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르포
초등 1학년 교실을 가다(하)
초등 1학년 교실을 가다(하)
▶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을 사진으로만 보셨나요? 요즘 초등학교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궁금하신가요? 아이들의 수업과 생활을 2주간 함께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한주 동안 한뼘 더 자랐고 한뼘 더 감성을 키웠습니다. 선생님은 설교보다 설득 위주의 수업을 합니다. 수업인데 흡사 놀이 같습니다. 늘 소란스럽지만 신기하게도 질서를 찾아가는 서울 가재울초등학교 1학년 라온반의 그 두번째 이야기를 지난주에 이어 전합니다.
아이들은 온몸으로 세상을 만진다. 코로 맡고, 눈으로 담고, 손으로 비비며 자연을 입는다. 나뭇가지처럼 뻗은 핏줄을 타고 아이들이 자연에서 끌어온 감성은 온몸의 손끝과 발끝으로 퍼진다. 감성은 산소처럼 뇌를 숨쉬게 하고 지능을 깨운다. 저학년의 아이들에게 주입식보다는 공감과 이해를 우선시하는 교육이 확산하는 것은 아이들의 이런 성장과정을 어른들이 과학적으로 이해하면서부터다.
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한 혁신학교 중 하나인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소재 가재울초등학교의 오종열 교장은 이렇게 아이들이 교사와 공감하며 지내기를 바란다. 9일 아침에도 오 교장은 매일처럼 등굣길의 아이들과 학교 정문 앞에서 눈인사하기 바빴다. “하이파이브!” 아이는 팔을 들어 오 교장의 손뼉과 마주친 뒤 학교로 들어간다. “아이 아파!” 오 교장이 앓는 소리를 내자 아이의 입술과 볼은 사과처럼 둥글게 굽는다. “어제 내가 (빠진) 이빨 (새 이빨로 채워) 가져오라 그랬잖아!” 앞니가 덩그렁 빠져 있는 아이는 부스스한 머리로 고개를 까닥하며 오 교장에게 응답한다. 월요일 아침 조례시간에 지루한 설교를 할 때만 등장하는 교장선생님 스타일은 가재울초등학교에 없다.
발도르프 철학이 묻어 있는 혁신학교
<한겨레>는 지난 5일 가재울초등학교 1학년 라온(번호 대신 순우리말의 학급 이름을 씀. ‘라온’은 즐겁다는 뜻)반의 수업 풍경을 전했다. 혁신학교인 이 학교는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에서 탈피해 아이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자연스럽게 학습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진행한다. 대체로 학급 인원은 25명 이하로 제한하고, 담임교사에게는 수업 외 행정 업무를 맡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교사에게 설교 대신 설득을 듣고, 교사들은 아이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최대한 수용하려 노력한다. ‘호기심 나라의 시민’인 1학년 아이들은 질문을 꺼리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라온반의 새싹들은 한 주가 지나는 동안 얼마나 자랐을까. 9일 다시 라온반 교실을 찾았다. 이날 아침 8시50분 담임 이지영(30) 교사는 복도에서 교실문을 빼꼼히 열고 서 있을 뿐 좀체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여러분이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어야만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갈 거예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요구한 것은 ‘친구들과 떠들지 않기’, ‘자리에 얌전히 앉기’였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에게 교실의 규칙을 강제로 지키게 하는 것을 피하려는 그의 교습법이다.
복도에는 민선(가명)이 어머니가 서성이고 있었다. 교실 창문 너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민선이 어머니는 아이의 표정이 밝아진 게 마음이 놓인다. “애가 유치원 다닐 때보다 더 밝아졌어요. 11월생이라 (발육이 늦어) 좀 걱정했어요. 1학년이니까 그냥 잘 지내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민선이는 지난주 기자의 엉덩이를 만지며 솜사탕 같다고 까르르 웃던 아이다. 아직 어른과의 신체 접촉이 마냥 즐거운 여덟살이다.
민선이는 일주일 만에 라온반을 다시 찾은 기자를 보고 달려와 등에 매달리고 볼에 뽀뽀를 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지원(가명)이는 “저도 뽀뽀할래요” 하며 기자의 볼에 달려들었다. “너는 민선이보다 더 오래 하는구나.” 지원이와 민선이 모두 웃느라 어쩔 줄 모른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은 어른의 굳어버린 심장을 녹이는 손난로다.
초등학교 1학년 나이대의 아이들은 몸을 가누고 똑바로 서는 교육부터 받는다. 의자에 앉아서도 어떻게든 지렁이처럼 꼬물거리며 몸을 꼬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노랫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땅 위에 곧게 바르게 서 있어요/ 내 손은 세상을 향해 뻗어 있고/ 빛으로 가득 차 있지요/ 내 손은 별까지 닿고/ 내가 다시 땅으로 돌아올 때/ 내 머리 위에는 온 우주가 있어요.” 아이들은 노랫말을 부르며 최대한 손을 위로 뻗어 몸을 펴려고 노력한다.
