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는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최종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7월 이루어진 1·2차 숙의토론회에 참여한 512명의 시민참여단 의견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공론화는 최근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여러 사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론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시민참여단에 선정돼 숙의토론회에 참여했던 나길우 교사의 숙의과정 체험기를 싣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40대 후반의 평범한 교사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항상 저를 도와주시는 장모님, 그리고 멀리서나마 아들이 직업인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두고 있습니다. 1999년부터 2년 동안 서울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강사로 일했고 2001년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공립학교 교사로 일해오고 있습니다. 교단에 선 지 벌써 20년이나 되었네요. 저는 고등학교에서만 20여년을 근무했습니다. 다른 경험은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담임으로서 혹은 교과교사로서 접할 기회는 많았지요. 특성화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남자고등학교, 남녀공학, 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은 특수목적고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형태의 고등학교에서 한 번씩은 근무해본 셈입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기억에 남는 제자들이 참 많습니다.
시민참여단에 들어오신 많은 분들처럼 저에게도 지난 6월 말부터 같은 번호로 여러 차례 전화가 왔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같은 번호로 계속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에 ‘정말 대단하네. 저 건너편에서 도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전화를 걸고 있는 거야?’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전화 설문조사에 응했습니다. 설문조사의 내용 중에는 시민참여단으로 활동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기에 대입제도 개편에 관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기말고사 출제와 학기말 업무 마무리가 바빠서 관심을 기울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미디어를 통해 접한 원전 공론화 시민참여단 활동 관련 기사가 생각났고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묘한 궁금증 등이 겹쳐서 숙의과정에 참여하겠다고 덜컥 승낙해버렸습니다. 지난 7월9일 기말고사 채점을 모두 마쳤을 때 시민참여단으로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집으로 자료집이 오고 7월14~15일 1차 숙의토론회에 참여하고 이(e)러닝 자료를 통해 관련 내용을 공부하면서 제가 얼마나 중요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지 조금씩 실감이 났습니다.
지난 7월29일 충남 천안 계성원에서 진행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숙의토론회에 참여 중인 시민참여단이 의제별 발제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초 걱정은 기우에 불과
이번 숙의과정에 참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시민참여단이 보여준 배려와 경청의 자세입니다. 지역, 직업, 연령 등이 너무 달라서 과연 의견교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각자 삶의 과정에서 체득한 기준을 각각의 의제들에 적용하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독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속한 분임에는 8월 말에 행정고시 2차 시험을 앞두고 있지만 시민참여단으로서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참여했다는 대학생도 있었고, 손자손녀에게도 이번 의제에 대한 생각을 물어서 일종의 종합의견(?)을 만들어 왔다는 어르신도 계셨습니다. 충남 예산에서 오신 어르신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역 고등학교의 수업 사례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숙의과정이 아니었다면 접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참가자들도 “앞으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대화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한다는 점에서 배려와 경청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발제자들(의제별 대표자) 간 토론에서 배려와 경청의 결핍을 느꼈습니다. 다른 발제자의 발표를 가로막거나 끼어드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직업병인지 마음속으로 ‘저러면 고등학교 토론대회에서도 바로 탈락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던지는 한 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종종 들렸다는 점입니다. 제가 속한 분임에서는 듣지 못했지만 엘리베이터에서나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다른 분임의 토론을 들어보면 “우리 분임의 누구는 하나도 개념을 모르더라” 식의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선거나 선택에는 좋은 후보, 좋은 정책을 가려내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데, 무지의 상태에서 던져지는 한 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준비나 판단이 부족한 사람들의 한 표가 갖는 가치를 의심한다면 똑같은 논리로 많이 배운 사람 또는 많이 알아본 사람에게는 두 표나 세 표의 권리를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숙의과정에서 돌아온 뒤에 찾아본 자료들이 있습니다. 숙의과정에서 아쉬움이나 부족함을 느꼈던 분들은 돌아온 다음에 분명히 나름의 공부를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짜 숙의는 오히려 숙의과정이 끝났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통계 의미 깊이 생각하기 어려워
1차 숙의토론회가 7월14일(서울, 광주)과 7월15일(부산, 대전)에 있었고, 2차 숙의토론회는 천안에서 7월27~29일 2박3일의 일정으로 열렸습니다. 2차 숙의토론회는 50개의 분임으로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한 분임은 10명 안팎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최대 인원을 고려한 듯합니다.
