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하 목사 (양주덕정교회)
자신을 쥐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자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아무리 당신은 쥐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해도 청년은 자신을 쥐라고 여겼습니다. 어느 날,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낸 의사는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맞아요, 당신은 쥐입니다.” 청년은 자신을 쥐라고 인정해준 의사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데, 당신은 정말 대단한 의사군요!” 의사는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변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쥐가 아닙니다. 드디어 사람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눈물을 글썽이며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이제 완치되었다고 생각한 의사는 그를 퇴원시켰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청년은 공포에 몸을 떨며 다시 병원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선생님! 밖에 고양이가 있습니다.” 의사는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당신은 이제 쥐가 아닌 사람이라니까요. 더는 고양이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청년이 떨면서 대답했습니다. “저도 제가 변한 것을 압니다. 하지만 선생님, 고양이도 그 사실을 알까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됨됨이입니다. 생각의 방향이 운명의 방향입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는 어떤 생각을 하였느냐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두 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이유는 바다나 바람이 아닌 키의 방향 때문이듯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은 생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제임스 앨런은 “현재 당신의 모습은 당신의 과거 생각의 결과이며, 미래 당신의 모습은, 당신의 현재 생각의 결과”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항로는 생각의 방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생각은 파문을 일으켜서 새로운 환경에 반응하고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세상은 생각한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은 살아 있는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글북>에 등장하는 모글리는 자신을 늑대라고 생각하고 늑대처럼 행동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떨어질지라도 생각은 더 깊어져야 합니다. 생각의 지평을 넓히면 인생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이 바른 생각일까요? 뇌사를 하였어도 심장이 뛰고 있으면 아직 살았다고 말하는 것같이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생각, 양자택일이 아닌 조화로운 생각, 산과 숲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통합적인 생각, 한곳에 머물러 정지되지 않고 역동적인 생각, 한쪽 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로 보는 통찰하는 생각, 실패의 경험을 차곡차곡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비우는 생각입니다. 사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은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다분히 망각과 왜곡을 거쳐 온 편집된 주관적 객관화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자기 경험에 갇힌 생각이 아닌, 내 기억이 틀릴 수 있다는 열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미래가 암울할수록, 앞길이 막힌 것 같을수록 생각은 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