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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박종철 숨지고 김근태 고문받은 남영동, 민주주의 기억 장소 돼야

등록 2018-01-14 09:16수정 2018-01-14 09:53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인터뷰
“옛 대공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청원운동 활발…경찰 대응 주목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남영동 경찰 인권센터 5층에 있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해 숨진 조사실(509호) 앞에 서 있다. 김 사무국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민주인사들이 인권센터의 부속품 취급을 당하고 있다”며 “경찰 인권센터를 인권기념관으로 만들어 시민이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남영동 경찰 인권센터 5층에 있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해 숨진 조사실(509호) 앞에 서 있다. 김 사무국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민주인사들이 인권센터의 부속품 취급을 당하고 있다”며 “경찰 인권센터를 인권기념관으로 만들어 시민이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영화 <1987>을 계기로 남영동 대공분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박종철 열사가 1987년 물고문으로 숨졌던 곳이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가를 고문 취조했던 대공분실은 2005년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뀌었다. 그러나 박 열사를 추모하려고 혹은 한국 민주주의의 흑역사를 기억하려고 이곳을 찾는 이들은 어색하고 당혹스러운 기분에 휩싸인다. 신분증을 내고 연락처를 적어야만 관람이 허용되는 고압적인 절차뿐 아니라 전시 내용에서도 경찰 홍보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자는 운동이 활발하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지난 2일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78392)을 청와대 누리집(홈페이지)에 올렸다. 내달 1일까지 진행되는 이 청원에 11일 현재 4800여명이 서명했다. 청원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김학규(52·사진)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난 9일 남영동 경찰 인권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박종철 열사와 대학 3학년 때 학생운동을 같이 했다.

―왜 국민 청원을 시작했나?

“이곳을 돌아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아픈 역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공분실에서 인권센터로 바뀌었다는 것만 자랑할 뿐 민주주의 진전을 위해 이곳에서 고통받았던 박종철 등 민주인사들은 부속물 취급을 당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의 경우엔 조사실(509호)과 4층 기념전시실이라도 있으나 김근태 전 의원 등은 아예 흔적도 없다.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군인아파트가 들어서 사라졌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남산 건물도 대부분 훼손됐다. 옛 대공분실만이 유일하게 남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곳인데 이래서는 안 되지 않나.”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이끌다 1985년 9월 잡혀온 김근태 전 의원은 한달 동안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그가 조사받았던 515호실은 물고문용 욕조뿐 아니라 칠성판(전기고문을 위한 침대)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다 치워졌다. 방 안팎 어디에도 ‘김근태’ 이름 석자조차 없다. 고 리영희 선생도 1977년 남영동에서 고초를 당했으나 아무런 안내가 없다.

―왜 이제야 청원을 하게 됐나?

“대공분실 공간 전체를 인권기념관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운영하자는 요구는 2005년 인권센터가 올 때부터 했는데 경찰이 줄곧 외면했다. 심지어 토·일 주말 개방 요구에 대해서도 경찰은 정권이 바뀐 뒤인 지난해 7월에야 토요일 개방만을 수용했다. 아직도 일요일 개방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만큼 의지가 없다. 시민의 힘이 아니면 바꿀 수 없는 것 같다.”

―시민이 운영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나?

“박종철뿐 아니라 이곳에서 고문받았던 조작 간첩, 민주인사들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전시해야 한다. 조사실은 원형대로 살려서 그때의 참혹했던 모습을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또 각종 저항예술과 공연, 기획 전시를 해서 시민들이 자주 쉽게 오도록 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알릴 수 있는 국제 관광코스도 가능하다. 또 고문치유센터 같은 것도 만들어 피해자 치유 작업도 해야 한다. 그렇게 변모하면 이곳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메카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탄압 당사자였던 경찰이 아니라 항쟁의 주역이었던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등 중립적 국가기구가 소유하되 시민사회가 위탁 운영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으로 본다.”

―경찰도 이곳을 인권기념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는데 아직 우리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해오거나 제안해온 것은 없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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