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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화해는 말이 아니라 진실한 회개와 실천이다

등록 2020-01-22 13:36수정 2020-01-22 14:48

[조현의 휴심정] 쉼과 깸
#한국 교회는 지금 싸움판이다. 밖을 향한 싸움이 아니다. 내부에서 목사와 목사, 목사와 교인들이 싸우는 교회가 한둘이 아니다. 재정규모가 큰 교회일수록 싸움이 잦다. 주류 종교 가운데서도 한국 교회는 십일조가 정착돼 재정이 가장 낫다. 너무도 가난한 다수의 교회가 아닌 중대형 교회들 이야기지만 말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들의 십일조 헌납률은 2014년 기준 68%였다. 이에 비해 천주교인은 2013년 35%에 그쳤다. 불교는 1년에 한두번 시주한다는 불자가 45%였다. 그러니 재정에서 비교가 안 된다. 더구나 조직 특성상 천주교는 국가, 조계종은 공기업, 개신교회들은 사기업에 비견된다. 중앙의 감시와 견제가 많지 않다. 천주교의 경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사제들의 잘못이 드러날 경우 여자 문제는 빠져나갈 수 있어도 돈 문제가 생기면 가차없이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부설 교회문제상담소가 지난 한해 동안 88개 교회를 대상으로 140회 진행한 교회상담을 분석한 결과 분쟁 유형의 대부분이 재정 전횡과 인사·행정 전횡, 세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재정이 튼튼한 대형 교회일수록 이런 문제가 더 두드러졌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목사와 일가의 재정 전횡, 명성교회는 김삼환-김하나 목사의 부자 세습, 사랑의교회는 오정현 목사의 비리 등이 비판을 받으며 내홍을 겪었다. 실은 내홍이라기보다는 권위주의시대 목회자들이 권력을 독점한 교회를 민주화, 투명화, 정상화하는 과정이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노선 갈등과 동성애 문제에 목숨을 건 듯이 나서는 건 교회 개혁으로 가는 교인들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는 의도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진영 대립 등 사회 갈등을 풀기 위해 교회가 나섰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를 비롯한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지난달 정세균 당시 총리 지명자 등을 초청해 ‘초갈등사회 한국 교회가 푼다’는 주제로 포럼을 열고, 대통령 직속 갈등조정통합위원회를 설치하고, 민간기구 대사회갈등조정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갈등 치유와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보급할 것을 권유했다. 소목사가 갈등 해소를 위해 첫 중재에 나선 곳은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였다. 담임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 설교 대필, 허위 학력, 무리한 교회 건축 등을 비판해온 신자들이 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갱신위)를 결성해 지난 7년간 힘들게 투쟁해온 곳이다. 오 목사 쪽과 갱신위 쪽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13건의 소송도 모두 취하해 한국 교회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오 목사 쪽은 위 잘못에 대한 회개를 담아 8개 일간지에 광고하도록 한 갱신위 요구를 묵살한 채 2개 일간지에 알듯 말듯 한 광고를 내보냈다. 갱신위가 요구한 문구를 완화한 소 목사의 중재안조차 무시한 두루뭉술한 내용이었다. 갱신위는 분개했고, 위 네가지 잘못을 명기한 광고를 내보내지 않으면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우리는 전쟁과 민주화를 거치며 다른 노선과도, 독재와도 계란으로 바위를 쳐 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싸우면서 내공을 길렀다. 그러나 타협과 화해에선 그만한 내공을 다져본 적이 없다. 전사는 선명한 이로 환호를 받았지만, 화해를 부르짖으면 회색분자나 간자라는 비난까지 각오해야 했다. 그런데도 타협과 화해는 포기할 수 없다. 전쟁 중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화해를 위한 노력엔 박수를 보낼 만하다. 그러나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가 그 모범을 보였듯이 보복 없는 화해를 향한다고 하더라도 그 진실을 드러내고 이를 기반으로 회개하고 화해하지 않으면 곪은 부위에 붕대만 감은 격이 된다. 진실한 회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화해다. ‘사랑의교회’가 정말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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