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이야기
빨간색 핸드백,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치마, 일상적으로 신는 운동화. 이 의류 잡화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전혀 걸칠 생각조차 안 하던 것들이었다. 예전에 나는 항상 최소 7센티미터 이상의 하이힐 구두를 신고, 그 구두를 덮어줄 긴 길이의 바지를 입었다. 키가 다소 작은 것을 보완하기 위해 늘 그렇게 입고 다녔다.
하루라도 굽이 낮은 신발을 신으면 자존감도 그만큼 낮아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주눅이 들었고 자신감이 없었다.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신발을 벗고 좌식으로 앉는 식당 같은 곳에 들어가면 가능한 한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면 빨리 볼일을 본 뒤 자리에 앉았다. 당시에는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사람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겉모습에 신경을 쓰느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직이 되면서 운동화를 주로 신게 됐다. 운동화를 신어보니 굽 높은 신발로 나 자신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괴롭히고 있었는지 실감했다.
굽이 높으면 몸이 구부정하게 굽거나 휘게 되고, 발과 다리가 항상 피곤해 죽을 지경이다. 키를 커 보이게 하겠다고 신은 신발인데 몸이 구부정해지니 결과는 원래 키와 큰 차이가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키에 대한 집착으로 고집했던 하이힐은 결국 내 콤플렉스이자 스스로의 고정관념이었던 것이다.
운동화를 신으니 허리와 목을 곧게 펴고 걷게 되었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운동화를 신고 다녀도 내가 남들보다 작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동화를 신으면서 자신감이 오히려 생긴 것이다.
내가 고집하며 꾸미는 스타일이 바로 내가 갖고 있는 콤플렉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무언가 이유를 들어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스타일에 손을 대보기로 했다. 가방은 항상 검은색이나 갈색만 샀는데 언제부턴가 좋아진 새빨간 색을 한번 사보았다. 빨간색 가방을 든다고 세상이 뒤집어지지도 않았고, 내가 내가 아닌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밝은 색깔에 기분이 좋아졌다. 맞다.
성취지향적인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쳐 살았을 때는 힐을 덮는 긴바지만 입었는데, 동경하기만 하고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 긴치마를 입어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느리게 찰랑거리는 긴치마의 아름다움이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나의 동작들을 여유있고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맞다. 나는 여유롭게 시간을 즐겨보지 못했던 거다.
주변을 보면 누군가는 여행을 갈 때에도 정장 차림을 고집한다. 많이 걸어야 하는데도 정장 구두를 신고, 몸에 붙는 스커트를 입고, 얇은 스타킹을 신고 추위에 떤다. 내 눈엔 스스로가 만든 어떤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손대지 못했던 색깔과 모양을 시도해보고, 기존의 틀을 깨면서 나만의 콤플렉스를 하나 버리면 어떨지.
휴리 심플라이프 디자이너
휴리 심플라이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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