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배제’ 고3 학부모에게 듣는다
수능 난이도 변화 예고…수험생·학부모 ‘패닉’
“수능 및 교육계 경험 없으면서 무책임한 발언”
“킬러 문항 배제로 사교육 줄이는 건 불가능”
“‘준 킬러’ 늘어나면 논술·면접 사교육 늘 것”
수능 난이도 변화 예고…수험생·학부모 ‘패닉’
“수능 및 교육계 경험 없으면서 무책임한 발언”
“킬러 문항 배제로 사교육 줄이는 건 불가능”
“‘준 킬러’ 늘어나면 논술·면접 사교육 늘 것”
“6월 모의평가(모평) 기준으로 수시 전략을 세우려고 했는데, 어쩌라는 겁니까? 9월 모평 점수는 물론 11월 수능 점수와 등급컷을 예측할 수 없으니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어느 대학에 원서를 써야 할지 막막합니다. 수능 5개월 앞두고 대통령이 출제 지침을 내려 혼란을 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윤석열 대통령이 ‘공정한 수능’을 예고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멘붕에 빠졌다. 6월 15일 “공교육 밖 문제는 출제에서 배제하라’는 발언에, 어려운 난이도로 변별력을 가리는 이른바 ‘컬러 문항’ 배제 방침을 밝히면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일련의 ‘공정 수능’과 ‘공교육 정상화’ 방침이 입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을 배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가혹한’ 현실에 분노한다. 한목소리로 “킬러 문항이 없어진다고 입시전쟁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동안 수험생들은 6월 모평 점수를 기준 삼아 여름 방학 때 수시 전략을 세워 9월(올해는 11~15일 예상)부터 수시원서를 접수했다. 하지만, 출제 방식이 바뀔 수능에서 자신의 예상 점수와 ‘등급’을 가늠할 수 없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입시컨설팅’ ‘면접 대비’ 명목으로 사교육비 지출이 더 늘 것이라는 불만도 쏟아낸다.
‘함께하는 교육’은 현 고3 학부모들의 생생한 의견을 듣고자 전주 상산고(박은숙·45), 서울 명덕외고(최미라·47), 자사고인 서울 현대고(유혜정·49), 일반고인 신도림고(김서연·51)와 구현고(이선아·49) 학부모 5명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인터뷰는 정부가 킬러문항과 함께 공정수능·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한 26일 이전인 6월 19~20일 양일간 진행했으며, 방담 형식으로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학부모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했다.
- 고등교육법 34조5항에 따르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 교육부 장관이 시행하는 시험의 기본 방향과 과목, 평가방법, 출제형식을 4년 전에 공표해야 한다. ‘4년 예고제’를 무시한 윤 대통령의 ‘공정 수능’ 발언의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박은숙 “‘공정 수능’이라는 대통령의 즉흥 발언이 ‘공정’이 아닌 ‘불법’의 선례를 만들었다. 6모는 말 그대로 그해 재수생과 수험생의 학력 수준, 신유형 문항에 대한 수험생들의 정답률 등을 테스트하기 위한 ‘모의평가’다. 역대 대통령 중 누구도 수능 난이도나 출제 방향에 대해 직접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린 적이 없다. 성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모의’를 ‘실전’으로 생각하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
최미라 “킬러에 대한 체감은 수험생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를 준비했던 학생, 과고와 특목고 재학생, 일반고 중위권 학생이 생각하는 킬러 문항과 수준은 다르다. 킬러 문항은 학원에 다녀서 다 풀 수 있는 게 아니라 진짜 똑똑한 애들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굳어져 왔다. 킬러 문항 때문에 사교육에 의존한다고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킬러 문항은 진짜 똑똑한 아이들을 가려내는 수단, 변별력을 위한 문항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유혜정 “지난 3년간 아이들은 현행 수능 출제 기준과 난이도에 적응하며 실전을 대비했다. 그런데 5개월 앞두고 대통령과 교육부가 혼란을 일으키는 상황이 말이 되느냐. 내 딸뿐 아니라 친구들도 모두 혼란스러워한다고 하더라. 당장 ‘수시로 어느 대학에 지원해야 할지’, ‘이전 모의고사 등급컷대로 지원하면 합격할 수 있을지’, 수능이 쉬워진다고 하니 정시로 전략을 바꿔야 할지, 논술 학원에 보내야 할지 갈피를 못잡겠다.”
김서연 “지난해 수능 직후, 적어도 올해 3월 모의고사 전에 출제 유형을 바꾼다고 했으면 모를까 이제와 지금 이 시점에 뜬금없이 수능 난이도를 문제삼은 이유를 모르겠다. 킬러 문항이 문제라면 내년부터 배제해도 되지 않나? 주변에서는 대통령의 지인이나 친척의 자식이 올해 수능을 치르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 윤 대통령은 수능, 그것도 킬러 문항 때문에 사교육 시장이 팽창·왜곡됐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킬러 문항 때문에 사교육에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보는가.
박은숙 “학교(상산고)에서 내신은 물론 모의고사와 수능 대비까지 해줘 3년 내내 사교육에 의존한 적이 없다. 학원비는 선행과 고교 입시를 준비하는 중학교 때 더 많이 들었다. 킬러 문항이 사교육비 증가의 본질이 아니라는 얘기다.”
최미라 “학교(명덕외고) 수업만으로 수능 대비는 충분하다. 학원은 수능이 아니라 전공언어 등 중간·기말을 앞두고 내신 대비반에 잠시 다녔을 뿐이다. EBS 교재와 인강을 주로 활용한다. 일타강사들의 인강을 수강하기도 하는데, 1년에 30만~50만원 정도면 모든 강의를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패스 요금제가 있어 대통령의 생각처럼 사교육비 부담이 크지 않다.”
