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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수원 세 모녀’ 빚고통에도…건보료 탕감은 ‘높은 벽’이었다

등록 2022-08-26 05:00수정 2022-08-26 20:45

세대원 나이·전월세 재산 요건 등
건보료 결손처분 기준 충족 안 돼
18개월 연체 35만여원까지 쌓여
위기가구 발굴망엔 빚 정보 없어
“가난·일자리·부채 연결고리 필요”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수원시 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25일 오후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수원시 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25일 오후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질병과 생활고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긴 ‘수원 세 모녀’는 숨지기 직전 18개월 동안 소득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갚으라는 독촉을 피해 거주지를 옮겨 다닐 만큼의 빚이 있음에도 다달이 1만8610원의 건강보험료 부담이 있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7월까지 내지 못한 건보료엔 연체료까지 더해져 35만4320원의 빚으로 불었다. 그러나 현행 건강보험 제도에서는 세 모녀의 어려운 사정만으로는 체납한 건보료를 ‘결손처분’(탕감) 받을 수 없다. 취약층 부담을 줄이기 위한 건강보험 결손처분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지원 기준을 완화하고, 소득과 자산을 중심으로 한 현행 복지 제도에 가계 부채를 반영해야 빚에 쫓겨 사회안전망 밖에서 숨어 사는 ‘그림자 취약층’의 복지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다.

25일 <한겨레> 취재에 응한 세 모녀의 주민등록상 주소인 경기 화성시 기배동 집 주인 아들 오아무개씨는 “아들(자매의 오빠)로부터 빚 독촉 때문에 힘들다는 하소연을 들었고 집으로 날아온 고지서(빚 독촉장)를 아들에게 전해주곤 했다”며 “(2020년 4월) 급성 루게릭병으로 갑자기 아들이 죽고 나서부터 보험료 등 세금도 연체된 것 같은데, 소득이 없으니 생활이 안 됐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으로 오랫동안 세 모녀 가족을 봐온 권아무개씨는 “(세 모녀 가족이) 화성에서 오래 살았는데 빚쟁이들한테 쫓기면서 (주민등록상) 주소도 실제 사는 곳으로 해놓지 못하고 여기저기 주소를 걸어놓고 그냥 살았다”고 말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세 모녀는 건보료를 내야 했다. 건강보험공단의 ‘결손처분 기준’을 보면 지역가입자의 경우 △세대원 나이가 모두 30살 미만이거나 50살 이상 △부동산, 자동차, 전·월세 재산 450만원 이하 △소득 100만원 이하 등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체납 건보료를 탕감받을 수 있다. 세 모녀 가운데 두 딸은 40대였기 때문에 첫 번째 자격 조건에서 이미 탈락이다. 재산이 전·월세만 있는 경우 건보료 부과 근거가 된 평가 금액이 1500만원 이하여야 하는데, 세 모녀의 주민등록 주소지 전·월세 평가 금액은 2055만원으로 기준선 훨씬 웃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최저 보험료를 내는 취약층에게 건보료를 지원해주는데, 세 모녀는 이러한 지원 대상도 받을 수 없다. 이들의 월 건보료 1만8610원은 올해 기준 월 최저 건보료 1만6440원보다 많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상 주소가 있는 화성시도 최저 건보료를 내는 이들에게만 매달 8900원을 지원하고 있다.

세 모녀에겐 갚기 어려운 빚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보건복지부가 위기가구를 찾아내 지원하기 위한 정보망에는 건보료 체납 이외 채무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34가지 수집정보 중에는 금융권 채무 현황이 있지만 그 대상은 ‘최근 2년 동안 연체된 대출금이 정보 제공 요청일 기준 100만원 이상 1천만원 이하’다. 1천만원이 넘는 빚이나 개인 간 채무는 포함하지 않기에, 세 모녀가 빚에 쫓긴 흔적 역시 남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채무 정보 수집 기준에 대해 “사회보장 급여를 받는 저소득층의 평균적 특징을 감안했다”라며 “이러한 기준 재검토를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위기가구 발굴을 위한 수집정보를 광범위하게 넓히면 되레 취약층을 찾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취약층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일자리·채무 문제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박정민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긴급 복지가 필요한 가구에 빚이 있다면 신용회복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연계해주거나, 반대로 신용회복 상담을 받는 취약층에게 필요한 고용·복지로 연계하는 연결고리가 촘촘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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