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에게 듣는 나의 전공
일러스트레이터 소윤경씨 일러스트레이터 소윤경(35)씨의 작업실은 아파트다. 거실엔 보통 책상보다 두 배는 큰 테이블이 자리잡고 있고 테이블 위엔 각종 스케치 그림들이 놓여 있다. 벽에는 깜찍하거나 추상적이거나 기괴한 그림들이 걸려 있다. 다른 벽에 붙은 책장엔 그가 작업한 책들과 즐겨서 참고하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안방 역시 그의 차지는 아니다. 액자와 그림들이 그득하다. 부엌 옆 작은방이 침실이자 휴식처이다. 일주일에 2~3일은 밤 늦도록 일을 한다. 일이 밀릴 땐 주말도 없다. 정해진 근무시간은 없지만 단언컨대 일반 직장인보다 일하는 시간이 많다. 단행본 동화는 보통 3~6개월, 전집류는 권당 1년 정도 걸린다. 게다가 서너 권에 대한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 손톱 스케치-> 본 스케치-> 색깔 입히기-> 레이아웃-> 인쇄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잔뜩 긴장한 채 일에 매달리다 보면 온 몸이 쿡쿡 쑤셔오는 건 당연지사. 목, 허리 디스크 증세에 안구건조증, 피부병까지 그를 괴롭힌다. 그런데도 소씨는 “이쪽 바닥이 너무 좋다”고 침을 튀겼다. 이유를 물었다. “학벌, 나이, 성별이 전혀 필요 없어요. 실력과 스타일, 신뢰, 소통 능력만 있으면 돼요. 일한 만큼 돈도 충분히 벌어요. 어디 이런 직업 있나요.”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한 소씨의 자랑은 이어졌다. 순수 미술과 달리 돈을 벌겠다고 하면 많이 벌 수 있고 자기 스타일 유지하며 적당히 벌겠다고 생각하면 적당히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돈과 관계없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는 그림책을 낼 수도 있단다. 이만큼 자기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일은 일러스트레이터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조사는 안해 봤지만 직업적 만족도를 조사하면 굉장히 높게 나올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소씨는 원래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뒤 작은 출판사들을 상대로 삽화를 그렸다. 3년 뒤 파리로 유학을 떠나 조형예술을 공부했고 2001년 귀국한 뒤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 길에 나섰다.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꿈이었는데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것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순수 미술을 할 여유를 찾기 위해 일러스트레이션을 같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대 출신 가운데 일러스트레이터가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삽화, 팬시 작가 정도에 머물렀던 일러스트레이션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특정 직업으로 분류되고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이제 10년 남짓 됐지만,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한 시장 수요는 아주 높다. 동화, 그림책 등 어린이책은 물론 학습지, 사보, 달력, 다이어리, 광고 등 시장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백화점 장식쪽에서도 일러스트레이터의 활약은 크다. 소씨는 “4~5년 경력 쌓고, 자신의 스타일과 내공이 생기면 평생 인정 받으며 일할 수 있는 분야”라며 “실력과 능력대로 대우받고 싶은 청소년이라면 과감히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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