를 만들고, 주말마다 13차례의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예전엔 술 취하면 ‘내가 어쩌다 이 변두리까지 밀려났나’ 푸념하든지 ‘어떻게 돈 좀 벌어볼 방법 없을까’ 궁리하던 중년남자들이 번갈아 분향소를 지키던 중 삶이 바뀌었다. 이들이 술꾼모임이 아니라 ‘파노라마’란 남성합창단을 만든 것이 희한한 변화의 서막이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파주 추모모임’(세파모) 운영위원인 박인애(49)씨는 “아이들한테 ‘공부만 하라’고 하고, ‘가만히만 있어라’고 하던 우리가 세상을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제 우리 그전처럼은 다시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는 세월호 엄마들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공부 강요는 그만두고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그러자 아이들에게만 새 세상이 열린 게 아니었다. 이웃끼리도 서로의 아픔을 보고, 들어주고 나누면서 4년을 지내다 보니 피를 나눈 형제들보다 더 가까워져 버렸다.
여성들도 합창단에 끼워 달라자 파노라마는 4중주혼성합창단이 되었다. ‘파노라마’는 이제 조형근 한림대 교수의 기타 반주로 파주 일대 행사 때마다 불려다니는 귀한 몸이 되었다. 또 여성 13인은 남자들만의 낚시모임에 대항해 ‘천불회’도 만들었다. 남편·아이들 다 재워놓고 밤 10시에 생일을 맞은 여성을 ‘천불퀸’으로 모셔, 그가 남편 때문에 ‘천불이 난’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놓게 한다. 그러면 다른 여성들이 ‘나는 그렇게 천불이 났을 때 이렇게 했다’고 나서면 집단상담이 된다.
올해 3·1절엔 드디어 거사
이제 이 마을은 질적인 변화까지 시도한다. 마을책방은 이제 협동조합이 됐다. 또 편집장인 느티나무도서관 사서 서상일씨(42)와 북디자이너 여현미(44)씨와 사진활동가 김지하(41)씨 등 주민기자단이 <디어 교하>라는 잡지도 만들고 있다. <디어 교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 동네 사람들이다. 모임의 중심축은 28통이지만, 소문이 나면서 모임 참가자들은 문발-교하-파주로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이렇게 이웃사촌이 된 이들이 지난 3·1절엔 드디어 거사를 했다. 만둣집 이재정씨를 28통 통장으로 뽑은 것이다. 28통 전주민을 놓고 보았을 때 아직 책방이나 마당 참가자가 다수라고 볼수는 없지만, 이들의 응집력이 커서 통장 교체에 성공한 것이다. 이들은 이씨를 ‘촛불 통장’이라며 희색이 가득하다. 전형적인 ‘강남맨’이던 책방의 이윤식씨(50)가 ‘세월호’이후 변화된 것을 보면, 이 마을에서도 ‘촛불통장’이 탄생한 것이 의외는 아니다. 이들의 단결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 어디서 집단이주했냐’고 묻는다. 불과 4년 만에 이런 마을, 이런 삶,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다. 그러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도 ‘함께’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이들이 보여줬다. 그래서 ‘문발동 28통’은 별이 된 세월호 아이들이 ‘함께’하게 해준 특별한 선물이다.
파주/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틈만 나면 마을마당에 요리 하나씩 들고 와 포틀럭 파티를 열며 웃고 노는 파주 문발동 28통 공방골목 사람들.
파주 문발동 28통 입구 사거리 마을책방에서 온갖 작당을 하는 이웃사촌들.
문발동 28통 사거리에 있는 마을책방.
파주시 문발동 28통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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