가재울초등학교 1학년 교실의 수업 내용 일부에선 발도르프 교육철학이 느껴진다. 1919년 남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발도르프 아스토리아 담배공장’ 노동자 자녀들의 학교에서 시작된 이 교육은 교육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정립했다. 슈타이너는 인지적 영역에 치우친 교육에 반대하고 신체와 정신, 감각을 일깨우는 교육을 추구했다. 학생들의 우열을 나누지 않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요구에 귀 기울인다. 온몸의 감각을 키워 감수성을 끌어올리고 지능 발달을 꾀한다. 많이 아는 아이보다 잘 이해하는 아이로 키운다.
가재울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은
공감을 우선하는 교육 받는다
교장선생님과 “하이파이브”
크레파스 그림 그리면서도
만지고 느끼고 감각 깨운다 아이들은 끝없이 떠들면서도
선생님 말을 놓치지 않는다
질서 찾는 데 시간은 걸려도
스스로 질서를 찾도록 유도
웃음 잃지 않는 1학년 교실 ‘반은 우주인 반은 사람’ 이지영 교사는 아이들에게 6가지 색이 담긴 크레파스통을 2명마다 한개씩 나누어주었다. “어떤 색이든 좋으니 만져보세요.” 크레파스는 가루가 손에 잘 묻지 않는 것으로 준비했다. 아이들은 번쩍 손을 들어 저마다의 느낌을 나눈다. “밀가루 느낌이 나요!” “부드러워요!” “안 부러져요!” 크레파스는 사실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에게 익숙한 물건이다. 아이들은 대체로 크레파스 사용법을 이미 익혀왔다. 그러나 크레파스를 이리저리 만졌을 때의 감촉을 발표해보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이제 크레파스의 가장 큰 부분(옆면)의 이름을 붙여보자. 큰 거 하면 어떤 게 생각나지요?” 선생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코끼리!” “냉장고!” “우주!” “부엌!” 부엌?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한 아이에게 이전보다 넓어진 부엌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걸까. 어떤 아이가 부엌이라고 외쳤다. 선생님은 “와, 부엌이 커다란 집인가 보구나”라고 말을 받는다. 엉뚱한 대답도 아이만의 특별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냥 코끼리로 할게요.” 선생님은 크레파스 옆면을 코끼리라고 이름붙였다. 라온반에서만 통하는 이름이다. 선생님은 크레파스 코끼리 부분으로 도화지에 색칠을 시작했다. 아이들도 선생님처럼 크레파스를 눕혀서 도화지 곳곳을 문질렀다. ‘코끼리’는 알 수 없는 여러 그림들을 아이들의 손끝에서 쏟아냈다. 그러나 괜찮다. 이날의 교육 목표는 꼭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지 않다. “감각을 깨우는 수업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아직 대근육과 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나이예요. 연필을 손에 쥐어도 글씨를 쓰기 쉽지 않죠. 손끝까지 근육이 발달해야 바른 글씨를 써요.” 알고 보니 매일 아침 쿵쿵짝 소리 내며 손뼉치고 반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노는 것도 이지영 교사가 마련한 감각 깨우기 수업이었다.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 길이 없는 아이들은 그저 놀이 같은 수업에 흠뻑 빠져 80분도 잘 견딘다. “야, 왜 너만 노란색 써!” 지원이는 짝궁 채은(가명)이에게 화가 났다. 채은이가 노란색 크레파스를 혼자만 쓰려 했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이 노란 크레파스를 뺏고 빼앗기지 않으려 투닥거린다. 급기야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 선생님은 다가와 무릎을 꿇고 채은이와 지원이와 키높이를 맞췄다. 역시 설교가 아닌 설득이 이어졌다. “채은아. 노란색이 좋아?” “네.” “왜?” “밝아서요.” “그럼 다른 친구들도 밝은 것을 좋아할까?” “모르겠어요.” “짝꿍도 밝은 거를 좋아하는 거 같아. 내일은 밝은 거 나눠 쓸까?” “네.” 채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다시 크레파스를 쓰는 시간이 찾아왔고 둘은 싸우지 않았다. 지원이는 채은이에게 “내가 노란색 써도 돼?” 하고 물었고 채은이는 “응” 하고 말했다. 지원이는 짝꿍에게서 크레파스를 뺏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요령을 배웠고, 채은이는 욕심나던 물건을 양보할 때 찾아오는 평화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라온반 아이들은 하루 만에 이렇게 한뼘 또 자랐다. 아이들은 끝없이 떠든다. 선생님의 표정이 심각해지면 그제야 ‘개구리 합창’을 멈추지만 신기하게도 떠드는 와중에도 선생님 말씀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도 못 들은 아이에겐 짝꿍이 설명해주면 된다. “아이들이 떠들고 있으면서도 제 말을 다 듣고 있더라고요. 몇번 확인을 해봤더니.” 선생님이 기자에게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워낙 예측이 잘 안되는 행동을 하는 나이라 ‘반은 우주인 반은 사람’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수다 귀’와 ‘수업 귀’를 따로 갖고 있다. 아직 우주인의 초능력을 버리지 않은 걸까. 어른이 되어가며 자신도 모르게 사라져갈 그, 초능력.
