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종철의 여기
최초의 성전환 커밍아웃 군인 변희수씨
성전환 수술 뒤 첫 언론 인터뷰
지난해 말 남성→여성으로 전환
군, ‘신체 훼손’이라며 전역 명령
변희수 하사 강제로 내쫓은 직후
군, 군 인사법 시행규칙 개정해서
트랜스젠더의 복무 가능성 열어
기갑부대 모토 ‘기갑 선봉’답게
“강제전역 통보에 분노 컸으나
군 인권 개선 위해 끝까지 싸울 것”
최초의 성전환 커밍아웃 군인 변희수씨
성전환 수술 뒤 첫 언론 인터뷰
지난해 말 남성→여성으로 전환
군, ‘신체 훼손’이라며 전역 명령
변희수 하사 강제로 내쫓은 직후
군, 군 인사법 시행규칙 개정해서
트랜스젠더의 복무 가능성 열어
기갑부대 모토 ‘기갑 선봉’답게
“강제전역 통보에 분노 컸으나
군 인권 개선 위해 끝까지 싸울 것”
“다른 나라 군대는 트랜스젠더 군인이 허용되는데 왜 우리나라 국군만 허용이 안 될까, 나라도 나서서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전역 당한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한겨레> 토요판과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시대착오적인 규정을 이유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결국 거부하기는 했지만, 가장 변화가 느린 조직인 군도 자세히 보면 많이 변해왔다. 여단장과 군단장 등 일선 부대장들은 성별 위화감(젠더 디스포리아)으로 고통받는 군인(하사)의 성전환 수술을 승인하고, 그의 계속 복무를 지지했다.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전투력이 강한 군대로 향한 작은 희망이다. 이에 비해 정치권은 갈 길이 멀다.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사무총장은 며칠 전 비례정당 창당과 관련해 “성소수자 문제 등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들과 연합은 어렵다”고 말해 성소수자에 대한 낡고 편협한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스물세살 변희수씨는 지금 성소수자와 관련한 ‘필요하고도 생산적인 논쟁’을 앞장서 불붙이고 있다. 그는 ‘성별이 바뀐 것 외에는 모든 게 정상인데 트랜스젠더는 왜 복무를 하지 못하느냐’며 한국군과 우리 사회를 향해 묻는다. 최초의 성전환 트랜스젠더 군인이었다가 강제전역 조처를 당하고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던 그를, <한겨레>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만났다. 트랜스젠더 군인으로 커밍아웃한 뒤 언론과 한 최초의 인터뷰다.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 없어. 괜찮아.”
마지막 방송(21일)만 남겨두고 있는 제이티비시(JTBC) 인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12회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 한 토막이다. ‘단밤’(식당 이름) 주방장인 트랜스젠더 마현이(이주영)가 ‘최강포차’라는 요리 경연 방송의 결승전에 나타나자, 상대 진영의 폭로로 그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방송사 관계자 등이 그를 보고 수군거리고, 마현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 촬영장을 뛰쳐나간다. 단밤 대표인 박새로이(박서준)가 마현이를 찾아낸 뒤 “저따위 시선까지 감당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야”라며 대회에 안 나가도 된다면서 이렇게 ‘대회보다 너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다독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도망쳐. 당당히 맞서. 그래야 이기잖아’라고 하기 쉬운 대목에서 이 드라마는 ‘사람들 앞에 안 나서도 돼. 그들을 납득시킬 필요가 없어’라고 말한다. 섣부른 판단과 어설픈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따뜻한 공감과 든든한 편 돼주기로 다가간다. 마현이를 펑펑 울게 만들고, 시청자의 눈시울을 벌겋게 물들인 명장면이다.
변희수(23, 이하 호칭 생략)씨도 마현이처럼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고, 세상의 쓸데없는 관심과 호기심을 꿋꿋하게 물리치고 있을까. 그녀(<한겨레>는 3인칭 대명사를 성별 중립적인 호칭 ‘그’로 통일해서 쓰지만, 변희수의 성전환을 존중하기 위해 한 차례만 ‘그녀’라고 칭한다)를 만나러 가면서 마현이가 떠올랐다.
지난 11일 인터뷰 장소인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 사무실에는 두 명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군인권센터 관계자였지만, 다른 한 명이 주인공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마실 나온 듯 평범하고 수수한 옷차림에다가 꾸밈 하나 없는 얼굴은 군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인사를 나누면서 놀라는 기자에게 그는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모습은 어떠어떠할 것이라는 편견과 통념에 물든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그와 마주 앉았다.
