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는 사람이 되고팠던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등장한다. 곰은 햇빛을 보지 않고 100일 동안 오로지 마늘과 쑥을 먹으며 인간이 됐지만, 호랑이는 노력을 거부했다. 웅녀가 된 곰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지만, 호랑이는 낯설다.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고, 그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지어졌을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으르렁거리며 다가오고 있던 것은 아닐까, ‘호랑이’만의 이야기를 담고선.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소녀 ‘릴리’는 투명인간처럼 변신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그 누구도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는 아무런 관심을 받지 않으며 다루기 쉬운 아이로 살아간다. 그런데 릴리의 투명인간 능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었으니, 바로 그녀에게 오래된 전래동화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다.
‘옛날 옛적 하늘에선 공주가 한 명 살고 있었다. 외롭던 공주가 밤하늘에 속삭인 이야기들은 별이 되었고, 이를 원하던 호랑이들은 산꼭대기에 별들을 모아두고 하늘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하늘 공주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별이 되어 빛났지만, 그중 어느 이야기는 너무 위험했다. 할머니는 듣는 사람의 기분뿐 아니라 행동까지 나빠지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싫어했고, 산꼭대기에 있는 호랑이들이 잠든 틈을 타 별들을 유리 단지 속에 가뒀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호랑이들이 단지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돌로 단단히 막았지만, 탈출에 성공했다. “할머니가 오래전 훔쳐간 이야기 별들을 하늘 위로 되돌려놓기 위해서”라고 했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은 인간이 노래하는 이야기들이 지닌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지만, 어떤 이야기는 불행과 좌절을 준다. 슬프고 한탄하게 만들기도 하고, 원치 않는 비극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때때로 슬프기도, 힘이 들기도, 혹은 원치 않는 불상사를 맞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에겐 어떤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 특유만의 이야기가 있다. 또한 그 끝을 매듭짓는 책임이 개인에게 달려 있다. ‘투명인간’ 생활을 이어가던 릴리는 변화를 맞닥뜨리며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용기를 내보이며 투명인간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속으로 삭였던 그녀만의 이야기를, 여차하면 묻혀 버렸을 ‘릴리’만의 이야기를 재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야기를 쓸 권리가 있다. 이미 쓰여진 부분을 억지로 지우거나 고칠 수 없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엔딩이 단 한 가지가 아님을 알려주는 고마운 책이다.
오승주 경기 고양시 정발중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