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에서 멋대로 해왔던 정보 수집에 대해 그것이 합당한지 아닌지를 앞으로 법원이 통제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정보공개 청구 운동을 통해 자신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 사찰 기록을 돌려받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개인사무실에서 ‘내놔라 내파일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민주주의는 저절로 나아가지 않는다. 권력의 억압에 맞서 싸우고, 자유와 인권, 평등을 위해 땀을 흘린 만큼만 전진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 일이 최근에 있었다. 국가정보원(국정원) 등 정보기관이 저질렀던 불법 사찰 기록을 당사자가 되돌려받을 수 있게 된 일이다. 앞으로는 정보기관이 불법적인 사찰을 ‘감히’ 자행하기가 어렵게 됐다.
곽노현(66·이하 호칭 생략) 전 서울시교육감과 박재동(68) 화백은 지난달 자신들에 대한 사찰 기록을 국정원으로부터 각각 받아냈다. 2017년 10월부터 시작했던 ‘내놔라 내파일 운동’이 3년 남짓 만에 거둔 결실이다. 주도자인 곽노현은 서울시 교육감 예비후보를 중도 사퇴(2010년)했던 경쟁자에게 당선 뒤에 2억원을 준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재판 끝에 2012년 교육감직을 상실했던(징역 1년) 당사자다. 돈을 준 것은 매수나 사퇴의 대가가 아니라 선의였다고 외쳤지만, 여론과 법원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보통은 분노와 좌절감, 외로움 때문이라도 공적 무대를 떠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기는커녕 그 뒤에도 인권과 정치 개혁 등 사회운동을 줄기차게 해오고 있다. 대의를 향한 지치지 않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어 지난 2일 오후 서울 삼청동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요즘도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데요.
“저의 일관된 주제는 법치주의예요. ‘최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이게 저의 모토인데요, 그것 때문에 삼성하고 싸우고, 국정원이나 검찰하고도 싸우는 거죠. 또 하나는 ‘최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예요. 그러다 보니 인권운동, 재벌 개혁, 교육운동 등 하는 일이 많아요.”
―이번에 국정원의 사찰 문건을 받았는데, 사찰을 당했던 사람이 자기 기록을 생전에 입수한 것은 우리 역사상 처음이죠?
“네, 여태까지 이런 일이 없었죠. 제가 받은 파일은 총 30건에 51쪽(본문 49, 목차 2쪽)이었어요.”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받아냈어요. 힘이 든 만큼 법적으로는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국정원이 재판 과정에서 두가지를 주장했어요. 하나는 공직자에 대한 정보 수집은 국가안보 사항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법원에서 배척됐어요. 그다음에는 신원 조회권이 있기 때문에 공직자에 대해 비리 첩보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했어요. 법원이 이것도 배척했죠. 국정원에서 멋대로 해왔던 정보 수집에 대해 그것이 합당한지 아닌지를 앞으로 법원이 심사해서 통제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항상 대안의 관점에서 글을 쓰면서 그 글을 실천했고요, 끊임없이 작은 실천을 통해 보람을 얻고 저 역시 꾸준히 성장했던 거 같아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식인으로서 실천적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30건이 선생님에 대한 파일의 전부일까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이번에 받은 것을 보면 90년대 것은 하나도 없어요. 1995년이었나, 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다 안기부(현 국정원) 직원들한테 ‘니 배때기가 몇 센티냐. 너 같은 거 쥐도 새도 모르게 치우는 거 일도 아냐. 애도 어리던데 알아서 해’라는 협박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어요. 그러니 그때 저에 대한 보고를 안 올렸겠어요? 또 가장 큰 한계가 뭐냐 하면, 국정원의 문건 디비(DB)에서 제목에 제 이름을 쳐서 나오는 파일만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문건 중의 하나는 제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 있지만 사실은 명진 스님 이야기가 거의 다거든요.”
―그 파일을 명진 스님이 아니라 선생님만 받았다고요?
“네, 내용으로 보면 백퍼센트 명진 스님이 받으셔야 하는 거예요. 물론 사실무근의 허무맹랑한 첩보 보고로, 그게 사실이라면 명진 스님이나 저나 다 감방에 갔을 내용이에요.”