군에서 처음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가 신체 훼손을 이유로 강제전역 조처를 당한 변희수 전 육군 하사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그는 군의 조처가 부당하다며 인사 소청을 신청했으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1월22일 군인권센터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변희수 하사가 군인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뒤 울면서 경례하고 있다. 하지만 군은 성전환 수술로 인한 신체 훼손을 이유로 들어 그를 1월23일자로 강제전역시켰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군 복무를 계속하고 싶어 성전환 수술을 했던 거예요. 수술 후에 우울증이 사라지는 등 모든 게 정상이 됐어요.” 트랜스젠더 하사였던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성전환 수술 후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골목 집 앞에 놓여 있는 조화 다발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군 조기 입대 결심 등 회피 시도
시간 갈수록 우울증 심해져 결심 “나처럼 심한 경우는 수술이 해법
지금은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와” “전투력 강한 군 위해서라도
성소수자 차별하면 안 돼” “다수자도 소수자인 측면 있어
소수자 차별에 눈감으면
자신들도 언젠가 박해받을 것” ―장성에 있는 특성화고는 어떻게 알았어요? “군대를 좀 더 빨리 가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그런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집에서 말리고 반대했지만, 제가 선택했어요.” ―고교 3년 생활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학교생활은 재미있었어요. 남녀공학이었는데 남녀 구별 없이 다 같이 잘 어울려 놀았어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체력이었어요. 같은 학년 친구들과 같이 먹고 자고 뛰는데 체력이 남들보다 안 됐어요. 온 힘을 다해 노력해서 겨우 친구들의 80% 정도 체력에 이르렀던 거 같아요. 오직 군인이 되겠다는 한 가지 목표만 갖고 노력하다 보니까 정체성의 문제를 느낄 틈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도 친구들은 저에게 좀 위화감을 느꼈다고 해요. 제가 좀 여학생 같다, 이상하다는 식으로 느꼈다고 해요.” 씻을 때마다 우울하고 불안 변희수는 2016년 9월에 입대해 훈련소와 육군부사관학교, 기계화학교를 마치고 2017년 3월 육군 하사관으로 꿈에 그리던 군인이 됐다. 40 대 1이라는 높은 경쟁을 뚫었다. 탱크조종수로서도 변희수는 하사 중에서 유일하게 A등급을 받는 등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참모부서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공군이 주최하는 유시시(UCC)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해 공군참모총장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군 생활에 잘 적응해갈수록 그의 마음은 힘들어졌다. “그(군 적응)에 비례하면서 제 마음 또한 무너져내렸고,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습니다.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로 인한 우울증 증세가 복무를 하는 동안 하루하루 심각해지기 시작했으며, 너무 간절한 꿈이었음에도 이대로라면 더 이상 군 복무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힘들어하는 저를 두고 ‘현역복무 부적합 심의를 받는 것은 어떠냐’는 권유를 할 정도였습니다.”(1월22일 기자회견문) 그는 현역 복무 부적합 심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 경우 현역으로 복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정, 즉 중도 전역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어떡하든 좋아하는 군에 남고 싶었다. ―국군수도병원에는 어떻게 해서 가게 됐던 거예요? “고된 훈련 때는 마음이 힘들지 않은데, 몸이 힘들지 않은 평소 일과 때에는 갑자기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라는 자괴감이 들곤 했어요. 부대에서 잘 케어해줘서 그나마 그 정도로 버티면서 군 생활을 잘할 수 있었는데, 조금씩 우울해지다가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는 한계상황에 어느 순간 이른 거죠.” 변희수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지난해 5월 국군수도병원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다. 두 달간 입원 치료를 하며 그는 마음의 병이 왜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았으며, 자신의 본래 성을 찾기로 결심했다. 군 병원에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면서 가족에게 자신의 상태와 결심을 알렸다. 퇴원 때는 부대 상관들에게도 있는 그대로를 보고했다. 부대 상관들은 수술을 위한 휴가 출국을 허가하는 등 변희수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수술을 미루거나 하지 않고 트랜스 여성으로서 복무를 신청할 생각은 안 해봤어요? “똑같이 성전환이라는 증상이 있어도 대책은 사람마다 달라요. 저는 제 몸에 대한 디스포리아가 너무 심했어요. 제 몸 자체가 스스로 용납이 안 될 정도였어요. 따라서 저의 치료법은 수술밖에 없는 거예요. 군 복무를 위해서라도 디스포리아부터 해결해야 돼요. 그래서 수술을 받았을 뿐이에요.” ―수술 후 디스포리아는 사라졌나요? “네. 디스포리아가 거의 사라졌어요.