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한 생을 살면서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때로는 반려동물과, 때로는 연인과, 때로는 가족과….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꼭 겪어야만 하는 것이 이별에 따른 감정이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이별에 대한 거부반응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 거부반응이 교제 폭력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학교폭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폭력을 행사한 이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인정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랑을 받지 못한 탓에 헤어짐에 대한 바른 정서나 자세 역시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하지만 좋은 책은 좋은 정서를 심어주는 훌륭한 멘토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리버 보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15살 소녀 제스는 수영광이다. 그런 그녀를 지지하고 사랑해주는 부모님과 할아버지. 특히 화가인 할아버지는 제스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할아버지는 위독하지만, 고향에서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기 원한다. 제스는 곧 할아버지와 이별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기를 강력히 바란다. 그런 딸에게 엄마는 늘 부드럽게, 비폭력 대화방식을 사용하며 그녀를 대한다. 여기서 나는 제스 엄마에게 배움을 얻는다. 자식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그녀는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에 나오는 토토의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딸에게 간섭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공감해 주고 스스로 깨닫도록 기다려 주는 엄마. 이런 부모의 양육 태도는 자녀를 거절과 이별의 말을 참고 견뎌내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자세다.
할아버지는 고향의 강물을 사랑했다. 언젠가는 강물을 따라 바다까지 헤엄쳐 갈 것이라는 포부를 가졌던 유년 시절도 잊지 못했다. 그래서 15살 때의 자화상인 ‘리버보이’를 마지막 작품으로 그린다. 15살 때의 할아버지인 소년 리버보이는 시공간을 넘어 자신의 성격과 많이 닮아 있는 손녀, 제스를 만난다. 제스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소년을 통해 죽음의 길에 서 있으면서도 그림 완성을 고집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날, 그가 리버보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슬퍼하지만, 상대가 진정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마음으로도 편히 보내드린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픈 상처다. 하지만 제스처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까지 배운 이별의 자세는 교제 폭력이나 학교폭력으로까지 번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리버 보이’나 이형기의 시 ‘낙화’처럼 좋은 문학작품을 통해서라도 성숙한 이별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시대가 변해 핵가족화가 되면서 나조차도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별로 없다. 하물며 요즘 아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보다는 스마트폰을 더 좋아한다. 어쩌면 소설의 배경 자체가 우리 청소년들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정서는 상통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음속 강물이 출렁이는 것을 느낄 것이다. 바다로 향해 나아가고 싶은 열정과 남을 배려해 주고 싶은 마음에.
정혜욱·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