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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휴심정

‘사악한 자의 미덕’ 애국주의의 ‘막춤’

등록 2016-02-02 19:07수정 2016-02-03 10:45

쉼과 깸
박근혜 정부 들어 애국주의가 유달리 강조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추어 애국을 앞세운 수구보수단체들의 활동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 중에는 종교단체들도 상당수 있는데, 주로 정부의 입맛에 맞는 집회를 열거나 심한 경우에는 정의구현사제단처럼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의 행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기도 한다.

종교인들의 왜곡된 애국주의가 빚어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이 빈발하는 이유는 권력이 자신과 반대되는 세력을 배제하는 데 직접적인 방식보다 민간을 동원하는 것이 문제가 적고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계의 빗나간 애국주의는 때로는 파국적 결과를 낳는다. 그 대표적 예는 2차대전 당시 군국주의가 지배한 독일과 일본이다. 나치 통치기 독일 주류교회는 히틀러의 아리안주의에 동조하며 파시즘을 전파하는 도구가 됐다. 히틀러를 “신이 보낸 자”, “독일 역사의 구원자”라고 찬양했고, 어용 신학자들은 예수는 유대인이 아니고 아리안족이라고 주장하면서 나치의 인종청소를 방관하거나 동조했다.

일본의 경우는 불교가 애국주의의 선두에 섰다. 이름 높은 선사들이 자진해서 제국군대의 나팔수로 자처했다. 서구에 선불교를 전파했던 저명한 승려 야스타니 하쿠운은 태평양전쟁 당시 군인들에게 “당연히 우리는 가능하면 많은 적군을 죽여야 한다. 그 이유는 자비와 충성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선은 돕고 악은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불교 교리와 역사가 거침없이 왜곡되고 살생을 금하는 계율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군국주의와 일본 불교의 유착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브라이언 빅토리아는 자신의 저서 <불교파시즘>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 승려들이 불교의 무아관과 생사불이론을 뒤틀어 일본군의 대량 학살과 집단 자살을 옹호했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처럼 일부 승려들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을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라고 칭송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왕의 의지와 명령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수많은 일본의 장교와 병사들이 적군을 죽이거나 목숨을 버렸고 자신이 하는 일의 정당성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종교인들이 군국주의자들에게 협조한 것은 아니었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로 잘 알려진 마르틴 니묄러와 본회퍼가 활동했던 독일 고백교회는 히틀러에 반대하는 바르멘 선언을 발표했고, 창가학회(SGI)는 일왕숭배를 거부하다 창시자인 마키구치 쓰네사부로가 옥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항한 종교인은 극히 드물었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
일본과 독일의 예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일제 치하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도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신사참배와 전시동원에 앞장섰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선동으로 수많은 식민지 청년들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죽어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도 빗나간 애국주의가 박근혜 정부에서 재현되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척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지적을 떠올려야 할 시점이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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