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시간강사법 대책 간담회’.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이강재 서울대 교수(중문학), 박치현 강사(사회학), 이도흠 한양대 교수(국문과),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위원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11월29일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학에서 강사의 교원 지위를 인정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내년 8월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강사 대량해고에 나설 것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학 교수들과 강사들이 모여 ‘강사법’ 논란과 대안을 살폈다.
‘시간강사’란 무엇인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한 시간만큼만 ‘시급’을 받는 계약직 교육자를 노골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14년 전인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학 시간강사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하며 결정문에서 “시간강사는 특수 교과목 담당, 교수 휴직 등 공백 보충을 위해 일시적으로 위촉한다는 본래 취지를 벗어나 전임교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3년 서울대 시간강사 백아무개씨가 처지를 비관해 목숨을 끊어 이듬해 인권위 권고까지 있었지만 강사 처우개선에 관한 법률은 2010년 조선대 강사 서정민씨가 목숨을 끊고 나서야 논의됐다. 2011년에 이르러서야 국회를 통과한 ‘강사 처우 개선법’(개정 고등교육법)조차 부실한 내용 탓(<한겨레> 2015년 12월18일 기사 ‘
애초 부실 설계된 ‘시간강사법’…교원 지위 얻기전, 그냥 잘리네요’)에 세 차례 시행이 미뤄졌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대학이 시간강사 해고에 나서 논란만 증폭됐다.
11월29일 새로 발의된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대학가에는 바로 이 ‘강사법’ 때문에 강사들이 대거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는 소문이 돈다. 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대학에 지원할 정부 예산 288억원이 책정된 이후에도 법 시행을 앞두고 재정 부담을 느낀 대학들이 선제적으로 강사 대량 해고에 나선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대학 교수들과 강사들이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강사법’에 대한 비판들을 검증하고 법 시행이 제대로 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봤다. 대담에는 이도흠(58) 한양대 교수(국문학), 이강재(54) 서울대 교수(중문학), 박치현(43) 사회학 강사, 임순광(47)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이 참여했다.
사학들, 강사법 빌미 탐욕 현실화
?강사법이 바꾸려던 대학 시간강사의 현실은 무엇인가.
박치현 얼마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 숨진 24살 비정규직 청년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같다. 정규직 아니어도 좋다, 죽지 않게만 해달라는 것이다.
임순광 애초 ‘시간강사’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비전임 교원’ 문제, 교직의 비정규직화 문제였다. 현재 대학에는 31가지 형태의 비전임 교원이 존재한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한 시간강사의 처우부터 끌어올리려, 최소한의 노동권과 인권을 보장받으려 오랜 싸움을 해왔다.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 임금 협상을 할 때의 구호가 ‘배부르지 않아도 되니까 굶지는 않게 해달라’였다. 시간강사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자 이명박 정부 때 강사에게만 초점을 맞춘 법이 급조됐고 당사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통과했다. 그 법의 시행이 7년 동안 유예되면서 그 사이 대학이 강사 해고와 구조조정에 나섰고 비극이 시작됐다.
이강재 강사법이 유예된 지난 7년은 그냥 7년이 아니다. 대학들은 그 7년 동안 강사법의 취지를 무력화할 수 있는 대책을 엄청나게 세웠다. 비전임 교원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도 못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학은 무한 경쟁으로 내몰렸고 학령 인구가 감소해 일부 사립대부터 대학의 붕괴가 눈 앞에 와있는 상황이다. 사립 대학의 운영은 재단전입금을 거의 내놓지 않는 운영자들이 99%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는 구조다. 최근 문제가 된 사립 유치원보다 못하다.
이도흠 ‘시간강사’라는 단어는 박정희 독재 정권이 그들에게서 교원 지위를 박탈하면서 만들어졌다. 대학당국은 시간강사에게 절반의 교육을 떠맡기면서도 그 대가는 교수의 10분의 1만 지급해왔다. 이미 시간강사에 대한 착취와 배제의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서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되려 강사들을 해고하겠다는 대학들의 행태는 대학 사회를 아예 지옥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강사법의 의미는 무엇이고 왜 논란이 되고 있나.