‘언론계, 곽노현 교육감의 출처불명 1억원 제공자 명진 스님 거론’(2011.9.16)이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국정원은 “언론계에서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전달한 2억원 가운데 출처 불명 1억원은 선거 당시 후원회 고문이었던 명진 스님이 제공한 것이고 조계종 측에서도 동 사실을 파악하고 있으나 사회적 파장을 우려, 은폐하고 있다는 이야기 대두”라고 적었다.
곽노현-박명기 후보의 캠프 관계자들끼리 단일화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얘기를 곽노현은 취임 후 3달이 지나서야 뒤늦게 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단호하게 돈 주는 것을 거부했지만, 박명기 교수가 오랜 선거 준비로 거액의 빚을 져서 생활이 곤란하다는 것을 안 뒤에 애초에 캠프 관계자가 약속했다는 액수(5억원)보다 적은 2억원을 돕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가 건넨 2억원은 후원금으로 들어온 1억6천여만원에 개인 돈을 보태 마련했다.
―아무런 근거나 증거도 없이 언론계라는 막연한 출처를 이용해서 명진 스님을 지목했군요.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서 관계자들이 다 사라진 뒤에 이런 기록이 나오면 후대 사람들은 진실이라고 믿거나 그럴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겠어요?
“‘아니 땐 굴뚝론’이 힘을 얻겠죠. 이게 얼마나 엉터리냐 하면, 당시 명진 스님은 회계 관리를 신도에 맡기는 등 봉은사 회계를 투명하게 완전히 공개했어요. 불교계에서 최초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진 스님을 딱 찍고는 정말로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어냈어요. 비밀 사찰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 문건들. 김종철 선임기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박재동 화백에게 국정원이 정보공개한 사찰 문건 목록과 봉투. 김종철 선임기자
곽노현 파일 30건은 노무현 정부 때의 인물 검증 보고서(2004년) 2건을 빼고는 모두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불법적 사찰 기록이다. 당시 민교협(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이 곽노현을 서울시교육감 단일 후보로 밀기로 했다는 내용을 비롯해 교육감 시절 그가 한 언론사의 창간기념 행사에 참석키로 한 것,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내용 등 민간인 또는 공직자의 일상적인 활동까지도 국정원이 낱낱이 감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파일 중에는 곽노현에 대한 “심리전” 문건(2011년 8월과 9월)도 2건 있다. 국정원이 관리하는 단체를 동원해 자택과 서울시교육청 앞 등에서 곽노현 구속 촉구 규탄집회를 하고, 트위터와 다음 아고라 등 온라인에서도 그를 비난하는 글을 “집중 전파(1일 750건)”하는 내용들이다. 법에 엄격히 금지돼 있는 국내 정치공작이지만, 보고서 내용대로 실행됐다.
―사찰을 넘어 공작인데,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으세요? 아직 공소시효가 남았을 것 같은데요.
“국가폭력이나 국가범죄에 억울하게 당한 사람은 국가에 과거 청산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피해자의 알권리와 국가의 기억 의무가 우선이고, 민형사적 책임 추궁은 법적·정치적·심리적 시효가 작동하기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인 불법 사찰 문제는 뒤늦은 책임 추궁보다 전모 파악과 제도 개선, 당사자 공개와 기록 폐기가 중요하다고 보고요. 심리전 수행 공작에 대해선 책임 추궁도 해야겠지요. 간부급이라면 몰라도 실행자급에 대해선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이 개인적으로 없어요.”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위원장 정해구)에서 국정원의 과거 불법적인 사찰과 정치공작을 속속 밝혀내고 있던 2017년 10월 곽노현은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와 무관하게 관행적으로 이뤄진 국민사찰의 전모를 대강이라도 밝히고 국민사찰 근절에 필요한 구조개혁을 단행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다시는 불법적인 국민사찰을 되풀이하지 못한다”며 “국정원에 내 사찰 파일을 공개하라는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시민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이어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이 결성됐으며, 모두 917명이 그해 12월 국정원에 사찰 기록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국가안보 관련 정보라는 핑계를 내세워 공개를 거부했다.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은 곽노현과 박재동, 명진 스님, 김인국 신부 등 4명을 대표로 내세워 시범 소송을 제기했다. 이중 명진 스님은 1심에서 승소한 직후 일부 파일을 받았으며, 김인국 신부는 남북 교류와 관계된 문건 외에는 없다고 알려왔다.