어설퍼도 괜찮아, 1학년이니까
이날 수업이 끝나고 급식을 먹기 전 선생님은 북극곰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이 급식 때 반찬을 너무 많이 남겨 고육지책으로 꺼낸 이야기였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너른 얼음 위를 걷지 못하고 조각조각 나버린 얼음 위에 둥둥 떠다녀야 하는 북극곰 이야기였다. “얼음이 다 녹으면 북극곰은 어떻게 될까요?” 민훈(가명)이가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규칙을 어기고 벌떡 일어났다. 원래는 손을 들고 선생님 승인하에 발표를 해야 한다. “곰이 죽어요!” “얼음은 왜 녹을까요?” 또 민훈이가 규칙을 어기고 폴짝 뛰듯 일어섰다. “저 알아요! 태양을 받으면 녹아요!” 가끔 민훈이는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할 때가 있었고 선생님은 그게 걱정이었다. 규칙은 비록 어겼지만 민훈이는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자신이 아는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다. 민훈이는 이날 ‘북극곰 박사’라고 명명됐다. 민훈이가 웃었다.
다음날 아침 선생님은 직선 그리기 수업을 했다. 그러나 한번도 직선이란 말은 수업시간에 사용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두 팔을 주욱 펴고 가상의 지팡이를 만들어 입에 넣고 삼키는 시늉을 했다. 지팡이를 삼킨 선생님은 몸이 뻣뻣해진 것처럼 연기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흉내내며 논다, 아니 수업을 받는다. 뻣뻣한 시늉을 하는 것은 ‘곧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다. 선생님이 종이에 자를 대고 선을 그으며 ‘이게 직선이야’라고 가르치지 않지만 아이들은 몸으로 개념을 터득한다.
라온반의 교실은 일주일 사이 부쩍 안정이 되었다. 선생님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신발을 잘 벗고 교실로 들어갔고, 양옆 친구의 손을 잡고 강강술래 놀이 하듯 커다란 원 만들기도 잘한다.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와야 해도 더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에 따른 본능이 몸을 계속 꿈틀거리게 하고 발을 구르게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어른들 눈에만 정신없어 보이는 것일 수 있다. 태양은 가까이 가면 이글거리는 용광로이지만 멀리서 보면 둥근 해님일 뿐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무질서는 질서가 되고 질서도 무질서가 된다.
라온반의 민선이는 내일도, 아니 어쩌면 1년 내내 선생님께 뽀뽀를 하고 다닐지 모른다. 지원이는 어쩌면 1년 내내 크레파스 때문에 짝꿍과 다툴 수 있다. 손힘이 약한 금선이(가명)는 어쩌면 1년 내내 선생님께 물통 뚜껑을 열어달라 할지 모른다. 채은이는 1년 내내 “학교에 오는 것보다 집에서 잠자는 게 더 좋을지” 모른다. 혜련이(가명)는 1년 내내 급식으로 나오는 카레를 싫어할지 모른다. 하정이(가명)는 1년 내내 친구들 앞에서 이름을 말하는 게 부끄러울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은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 많이 아는 것보다 웃음을 잃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게 가장 중요한 나이다. 우주를 떠돌던 23명의 아이들이 혁신학교라는 우주선으로 갈아타고 부디 행복한 1년의 여행을 마칠 수 있기를, 가재울초등학교 1학년 라온반의 이지영 교사는 바란다. <끝>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초등 1학년 교실을 가다(상) ]
▶“선생님 선생님 근데요 선생님 선생님 저기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재울초등학교 1학년 라온반의 학생들은 창의적인 수업을 받는다. 라온반 담임 이지영 교사가 ‘곧은 선 그리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팔을 위아래로 뻗어 가상의 지팡이를 만들고 그것을 먹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하고 곧은 선이 무엇인지 몸으로 배운다. 허재현 기자
수업 중간 30분 자율 놀이시간에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논다. 라온반 학생 둘이 블록쌓기 놀이를 하고 있다. 허재현 기자
공감을 우선하는 교육 받는다
교장선생님과 “하이파이브”
크레파스 그림 그리면서도
만지고 느끼고 감각 깨운다 아이들은 끝없이 떠들면서도
선생님 말을 놓치지 않는다
질서 찾는 데 시간은 걸려도
