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부부라는 이유로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당했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낸 동성 부부 김용민(오른쪽)·소성욱씨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그들은 사랑의 힘을 믿고 있었다. 21일 부부지만 동성이라는 이유로 직장가입자인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는 판결이 나온 직후, 소성욱(32)씨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결국엔 사랑이 이긴다고 믿었다. 앞으로도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더 많이 시도하고 부딪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씨의 배우자인 김용민(33)씨도 “법정에서 승소했다는 판결이 나오자마자 눈물이 절로 흘렀다. 아직 실감이 안 나서 어안이 벙벙한데 점점 더 행복해질 것 같다”고 벅찬 마음을 전했다.
이날 서울고법 행정1-3부(재판장 이승한)는 소씨가 202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며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두 사람은 이번 판결로 “우리의 존재를 인정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소씨는 “그동안 한국 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는 성소수자 시민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을 넘어서서 마치 이 사회에 없는 존재처럼 ‘무대응’해왔다. 이번 판결을 통해 우리에게도 존엄이 있음을 인정받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김씨는 “우리나라 사법부가 이제는 소수자의 현실을 헤아릴 수 있는 지점까진 왔구나 느꼈다”며 “이번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은 ‘평등의 원칙’을 주요하게 다뤘다는 점이 의미 있다. 저는 이것이 사법부가 실현해야 할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며 “혼인이란 우리 법상 여전히 남녀의 결합이다. 동성혼의 인정 여부는 입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판시한 바 있다.
지난 3년 동안의 재판 과정에서 소씨 부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자신들이 평범한 부부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입증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재판부에 결혼식 사진, 하객 방명록, 통장 사본, 지인 인터뷰 등 둘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모두 제출했다. 소씨는 “이성 부부였다면 주민센터에 가서 혼인신고만 하면 저절로 처리되는 일을, 우리는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증거를 제출하며 (부부란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그 과정 자체가 모욕적이었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둘의 관계를 의심하는 질문, 부정하는 발언도 견뎌야 했다.
둘은 법정 다툼이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용기를 낸 것은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 소송은 우리 둘만의 소송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수많은 동성 커플에게 ‘우리도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용민) “우리는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강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 싸울 겁니다. 결국엔 사랑이 이길 거라고 믿기에 포기하지 않겠습니다.”(성욱)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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