임순광 고등교육법상 기존 교원(교수, 부교수, 조교수)에 강사를 포함시켜 의사에 반하는 면직, 학원 안 체포 등을 금지하고 소청심사 청구권을 보장했다. 강사의 임용은 주당 6시간 이하 수업, 1년 이상 계약이 원칙이고 재임용은 3년 동안 보장한다. 임금계약에 따라 방학 중 임금을 지급한다. 직장건강보험도 가입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것은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문제라 실현되려면 먼 이야기다.
이도흠 이번 강사법은 처음으로 대학과 강사, 정부가 강사의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을 합의한 ‘협치 모델’이다. 그런데 사립대학들이 이를 대학의 수익성을 높이는 기업형 구조조정의 기회로 악용하며 시간강사의 대량해고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화도 나고 절박감을 느낀다. 학문 생태계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의 흥망은 대학의 흥망과 비례한다. 대학에서 탐구된 진리가 수평적으로는 국가와 사회에, 수직적으로는 미래세대에게 전달되며 나라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해 왔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시장 체제에 포섭되면서 이미 대학이 기업연수원으로 전락했는데, 이 상황에서 강사 해고 사태까지 추가된다면, 학문탐구의 실천도량이나 비판적 지성의 보루로서 대학의 정신이나 기능은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이강재 강사법의 장점은 강사의 처우 개선일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박사 과정을 운영하는 교수 입장에서, 이번 법 시행 초기에 강사로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이후에 새로 강사가 되기 어려운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된다. 대학이 확장하고, 전임교수가 늘어나고 강사는 교수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몇 년만 하던 선순환 시대는 끝났다. 그런데 현재 강사들이 3년까지 재계약이 된다면 3년 뒤에
는 ‘계약 갱신 기대권’이 생겨 재계약이 안 될 경우 소청 심사를 청구하고 결국 대학이 누구도 해고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강사의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는 좋은데 그 여파가 후속 세대에 미칠 영향이 걱정이다.
임순광 3년 임용됐다고 계속 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법률을 보면 ‘재임용 절차’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이건 대학의 입장이 반영된 단어다. 3년까지만 임용을 보장하고 이후에는 대학이 정한 재임용이나 신규임용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기존 강사법에는 ‘1년 이상 임용’ 조항만 있었다. ‘3년 보장 뒤 재임용 절차’라는 표현은 없었다. 이 때문에 예전 강사법으로 1년 임용 뒤 ‘갱신 기대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번 강사법은 후퇴한 내용이다.
박치현 교원의 지위를 인정받고 학교에 연구 공간을 요구할 수도 있게 되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정도다.
임순광 방학 중 수당도 법률에는 있지만 기준이 없다. 대학들이 강사들에게 100원만 줘도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앓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강재 시행령에서라도 강의료나 방학 중 임금의 최소기준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시행 과정에서 강사들의 열악한 처우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강사 시급만 해도 현재 국립대는 8만원에서 시작하는데 사립대는 평균 5만2700원 수준이다. 이걸 주당 9시간으로 해도 연봉 1400만원에 불과하다. 현재 최저임금이 1880만원인데 최소한의 강의료 기준이 없다면 문제가 나아지기 힘들어보인다.
임순광 법안 마련 과정에서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으로서 교육부가 만든 테스크포스(TF)에 들어가는 등 대학 관계자들과 만나 수도 없이 논의했다. 그런데 합의를 보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이유는 방학 4개월(여름·겨울 합쳐)에 얼마 이상, 이런 식으로 말하는 순간 대학은 무조건 다 해고하겠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 당사자의 자율에 맡겨놓은 것으로 안다. 그렇게 힘들게 논의하고 합의를 하고도 대학들이 지금 다들 강사 대량해고에 나서겠다고 하는 상황 아닌가.
이도흠 교
원 보수로 대학이 쓰는 돈 중 강사료 비율은 연세대 3.38%, 고려대 4.43% 등 대개 3∼4%가량에 불과하다. 게다가 교육부가 강사법으로 추가 소요되는 인건비의 70%인 288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그런데도 재정위기로 강사 대량해고를 감행한다는 것은 엄살도 지나친 엄살이다. 사학들이 이를 빌미로 수익을 올리고 강좌 정리, 전임교수의 수업시수 증대 등 그동안 교수나 학생들의 저항으로 하지 못하였던 탐욕들을 현실화하는 한편, 강사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매도하여 무력화하려는 술책이라 본다.