각 분임의 분임원들은 주어진 ‘의제’에 대해 돌아가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분임 단위의 질문을 만들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의제들을 검토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번 숙의과정에서는 4개의 큰 의제가 제시됐습니다.
의제 1은 정시(수능) 선발 인원을 전체의 45%로 확대하고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하자는 의견입니다. 객관식 평가인 수능을 통해 획득한 점수가 가장 공정한 기준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의제 2는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면접 등을 통해 적격자를 가리자는 의견입니다. 미래 사회의 핵심 가치가 현재의 수능시험 체제를 통해서는 길러지기 어렵다는 판단이지요.
의제 3은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전형 비율도 대학의 자율에 맡겨 달라는 주장입니다. 현재의 체제와 가장 유사하며 제기된 문제점들은 개선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호소합니다.
의제 4는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교과전형, 즉 내신성적 위주의 전형을 학생부종합전형(학종)만큼 확보하고 나머지 인원은 정시로 선발해 학종, 학생부교과전형, 정시 선발 인원의 균형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네 가지 의제 모두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통계자료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숫자만큼 강력한 것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자료들이 등장하다 보니 통계자료가 주는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시간이 부족해질 때 통계는 불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숫자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만 따오는 것이 통계일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수많은 통계자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분임토의의 과제로 넘겨졌습니다.
예를 들어, 2007년부터 2017년 사이의 사교육비 증가율을 보여주는 그래프가 숙의과정에서 여러 번 제시되었습니다. 그 표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사교육비는 약 40% 증가했더군요. 같은 기간 동안 물가는 약 27%만 증가했습니다. 제시된 자료상으로는 물가보다 사교육비가 더 올랐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학종의 비중도 커졌습니다. 그러니 학종의 사교육비 억제능력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아예 없다는 주장도 일부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숫자가 주는 의미를 좀 더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사교육비의 의미를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졌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아니, 이런 것까지 사교육비였어?’라는 생각이 드는 항목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사교육비에 포함된다면 과연 학종의 확대가 사교육비 증가를 초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2017년 사교육비 증가의 특징은 취미, 교양, 예체능 관련 수강료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이라는 내용도 있었고 중학생의 1인당 사교육비가 고등학생보다 오히려 많다는 내용도 있었지만 학종의 확대로 인해 사교육비가 상승했다는 자료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참고로 2008년부터 2017년 사이의 1인당 사교육비는 증가했지만 총사교육비는 오히려 2조3천억원 가까이 감소했다는 통계청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통계의 해석에는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숙의과정에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울러 이번 숙의과정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도 제시된 자료의 진위를 가릴 시간과 장치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김영란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저는 숙의과정 시작부터 두 가지 이유로 학종이 난타당할 것을 예상했습니다. 먼저 ‘종합’이라는 단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개인의 고등학교 생활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개념이라면 이 개념들을 묶어 대학에서의 가능성을 ‘종합’하여 본 것이 학생부종합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객관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비난을 예상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현재 학종이 대폭 확대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시 전형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기에 이와 같은 공론화 토론이 있었다면 정시 전형이 가장 많은 욕(?)을 먹었을지 모릅니다.
공정성 개념이 최대 화두
공정성의 개념, 즉,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이번 숙의과정을 지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정함이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알려주는 바로미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노력에 의해서 성과를 거두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노력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미래 사회를 살아갈 사람에게 필요한 역량을 키워주는 노력인가의 문제에 대해 숙의과정이 끝난 지금부터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학벌만이 사회계층 상승을 보장해준다는 믿음이 불안한 상태로 봉인되어 있는 한 우리 교육을 둘러싼 난타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불길한 생각도 듭니다. 지금 우리를 흔드는 작은 파도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 파도의 전조일지 모른다는 생각, 그때가 오면 오늘 우리가 했던 논의는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라는 두려움으로 제 글을 마치려 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의제를 선택했냐고요? ‘어떠한 객관적 자료가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주관적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게 저의 선택 기준이었습니다.
한 문장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1학년 1반 아이들아 건강하지? 방학 잘 보내고 개학하고 만나자. 그리고 3학년들 파이팅이다.
나길우/성남외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