이선아 “우리 딸은 일반고 내신 4~5등급, 모의고사는 3~5등급 수준이다. 그런데 학원비는 정작 상산고나 명덕외고 간 최상위권 애들보다 훨씬 더 많이 지출한다. 수능 대비 국·영·수·과 네 과목을 수강하는데, 한 달에 200만원꼴이다. 킬러 문항 맞히려고 다니는 게 아니라 학교 교육만으로 킬러 문항은커녕 모의고사나 수능 대비를 못 해주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다닌다. 그나마 학원 다니니까 그 정도 성적이 나오는 거라고 본다. 우리 애는 킬러 문항은 무조건 걸렀는데, 킬러 문항 대신 준 킬러 문항이 늘어나 무난히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줄어 학원 의존도가 더 커질까 두렵다. 수능 킬러 문항 배제 이전에 일반고의 학업 수준부터 높여달라.”
김서연 “지금 사교육 시장은 대입(수능)보다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 과학고 등 특목고 진학 때문에 더 과열되는 것 같다. 초등학생들이 고등학교 영어 문제를 풀고, 미·적분 선행을 하는 시대다. 사교육만 잡을 게 아니라 처참하게 망가진 공교육 시스템 전반을 바꾸는 게 급선무다.”
유혜정 “수능은 EBS 연계율이 높아지면서 학교도 부교재로 쓰고, 학원도 그 교재를 쓰더라. EBS 문제집이 국정교과서 같다. EBS 교재만 달달 외우면 고득점 받으니, 공부 잘하는 애들은 수능 대비 학원 안 다녀도 된다. 사교육 시장은 대입보다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과 맞물려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의 입시 학원 위주로 더 활개를 칠 것이다. 벌써부터 대치동 학원가에서 중3 특목 입시 설명회 문자가 많이 온다.”
- 수학능력시험은 11월 16일에 치러지지만, 올해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은 9월 11~15일이다. 수시는 수능 성적이 나오기 전 내신 등으로 학생의 능력과 수학 가능성을 파악해 선발하는 전형이지만, 서울 주요 대학들의 경우 수능 최저학력기준(등급컷)을 합격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능 출제 원칙 변경으로 수시 등 대입 전략을 다시 짜야 할 상황인가.
김서연 “일반고에 다니지만, 힘들게 공부한 덕분에 수능은 전 과목 1등급이다. 그 어렵다는 국어·수학·물리는 표준점수(표점)도 100점이다. 국어의 비문학(물리) 문항, 수학의 킬러 문항 덕분에 같은 1등급이라도 표점이 높아 입시에서 자신이 있었다. 같은 1등급이라도 표점 100점과 80점은 실력 차이가 어마어마해 우리 아들이 합격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 말대로 ‘쉬운 수능’이 되면 최상위권 변별력이 다 무너진다. 예를 들어 우리 애가 정원 30명인 의대에 지원했다고 치자. 1등급 100명이 지원했는데, 난이도가 쉬워 100명 모두 표점이 100점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 수능에서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잘 세우는 변별력을 유지해야 대학이 요구하는 정말 똑똑한 인재를 뽑을 수 있는 것 아니냐?”
박은숙 “쉬운 수능이 출제된다면 올해 대입에서는 소신 지원은 사라지고 눈치 게임만 심해질 것이다. 3년 동안 공부한 결과물인 수능 한 번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 말 한마디로 아이들의 노력이 물거품 되고, 인생이 바뀌게 될까봐 염려스럽다. 평소 100점 맞다가 정작 수능에서 실수로 한두 문제 틀려 등급이 확 떨어진다면 그 보상을 누가 해줄 건가? 똑똑한 애들 공부 의욕 꺾는 정책이다.”
유혜정 “쉬운 수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반수생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작년에 안타깝게 킬러 문제를 틀려 원하는 의대나 소위 SKY대를 못간 학생들이 재수학원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기사도 봤다. 성적이 좋은 N수생들이 수능에 응시하면 고3 현역들은 불리한 구조다. 모의고사보다 수능 등급이 더 낮아질까봐 아이가 무척 불안해한다.”
최미라 “수시로 ‘SKY대’ 합격이 목표다. 지금까지는 등급컷을 잘 맞췄는데, 실력이 뛰어난 재수생이 대거 수능을 치르면 등급컷이 낮아질 수 있다. 쉬운 수능에서는 한 문제 실수로 평소 1등급이 2~3등급까지 떨어질 수 있다. 4%까지 1등급인데, 100명 중에서 15명이면 1개 틀려도 3등급으로 떨어지고, 이 등급컷을 못 맞추면 불합격이다. 당장 9월 모의고사, 11월 수학능력시험 난이도와 등급 예측이 불가능한 터라 아이의 스트레스가 최고조다.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이선아 “지난 3월 30만원을 내고 대입 컨설팅을 받았는데, 물거품 됐다. 6모 성적이 나오면 수시 입시 컨설팅을 받으려고 예약했는데, 취소했다. 지금은 나도 아이도 다 멘붕 상태다. 가장 큰 피해자인 고3 수험생의 고충은 외면한 채 정부는 킬러 문항 배제를 매개로 사교육을 이권 카르텔, 일타강사를 사회악인양 몰아가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올해만이라도 현행대로 유지했으면 한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2023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022년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통일로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실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윤 대통령 ‘공정 수능’ 발언…“왜 지금?”
2022년 12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2023 정시지원 변화 및 합격선 예측, 합격전략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수능 실채점을 토대로 만든 정시 배치 참고표와 설명회 자료집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킬러 문항’ 때문에 “사교육 의존? 글쎄…”
서울 대방동 한 어학원 건물 외벽에 걸린 특목고 합격 홍보 펼침막.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고3 쏙 빠진 ‘주객전도’…반수생 급증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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