―얼마 전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고 노회찬 의원 등 22명이 자신들에 대한 사찰 파일을 달라고 국정원에 요청했는데, 이분들은 소송 없이 자료를 받겠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국정원에 요청하면 받을 수 있고요?
“국정원이 주겠다고 세 차례나 공언했으니 줄 거라고 봅니다. 개인뿐 아니라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등 단체들도 사찰 파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국정원만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이 바뀐 군 보안사(기무사), 경찰의 정보조직, 요새 새로 드러났지만 검찰의 정보조직 등 범죄 관련 정보를 수집한다는 명분으로 동향 사찰을 해온 조직들도 이번 대법원 판결의 적용을 똑같이 받는 겁니다.”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불법 사찰 기록이 국정원에 무지하게 많을 텐데, 개별적인 공개와는 별도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국가안보와 개인 사찰 사이의 회색 지대에 있는 자료를 당사자에게 공개할지, 모든 사찰 자료를 국가기록원으로 넘길지 폐기할지 등 여러 문제에 대해 국정원과 국회 정보위원회, 시민사회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진지한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공작 책임자에 대한 처벌 여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 기준도 정해서 필요하면 법을 만들어야 하고요. 그런 협의를 위해 국정원에 면담 신청을 했는데, 국정원은 사찰 기록을 다 공개한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기에 만날 이유가 없다는 식의 답만 하고 있어요. 국회 정보위원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굉장히 유감이에요.”
―개인들의 요구가 있고 법적인 의무가 있는 것만 공개하되 더 이상은 안 하겠다는 거군요.
“본인들이 좀 더 적극 행정을 해야죠. 새로 태어나는 국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사찰 전모를 자신들이 밝혀야죠. 매년 어느 정도의 인력과 예산이 투입됐고, 끄나풀과 협조자를 어느 정도 썼는지, 각계에서 몇명씩 모두 몇명을 정치사찰, 국민감시용 사찰을 했는지에 대해 자기들이 통계를 내놔야 해요. 바람직하기로는 이런 일을 위한 독립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불법 사찰 전모를 밝힌 뒤 백서를 만들어 내야지요. 그러면 국민 감시 없는 시대를 진짜로 확실하게 열게 되는 거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017년 10월24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단체의 공동대표인 그는 소송을 통해 자신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 사찰 기록을 최근 받아냈다. 곽노현 제공
‘최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최약자를 법 보호 아래’ 모토
인권운동 선두 선 실천적 지식인
이건희 고발 등 재벌개혁 앞장도
곽노현은 2010년 6월 서울시 교육감이 된 뒤 2년 남짓 동안 재직했다. 학생들에 대한 체벌 금지와 친환경 무상급식 등은 당시 교육부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와 보수진영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새로운 문화와 전국적 표준이 됐다. 서울시 초등학교 3학년 전원에 대한 수영 교육 실시도 그가 남긴 업적 중 하나다. 그는 또 부자 동네와 서민 동네 간의 학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장학관들을 기존 관행과 달리 비강남 지역 교장으로 발령내는 등 인사 혁신을 추구했다.
―의욕을 갖고 일하다가 중도에 물러나서 아쉬움이 많겠어요.
“저는 지난 일은 잘 뒤돌아보지 않아요. 앞으로 나아가는 스타일이죠. 다만, 지금 생각해도 검찰과 국정원의 초기 여론몰이가 그 이후 흐름을 많이 규정했던 것 같아요. 특히 검찰의 행태는 문제였죠. 상대 후보에 대한 사전매수가 아니라는 게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는데도 담당 검사는 ‘저는 이 사건에서 검사가 아니라 수사관입니다’라면서 사전매수죄로 기소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런 사안에서 검사 노릇하라고 검사들을 예우해주는 건데 당신이 이렇게 발뺌한다고 면책될 줄 아냐’고 호통을 쳤어요. 검찰이 왜 정치검찰인지를 그때 확실히 알았어요. 검찰이 얼마나 자신이 없었는지 저를 사후지급형 사전매수 혐의와 사전매수 없는 사후금품 제공 혐의로 이중기소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심혈을 기울여 짠 사전매수죄 시나리오는 1심 법원에서부터 명백한 무죄로 완전히 깨졌죠. 그러면서도 법원은 검찰이 기소장에서 0.5% 분량으로 걸쳐놓은 사후매수죄로 결국 유죄판결을 내렸지요. 하지만 사전매수 약속을 하고 선거 끝나고 돈을 준 행위와 사전매수 약속이 없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상대후보였던 사람에게 돈을 준 행위가 같을 수가 없잖아요. 만약 후자가 죄라고 해도 죄질이 사전매수와는 현격히 다른데 동일한 법 조항으로 규율한다고 법원이 해석한 거예요. 살인죄와 과실치사죄를 똑같은 형량으로 처벌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어쨌든 2억원을 상대후보였던 사람에게 준 거는 일반인들이 볼 때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행동을 후회하진 않나요?