예산 신설, 겸임·초빙 기준 의미 있어
임순광 그래도 강사 처우 개선을 놓고 국가에서 신설 예산을 편성했다는 것은 의미 있다고 본다. 시간강사를 줄이는 대신 겸임·초빙교수를 늘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들의 주당 수업시간을 제한했다. 앞으로 교육부에서 대학들에 보낼 ‘강사 운영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강사 채용 절차나 특별 교과목 문제를 어찌할 것인지 매뉴얼을 제시해야 대학들이 기준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부부터 의지를 갖고 대학 강사 문제만을 전담하는 팀이나 담당자라도 두어야 한다.
이강재 대학에도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전담 조직조차 없었다. 대학 내에 행정 조직으로 강사 문제 전담팀을 만들어 지금부터라도 대학 비전임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내년 8월 시행을 앞두고 대학 분위기는 어떤가.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박치현 올해 두 개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보통 11~12월에 내년 강의 논의를 하는데 올해는 아무 이야기가 없다. 계산해보니 강사법이 시행돼도 내게 실질적으로 들어오는 돈에는 거의 차이가 없더라. 단기적으로는 불안 요소가 많다. 대학 원망을 해도 소용없다.
이도흠 법이 시행되면 강사에게도 교원자격을 부여하고 3년간 임용을 유지해야 하기에, 법 시행 전에 강의와 강사 모두를 줄이고자 나선 것이다. 수익성이란 기준만 앞세우는 것은 스스로 교육기관이기를 부정하는 행위라 본다.
임순광 강사에게 3년의 임용 기간을 보장한 것을 두고도 강사 자리가 비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 왜 강사들은 계속 바뀌어야 할까? 일자리를 두고 기존에 있던 사람이 새로 진입한 사람과 계속 다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데도 자리를 비워주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해야 한다.
박치현 어찌보면 청년들이 앞으로 정규직 취업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도 비슷하다고 본다. 학자이고 연구자라면 강의를 하지 않더라도 대학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왜 꼭 강의를 통해서만 돈을 받아야 하나? 국가의 ‘연구자 생산’이라는 큰 틀에서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도흠 강사가 되지 못하는 박사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학문탐구를 할 수 있는 연구안정망이 확보되어야 한다. 대안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이 70%가량 강사들에게 배분되어야 하고 강사들도 연구책임자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학법 개정, 공영형 사립대 필요
이강재 정부 지원, 재단 전입금 등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엄밀한 의미의 사립대는 거의 없다. 정부 지원 비율을 따져서 사립대에 정부가 재단 이사 선임권을 요구하고 공공재로서의 대학에 대한 개념을 확립해야 한다. 사학법을 개정해 사립대학이니 재단 마음대로 한다는 식의 전횡을 견제하고 ‘공영형 사립대학’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도흠 2017년 현재 대학의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7.3명에 달한다. 대학이 연구(전담)교수, 강의(전담)교수 등의 비정규직을 만들고 정부가 전임교원으로 인정해 대학평가에 반영해주니 대학에서는 정년 보장 전임 교원을 충원할 필요가 없어졌다. 획일화하고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대학평가와 연구지원제도의 개선,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임순광 이번 강사법은 기준 없는 해고를 막고 약간의 처우개선을 하는 수준인데도 대학에서 대량 해고, 구조조정의 칼날이 돌아온다. 이렇게 야멸차고 무정한 대학에서 뭘 배울 수 있을까? 강사법이 ‘비전임교원법’으로 발전해나가길 바란다.
이도흠 강사로 일하는 후배가 “분명 내 문제인데 목소리를 낼 수 없어서 더욱 참담하다”고 하더라. 강사, 교수, 연구자를 망라한 연대체를 결성하여 ‘아래로부터 교육혁명’을 수행해야 한다. 전체 8조원, 학교별로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대의 적립금을 쌓아두고도 학문후속세대를 몰아내는 기관을 과연 대학이라 할 수 있을까? “학교 재정이 어렵지만 대학의 미래를 위해 추가 비용을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선언하는 총장이 연이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정리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