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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김홍도 ‘씨름’ 그림속 수학규칙 찾아라

등록 2007-01-21 20:44

오늘날 우리의 글쓰기는 ‘나’를 향한다. 소설도 비평도 그렇고, 논술문도 ‘나의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 ‘나를 쓴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데, 일기 쓰기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사진은 나치 점령 아래 긴장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일기. <한겨레> 자료사진
오늘날 우리의 글쓰기는 ‘나’를 향한다. 소설도 비평도 그렇고, 논술문도 ‘나의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 ‘나를 쓴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데, 일기 쓰기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사진은 나치 점령 아래 긴장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일기. <한겨레> 자료사진
강의 아닌 토론·발표·실험…
생활속 주제·창의적 발상 끌어내
막연했던 수리논술 감 잡히지?
우리학교 논술수업 짱/서울 광신고 김흥규 교사

2008학년도 입시를 치러야 할 고교 자연계 2학년 학생들에게 가장 큰 두통거리는 수리논술이다. 인문·사회논술은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있고, 대비 방법도 웬만큼 나와 있지만, 수리논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들마저도 수학적 개념이 과학이나 사회 등 다른 교과와 어떻게 엮여 나올지 도무지 종을 잡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서울 광신고 김흥규 교사(수학)의 생각은 다르다. 수리논술도 논술인 만큼 대비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읽기와 요약하기, 생각하기, 토론하기, 글쓰기 등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수리논술 대비에 있어서도 ‘왕도’라는 게 김 교사의 생각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실제 수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11일 오후 광신고 과학실. 김 교사가 이 학교 자연계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통합수리논술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한테서 신청을 받아 방학중 자연계 통합논술 특강반을 꾸렸는데, 모두 17명이 참여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세 모둠으로 나눠 자리를 잡았다. 수학 하면 떠오르는 문제풀이 중심의 ‘강의’보다는 ‘토론’에 적합한 자리 배치였다. 김 교사는 모둠별로 한 개씩 탐구 과제를 나눠줬다. 그림 속의 수학적 규칙 찾기, 타원과 원의 관계 정리하기, 타원의 성질을 이용한 의료기기인 신장결석 파쇄기의 작동 원리 설명하기 등이 이날 학생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우선 10분 동안 혼자서 생각해 본 뒤, 15분 정도 모둠원들과 생각을 나눠 보세요.”

모둠별 토론이 끝나자 발표가 이어졌다. 각 모둠에서 대표 한 명이 앞에 나가 자기 모둠에게 주어진 과제에 대한 토론 결과를 설명했다.

“그림을 잘 보면 ‘숲’과 ‘집’이라는 글자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적으로 배열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배열된 글자의 갯수를 차례로 나열하면 ‘1, 1, 2, 3, 5, 8, 13, 21…’입니다. 곧, 그림 속에 숨겨진 수학적 규칙은 바로 피보나치 수열(연속한 두 수의 합이 다음 수인 수열)입니다. 피보나치 수열은 꽃잎 등 자연 속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 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설명 잘 들었습니다. 첫 번째 모둠이 보고 토론한 그림은 화가 정승운의 <무제>라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화가는 피보나치 수열에 착안해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합니다. 혹시 다른 모둠 학생 중에서 이 설명에 반박할 사람 없나요?” 김 교사는 한 모둠의 발표가 끝날 때마다 모둠끼리의 토론을 유도했다. 신장결석 파쇄기의 원리를 설명한 세 번째 모둠의 발표가 끝난 뒤에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실험도 했다. 학생들은 타원 모양의 모형 당구대의 두 초점 위에 공을 놓은 뒤 한 초점에서 타원면을 향해 직접 공을 쳐 보면서, 타원면에 부딪힌 공은 반드시 다른 초점 위의 공에 맞게 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김 교사는 “타원의 이런 성질을 생활에 응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신장결석 파쇄기”라고 설명했다.


발표와 토론이 모두 끝난 뒤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출제한 모의 통합수리논술 문제를 나눠줬다. 원과 타원의 성질을 다룬 글 3개와 런던 성 바오로 대성당의 ‘속삭이는 회랑’을 소개하는 신문기사 등 4개의 제시문을 읽은 뒤, 원과 타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고 ‘속삭이는 회랑’에서 건너편의 작은 소리가 더 또렷이 들리는 이유를 타원의 성질에 비춰 설명하라는 문제였다. 김 교사는 “수업시간에 이뤄진 모둠별 토론과 발표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좋은 논술문을 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수업은 모두 4차례로 구성된 방학중 수리논술 특강의 세 번째 수업이었다. 첫 시간에는 생활과 논리의 관계, 수리논술의 개념과 접근법에 대해 살펴봤다. 이화여대의 수리논술 기출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 뒤 논술문도 작성했다. 두번째 시간에는 첫 시간에 써 본 논술문제를 분석하고, 고려대의 기출문제에 대한 토론과 논술문 쓰기 수업이 이뤄졌다. 김홍도의 그림 <씨름>에서 수학적 특징을 찾아보거나 색종이로 직접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 보며 창의적 발상을 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시간에는 세번째 시간에 내준 모의 통합수리논술 문제에 대한 분석과 첨삭지도가 이뤄졌다.

수리논술 특강에 참여한 박재호(18)군은 “그동안 참 막막했었는데 이번 특강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감을 잡게 됐다”고 말했다. 윤혜지(18)양도 “수리논술 수업은 이번이 처음인데 그냥 앉아서 듣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며 “수리논술에 대해 자신감을 얻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따로 또 같이’ 모둠 수업 통합논술의 기본 원리

서울 광신고 김흥규 교사(수학)가 생각하는 통합교과형 논술교육의 원리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모든 수업시간에 독서와 토론, 글쓰기 교육이 이뤄져 각 교과수업이 충실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과 사이에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수업방식에 있어서도 통한다. 논술문 작성은 개별적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지만, 주제에 대한 자료 수집 이나 토론 및 발표는 모둠별로 이뤄져야 한다. 좀 부족했던 학생도 친구들과 더불어 정보와 생각을 나누면서 몰랐던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협동학습을 구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김 교사는 “논술을 단순히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만 볼 게 아니라 공교육을 살리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사가 지난해 2월 전국수학교사모임에 ‘수리논술팀’이라는 소모임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식 암기와 문제풀이 중심의 수학수업에서 벗어나, 정규수업시간에 단 10분씩이라도 활동 중심의 수업을 실현해 보는 것이 수리논술팀 교사들의 목표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차례씩 만나 수업 사례를 나누고 토론을 벌인다.

김 교사는 “논술은 소수의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방과후 특강 형태로만 이뤄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규수업시간에 교과서를 중심으로 할 수 있는 수리논술수업 모형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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