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의 과제
전국 혁신학교 530곳 가운데 초등학교가 294곳, 중학교는 180곳이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53곳에 그친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로 갈수록 급격히 주는 숫자는 입시 경쟁 체제의 자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혁신학교의 난감한 현실을 보여준다.
혁신학교인 서울 강동구 선사고등학교도 다른 혁신학교들처럼 3학년 학생들은 교육방송(EBS) 수능 문제집을 수업에서 교재로 활용한다. 수능 연계 비율이 70%나 되는 EBS 교재를 무시할 수 없어서다. 다만 수학·영어 과목 이외에 국어·사회과 과목은 교사들이 EBS 교재를 토대로 강의식이 아닌 협동·토론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차이점은 있다. 장성수 선사고 교무부장은 “혁신학교는 기본적으론 학생들이 배정을 받아서 옵니다. 이 때문에 혁신고에서 제대로 입시 교육을 할까 불안해하는 학부모도 있어요. 그런 상황인데 저희가 입시를 무시할 순 없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혁신학교가 입시에 약하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편견이라는 게 혁신학교 교사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특히 대학 입시에서 수시의 비중이 늘어나고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것은 혁신학교에 유리한 환경 변화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서울 관악구 인헌고는 지난해 졸업생 300명 중 80명(재수생과 중복합격자 포함)이 수도권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 혁신학교 지정 뒤 행정 업무를 전담하는 팀을 만들어 담임교사를 행정 업무에서 해방시켜 학생지도와 수업에 집중하도록 했다. 동아리 활동을 지원해 150여개의 동아리가 생겼고, 오케스트라 동아리처럼 교사들이 가르칠 수 없는 영역은 외부 강사를 초빙했다. 협동해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수업 방식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충실하게 쓸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지난해까지 인헌고 교무혁신부장을 맡았던 오안근 자양고 교사는 “학교 교육과정을 정시가 아닌 수시에 맞춰 운영했더니 결과가 좋았다. 정시로 뽑는 학생 비율이 과거처럼 높았다면 혁신학교로서는 대입 준비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학교가 고등학교 단계에서도 초·중학교처럼 확대되려면 교육감들이 입학사정관제 같은 학생부 중심 전형을 확대하도록 대학에 요구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오재길 경기도교육청 기획담당 장학사는 “흥덕고 같은 일부 혁신고는 대입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다른 혁신고들은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대학들이 ‘학생이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까지 중요하게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도록 교육감들이 한목소리로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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