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거 같아요. 그 전에는 날마다 씻을 때마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그랬거든요.”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복귀한 변희수는 여군으로 복무를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군은 그에게 의무조사를 실시해 ‘심신장애 3급’(음경 훼손 5급, 고환 적출 5급을 종합한 등급) 판정을 내리고,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군 인사법상 심신장애 1~9급인 군 간부는 전역 대상이다. 이에 변희수는 법원에 낸 성별 정정 허가 신청을 이유로 들어 전역심사 연기를 요청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성전환 수술 행위를 신체장애로 판단해 전역심사위에 회부한 것은 차별 행위 개연성 등이 있다”며 인권위 조사 기한 3개월 이후로 심사를 연기할 것을 권고했지만, 군은 1월22일 전역심사위원회를 강행했다. 하지만 군은 변희수가 민간인이 된 날(1월23일) 군 인사법 시행령을 고쳐서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계속 근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즉, “심신장애의 사유가 되는 질환 또는 장애가 해당 병과에서의 직무수행에 직접적인 제약을 주지 않는 경우”에는 “심신장애 치유 가능성, 병과 특성에 따른 복무 가능성, 군에서의 활용성과 필요성 등에 관한 심의를 거쳐 남은 의무복무 기간 동안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다”는 조항(시행규칙 제53조 4항)을 신설했다. ―군 인사법 시행령 개정이라는 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오래 준비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 하는 거잖아요. 새 시행령에 따르면, 희수씨 같은 트랜스젠더 군인도 심사 결과에 따라서는 군 복무를 계속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럼 며칠 더 기다렸다가 개정된 시행령으로 전역심사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굳이 시행령 개정 하루 전에 심사위를 열었다는 것은 쫓아내겠다는 뜻이잖아요. “제가 직접적으로 군에 반기를 들었으니까 저를 일부러 내친 게 아닌가 싶어요. 익명이기는 했지만, 정식 기자회견이 있기 전에 최초의 트랜스젠더 군인이 나왔다는 기사가 떴잖아요. 그것에 대해 군 상층부가 괘씸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강제전역이 부당하다는 인사 소청을 육군본부에 냈는데, 결말은 언제 나요? “시일이 언제 잡힐지는 알 수 없어요. 소청에서 안 받아들여지면 행정소송을 하려고 해요. 성이 바뀐 것 외에는 신체적으로 결손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복무를 할 수 없다고 판정 내린 것은 정말 부당해요. 팔이 한쪽 날아간 것도 아니잖아요. 전차 조종하는 데 무슨 장애가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돼요. 지금 여군들도 전차 조종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소송에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요. “그래도 끝까지 싸울 겁니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를 쟁취하고, 차별 없는 군을 만들기 위해서 기갑부대의 모토인 ‘기갑 선봉’답게 선봉에 나가서 싸울 거예요.”
트랜스젠더 군인이었다가 강제전역당한 뒤 군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변희수씨가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산책 도중 만난 길고양이를 보고 반가워하고 있다. 그는 “특성화고 시절 후배들을 단 한번 집합시킨 적이 있는데, 그때 1학년 한명이 길고양이를 괴롭혀서 훈계하려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제전역 당한 뒤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변희수(왼쪽)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골목길을 김종철 선임기자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치원생 때 청주 공군박물관: 공군사관학교에 전시된 전투기를 배경으로 찍었다. 어릴 때부터 군을 좋아했다.
2013년 해병대 캠프에서: 중3 여름방학 때 일주일간 포항에서 열린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
2015년 견학 여행 차 안에서: 고2 때 대전에 있는 계룡대의 육군본부로 견학을 갔다.
2019년 9월 기갑부대: 성전환 수술 받으러 출국하기 전 내가 몰던 전차 포신에 기대 기념사진을 찍었다.
2020년 1월22일 군인권센터: 강제전역 통보를 받은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부당함을 밝혔다. 옆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H6s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종철: 1989년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뒤 정치부, 사회부 등에서 일하다 현재는 토요판팀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국가나 사회, 민족 등 추상적인 단어보다 그 실질을 이루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람을 더 좋아한다. ‘지금 여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여운이 오래가는 기록’을 지향한다. ‘김종철의 여기’는 4주에 한 번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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