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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물도 마음껏 못 마시는 삶…공중화장실이 두려운 트랜스젠더

등록 2021-07-27 12:38수정 2021-07-27 14:21

김승섭 고려대 교수 연구팀
‘화장실 스트레스’와 우울 유병률 연구
트랜스젠더 47% “화장실 피한 경험”
공중화장실 폭력 피해 23% 이르러
“회피행동만 해도 정신건강에 부정적”
서울의 한 시민단체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 강창광 선임기자
서울의 한 시민단체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 강창광 선임기자
‘화장실 가는 걸 피하기 위해 음료나 음식을 먹지 않는다’(39.2%)(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기본적인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찾는 ‘화장실’마저 트랜스젠더에겐 폭력적이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는 집 바깥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덜 먹고 마시고, 화장실 가는 걸 참는다. 탈수증, 배뇨 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랜스젠더가 화장실에서 겪는 스트레스 요인이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은 지난 7일 학술 저널인 ‘엘지비티 헬스’(LGBT Health)에 트랜스젠더 성인의 공중 화장실 관련 스트레스 요인 경험이 우울 증상 유병률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지난 2020년 10월 국내 거주 중인 19살 이상 트랜스젠더 557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 동안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는지 온라인을 통해 설문조사했다. ‘엘지비티 헬스’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성소수자 건강 관련 학술 저널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년간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한 트랜스젠더가 70%였다. ‘회피 행동(화장실에 가는 걸 피하기 위한 행동)을 한 적 있다’고 답한 트랜스젠더는 47%, ‘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는 23%에 달했다. ‘둘 다 경험한 적 없다’는 응답은 30%였다.

연구팀의 조사 결과를 보면, 공중 화장실 이용 때 ‘회피 행동을 하거나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참가자의 우울 증상 유병률이 ‘경험한 적 없다’고 답한 참가자보다 높았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 회피 행동만 한 적 있는 트랜스젠더의 우울 증상 유병률은 75.6%, 폭력 피해를 경험한 이들의 우울 증상 유병률은 73.4%였다. 스트레스 요인을 경험한 적 없다고 답한 트랜스젠더의 우울 증상 유병률은 61.1%였다. 논문의 제1저자인 이혜민 연구원은 “우울 증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을 보정해도 화장실 이용이라는 특수한 경험이 트랜스젠더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눈에 띄는 점은 폭력 피해 경험 없이 회피 행동만 해도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회피 행동만 한 경우 아무런 스트레스 요인을 경험한 적 없는 참여자보다 우울 증상을 가질 가능성이 1.22배 높았다. 이 연구원은 “회피 행동은 화장실에서 차별이나 폭력을 당하지 않으려고 택하는 전략일 수 있는데, 그 전략마저도 우울 증상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화장실 접근성이 얼마나 중요한 권리인지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고 짚었다.

연구진은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이 여성들의 안전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두 권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해당 연구를 지도한 김승섭 교수는 “같은 시공간을 살아도 사람에 따라 전선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화장실은 정치적인 공간이다. 여성들에게 위험한 공간인 동시에 트랜스젠더에게도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공간이다. 한 공간을 두고도 다양한 전선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전선을 인정하는 것이 특정 전선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란 점을 당부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부합하는 공공시설을 사용하는 것과 범죄 위험성 증가는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에서는 공공시설(화장실 포함)에서의 트랜스젠더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2016년 통과됐다. 유시엘에이(UCLA) 로스쿨 윌리엄스 연구소는 지난 2018년 이 법안의 시행과 공공시설에서의 범죄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법안 시행으로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는 공공시설을 사용하게 됐음에도 범죄 사건 발생 수나 빈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연구소는 “트랜스젠더의 공중 화장실 이용 등이 여성과 어린이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란 주장은 근거 없는 편견”이라고 설명한다.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선 ‘성중립 화장실’ 설치가 필수적이다. 국외에선 논의와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에선 직업안전위생관리국과 노동부가 2015년 ‘트랜스젠더 직원의 화장실 이용을 위한 가이드’를 냈다. 가이드에는 (1)성별 구분 없는 단독 화장실을 설치하거나 (2)성별 구분 없는 화장실이 포함된 다인용 화장실을 만들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타이완은 2016년 정부 차원에서 ‘성중립화장실 설계 정책 연구’를 진행했고, 2017년 국립 타이완대학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다.

이혜민 연구원은 “트랜스젠더는 학교나 직장에서도, 친구를 만나는 카페에서도 화장실을 참아야 하기 때문에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화장실 접근성이 삶을 제약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라면서 “한국에서도 성중립 화장실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인권재단 사람, 한국다양성연구소, 살림의원 등 일부 시민단체와 협동조합 등에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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