“재판정에서 ‘여기 계신 분들도 나와 같은 사정에 처했으면 똑같이 행동했으리라 생각합니다’라고 얘기했다가 변호사들한테 무지하게 혼났어요. 그러나 저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그 사람은 나 때문에 12년 동안 갈고닦았던 교육감의 꿈을 경선도 못한 채 접는 비운을 맞은 거거든요. 정말 미안했어요. 다만,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돼 너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어요. 그건 무조건 죄송하죠.”
서울 출신의 곽노현은 경기고와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197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로스쿨에 유학한 뒤 1991년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강단의 법학자로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줄곧 활약했다. 5·18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대변인(1997년),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1998),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과 관련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43명의 법학교수 고발인 대표(2000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5·18쿠데타 처벌은 그의 공소시효 이론 덕분에 가능했다. 기존에는 5·18쿠데타가 일어난 1980년 5월18일부터 따져서 15년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견해였지만, 그는 쿠데타의 종료 시점은 군대를 병영으로 되돌려보낸 때라는 논리를 개발했다. 헌법재판소도 이 의견을 채택해, 결국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는 1996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문제가 불거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제기해 오셨죠?
“고발은 2000년에 했지만, 이미 1997년 5월에 삼성 에버랜드 사태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조직하고, 이건희 회장을 배임 혐의 등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글을 쓰기 시작했죠. 유학 시절 미국회사법을 연구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캠페인성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좋게 말하면 실천성이 강하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개인사무실 앞에서 ‘내놔라 내파일 운동’으로 돌려받은 국정원의 사찰 기록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그렇게 다양한 문제에 대해 줄기차게 싸우는 힘이 어디에서 나와요?
“우선 진보적인 차원에서 어떤 일들이 중요한가를 늘 생각하죠. 임팩트가 있건 없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 주제를 잡아서 선도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죠. 체계적으로 학문적 규율을 갖고 한 분야를 공부했다기보다는 누구의 지도도 없이 혼자 미사일처럼 날아다니며 이것저것 공부를 한 거죠. 그걸 토대로 실천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교육감 중도 하차로 낙담이 컸을 텐데도 전혀 활동이 위축되지 않았어요. “혁신가라는 자부심이 저에겐 있는데 혁신은 멈추지 않거든요. 과거 방통대 교수나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할 때도 많은 혁신과 개혁을 했어요. 인권위 때 장애인들의 탈시설 지역사회 통합이나 대기업의 인권책임 등 새로운 어젠다를 앞서 내놓았죠. 교육감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항상 대안의 관점에서 고민하면서 실험주의적 자세를 견지했지요. 끊임없이 실천을 통해 보람을 얻고 저 역시 꾸준히 성장하는데 주눅들 필요가 없죠.”
―앞으로도 같은 식으로 주욱 가시겠군요.(웃음)
“같은 식으로 가면 안 되죠.(웃음) 끊임없는 혁신과 쇄신을 해야죠. 백기완 선생님이 저한테 그랬어요. 자네는 바람이니까 바람은 계속 달려야지 잠시라도 멈추면 사라진다고요. 이미 똥통을 뒤집어쓴 사람이 되긴 했지만, 헛된 욕심을 품는다든가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바람같이 계속 달릴 겁니다. 지금도 공직이 없을 뿐 공익은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잖아요.(웃음)”
4시간 가까이 진지한 표정이던 그는 인터뷰가 끝날 때쯤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녹취 홍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