스스로 질서를 찾도록 유도
웃음 잃지 않는 1학년 교실 ‘반은 우주인 반은 사람’ 이지영 교사는 아이들에게 6가지 색이 담긴 크레파스통을 2명마다 한개씩 나누어주었다. “어떤 색이든 좋으니 만져보세요.” 크레파스는 가루가 손에 잘 묻지 않는 것으로 준비했다. 아이들은 번쩍 손을 들어 저마다의 느낌을 나눈다. “밀가루 느낌이 나요!” “부드러워요!” “안 부러져요!” 크레파스는 사실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에게 익숙한 물건이다. 아이들은 대체로 크레파스 사용법을 이미 익혀왔다. 그러나 크레파스를 이리저리 만졌을 때의 감촉을 발표해보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이제 크레파스의 가장 큰 부분(옆면)의 이름을 붙여보자. 큰 거 하면 어떤 게 생각나지요?” 선생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코끼리!” “냉장고!” “우주!” “부엌!” 부엌?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한 아이에게 이전보다 넓어진 부엌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걸까. 어떤 아이가 부엌이라고 외쳤다. 선생님은 “와, 부엌이 커다란 집인가 보구나”라고 말을 받는다. 엉뚱한 대답도 아이만의 특별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냥 코끼리로 할게요.” 선생님은 크레파스 옆면을 코끼리라고 이름붙였다. 라온반에서만 통하는 이름이다. 선생님은 크레파스 코끼리 부분으로 도화지에 색칠을 시작했다. 아이들도 선생님처럼 크레파스를 눕혀서 도화지 곳곳을 문질렀다. ‘코끼리’는 알 수 없는 여러 그림들을 아이들의 손끝에서 쏟아냈다. 그러나 괜찮다. 이날의 교육 목표는 꼭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지 않다. “감각을 깨우는 수업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아직 대근육과 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나이예요. 연필을 손에 쥐어도 글씨를 쓰기 쉽지 않죠. 손끝까지 근육이 발달해야 바른 글씨를 써요.” 알고 보니 매일 아침 쿵쿵짝 소리 내며 손뼉치고 반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노는 것도 이지영 교사가 마련한 감각 깨우기 수업이었다.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 길이 없는 아이들은 그저 놀이 같은 수업에 흠뻑 빠져 80분도 잘 견딘다. “야, 왜 너만 노란색 써!” 지원이는 짝궁 채은(가명)이에게 화가 났다. 채은이가 노란색 크레파스를 혼자만 쓰려 했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이 노란 크레파스를 뺏고 빼앗기지 않으려 투닥거린다. 급기야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 선생님은 다가와 무릎을 꿇고 채은이와 지원이와 키높이를 맞췄다. 역시 설교가 아닌 설득이 이어졌다. “채은아. 노란색이 좋아?” “네.” “왜?” “밝아서요.” “그럼 다른 친구들도 밝은 것을 좋아할까?” “모르겠어요.” “짝꿍도 밝은 거를 좋아하는 거 같아. 내일은 밝은 거 나눠 쓸까?” “네.” 채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다시 크레파스를 쓰는 시간이 찾아왔고 둘은 싸우지 않았다. 지원이는 채은이에게 “내가 노란색 써도 돼?” 하고 물었고 채은이는 “응” 하고 말했다. 지원이는 짝꿍에게서 크레파스를 뺏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요령을 배웠고, 채은이는 욕심나던 물건을 양보할 때 찾아오는 평화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라온반 아이들은 하루 만에 이렇게 한뼘 또 자랐다. 아이들은 끝없이 떠든다. 선생님의 표정이 심각해지면 그제야 ‘개구리 합창’을 멈추지만 신기하게도 떠드는 와중에도 선생님 말씀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도 못 들은 아이에겐 짝꿍이 설명해주면 된다. “아이들이 떠들고 있으면서도 제 말을 다 듣고 있더라고요. 몇번 확인을 해봤더니.” 선생님이 기자에게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워낙 예측이 잘 안되는 행동을 하는 나이라 ‘반은 우주인 반은 사람’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수다 귀’와 ‘수업 귀’를 따로 갖고 있다. 아직 우주인의 초능력을 버리지 않은 걸까. 어른이 되어가며 자신도 모르게 사라져갈 그, 초능력.
크레파스를 짝꿍과 나눠 쓰려 하지 않는 아이를 설득하고 있는 이지영 교사.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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