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이 순간] 38선이 두 동강 냈던 이 마을엔 평화가 숨쉰다

등록 2021-06-25 05:00수정 2021-06-25 08:39

한국전쟁 상흔 남은 38평화마을
잔교리 옆마을 기사문리. 한국전쟁의 참상이 담긴 벽화가 그려진 가정집 앞으로 아이들이 뛰어가고 있다. 양양/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잔교리 옆마을 기사문리. 한국전쟁의 참상이 담긴 벽화가 그려진 가정집 앞으로 아이들이 뛰어가고 있다. 양양/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7번 국도 강릉∼속초 구간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다 보면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38평화마을을 마주하게 된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38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포탄 모형의 작은 돌조각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잔교천(38선천)을 따라 평화를 낚는 조각상 <하나된 마음>, 마을회관 앞 밤나무에 매달려 마을의 위험을 알리는 종 역할을 했던 철다리를 품은 조형물 <생존의 울림, 평화의 종소리> 등이 세워져 있다. 2012년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평화를 기원하며 만들어진 ‘잔교리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작품들이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38교를 건너 38평화마을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포탄 모형의 작은 돌조각. 백소아 기자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38교를 건너 38평화마을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포탄 모형의 작은 돌조각. 백소아 기자

강을 사이에 두고 낚시대를 드리운 두 사람이 함께 평화를 낚는다는 최문수 작가의 작품 &lt;하나된 마음&gt;. 백소아 기자
강을 사이에 두고 낚시대를 드리운 두 사람이 함께 평화를 낚는다는 최문수 작가의 작품 <하나된 마음>. 백소아 기자

38평화마을은 작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 태풍도 피해간다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하지만 1945년 북위 38도를 사이로 마을이 갈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홍필녀(94) 할머니는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1945년 어느 날 로스케(소련군)와 미군이 잔교리에 와서 38선에 장막을 치고 여기서부터 이북, 이남이라고 했어. 그때 윗집 순희네 집의 방은 이남이고 부엌은 이북이었지. 동네 애들이 그 장막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했어.” 홍 할머니의 집 역시 남북을 오갔다. 땅은 그대로였지만 어제는 북쪽의 영토였다, 오늘은 남쪽의 영토가 됐다.

홍필녀 할머니(94)와 남편 이완산(92) 할아버지. 이 마을에서 태어나 6살에 부모님이 지금의 집터를 샀다. 본채만 4개였다는 큰 집은 전쟁이 끝난 뒤 재가 됐다. 홍 할머니는 이 집에서 부모님 두 분을 보내드리고 아들 셋을 키웠다. 백소아 기자
홍필녀 할머니(94)와 남편 이완산(92) 할아버지. 이 마을에서 태어나 6살에 부모님이 지금의 집터를 샀다. 본채만 4개였다는 큰 집은 전쟁이 끝난 뒤 재가 됐다. 홍 할머니는 이 집에서 부모님 두 분을 보내드리고 아들 셋을 키웠다. 백소아 기자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홍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전쟁이 일어나던 날 새벽 포격 소리에 일어나 산 위에 올라가 보니 인민군이 새까맣게 깃발을 흔들며 오고 있었다. 엄마는 큰언니가 약해서 애기를 업고 가지 못하니 인구 언니네와 작은언니네와 같이 피란 가라고 했다. 우리는 국군을 따라 인구리 5중대본부로 나가는데 뒤에서 인민군이 총질을 하며 따라온다.’(6·25한국전쟁 시기 양양군민이 겪은 이야기 증언집 중 홍필녀님 기록)

38평화마을에서 바닷가로 이어지는 38교 아래 굴다리. 차 한대 겨우 지나갈 굴다리 벽에는 총을 든 군인과 꽃 한송이, 철조망에 내려 앉은 나비 한 마리가 그려져있다. 백소아 기자
38평화마을에서 바닷가로 이어지는 38교 아래 굴다리. 차 한대 겨우 지나갈 굴다리 벽에는 총을 든 군인과 꽃 한송이, 철조망에 내려 앉은 나비 한 마리가 그려져있다. 백소아 기자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집은 불에 타 터만 남아 있었다. “아버지랑 남편이 이 집을 다시 지었어. 부모님 두분 모두 보내드리고 세 아들을 이 집에서 키웠어.” 홍 할머니의 집에서 잔교천을 따라 바다로 향하면 옥빛 동해바다 위, 파도에 맞선 서퍼들이 초여름 정취를 한껏 즐기고 있다. 잔교천을 따라 흘러온 전쟁의 아픔이 동해바다에 맞닿아 부서져 내린 듯하다. 다시 돌아본 38평화마을은 고요하다. 마을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 세워진 예술작품들이 평화를 지키듯 담담하게 서 있다.

양양/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1년 6월 25일자<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퇴진 집회’서 11명 체포…민주노총 “경찰이 폭력 유발” 1.

‘윤석열 퇴진 집회’서 11명 체포…민주노총 “경찰이 폭력 유발”

‘윤 정권 퇴진 집회’ 경찰·시민 충돌…“연행자 석방하라” [영상] 2.

‘윤 정권 퇴진 집회’ 경찰·시민 충돌…“연행자 석방하라” [영상]

숭례문 일대 메운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포토] 3.

숭례문 일대 메운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포토]

16살이 바카라로 1억9천만원 탕진…경찰, 청소년 4700명 적발 4.

16살이 바카라로 1억9천만원 탕진…경찰, 청소년 4700명 적발

위장회사에 ‘낚인’ 기후변화총회 CEO “화석연료는 영원할 것” 5.

위장회사에 ‘낚인’ 기후변화총회 CEO “화석연료는 영원할 것”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