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창고 내부 모습.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스티로폼 박스들 사이에서 지게차와 사람이 오간다.
“얇은 외투 한 벌이나 플리스(솜털 재킷) 챙겨서 출근 부탁드리겠습니다.”
연일 폭염 경보를 알리는 안전 안내 문자들 사이로 이런 짤막한 메시지가 기자의 휴대전화에 도착했다. 식품과 음료 등을 취급하는 신선물류센터 단기 아르바이트 지원을 위해 ‘이름, 성별, 나이, 주소, 일하기 원하는 지역’ 등 5가지 정보가 담긴 문자를 인력사무소에 보내자마자, 곧바로 출근하라는 답장을 받은 것이다. 기자는 지난 3일 경기도 안성시의 한 물류업체 신선센터에서 오전 9시부터 밤 9시30분까지 냉장창고 택배 포장을 했다.
한여름에 입는 솜털 재킷…“추운데 머리가 아파요”
신선물류센터는 식품 신선도 유지를 위해 온도를 영상 7~9도에 맞춘 거대한 냉장창고다. 약 8700㎡(2655평) 규모의 센터 안에는 영하 16~32도를 유지하는 냉동창고가 있다. 노동자들은 택배 집품과 입·출고, 상하차 등 각자 역할에 따라 바깥과 냉장창고, 냉동창고를 오간다. 미리 챙긴 플리스 재킷은 저온 냉장창고의 추위에서 버틸 작업복 역할을 했고, 업체가 40여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제공한 건 코팅된 면장갑뿐이었다. 아침조회에서 관리자는 “지게차 조심하라”, “수다 떨거나 일을 제대로 안 하면 집에 보낸다”라고 간단한 ‘안전교육’을 했다. 노동자들은 점심(1시간)·저녁(40분) 식사시간 외 휴식시간 30분을 제외하고, 10시간20분 동안 센터 안에서 부단히 움직였다.
센터가 한여름 여름 폭염에서 빗겨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폭염 속 센터 노동의 맹점은 안과 밖의 급격한 기온 차이였다. 청바지에 긴팔, 플리스 차림으로 7도 남짓한 서늘한 공간에서 2시간 넘게 서 있다가 휴게 시간이 되어 30도가 넘는 땡볕 아래로 목을 내미는 순간 가벼운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두 번의 휴식과 식사시간 동안 냉장창고 안과 밖을 이동하는 횟수는 약 10번으로, 그럴 때면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24도가량의 온도 차를 견뎌야 한다.
포장 테이블에서 바라본 컨베이어 벨트 모습. 택배 포장을 기다리는 스티로폼 박스들이 쉼없이 밀려온다.
업체가 제공하는 휴게 공간은 에어컨이 없는 5.5평 크기의 컨테이너가 전부여서, 노동자들은 대부분 건물이 드리운 그늘을 택했다. 쉬는 동안 차오른 땀은 센터로 돌아가면 금세 식었지만 온도 차에 따른 두통과 어지러움은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포장 구역에서 함께 일한 50대 여성 ㄱ씨는 “추운데 머리가 아프다”며 온몸을 두꺼운 옷으로 감싸고 상품 포장을 위해 비치된 얼음팩을 이마 위에 얹어보길 반복했다. 잠시 한눈을 파는 그 순간에도 포장을 재촉하는 컨베이어벨트는 쉼 없이 돌았고, 그녀 앞으로 택배용 스티로폼 박스는 쌓여갔다.
포장 박스 600개, 평균 무게 130kg의 통증
코로나19로 비대면 쇼핑이 증가하면서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는 그 어느 때보다 ‘특수’를 누리고 있다. 사업이 성장할수록 배송 속도 경쟁도 치열해져, 센터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이날 기자가 포장 작업을 한 스티로폼 박스는 1시간에 약 60여개꼴로, 평균 무게는 130kg 안팎이었는데, 약 10시간 동안 쓴 80m 길이의 박스테이프만 9개였다. 열 개의 손가락은 박스 크기에 따라 접고 펴기를 끊임 없이 반복해야 했고, 팔꿈치에서 어깨, 허리로 이어지는 상체는 테이핑한 박스를 옮기는 족족 통증이 느껴졌다. 기자보다 숙련된 노동자들의 작업 속도는 더 빠르지만, 그들이라고 통증에서 예외는 아니다. 여성 노동자 ㄴ(51)씨는 “아침이면 손가락이 잘 움직이질 않고 일어나서 30분 정도가 지나야 손이 펴지는 느낌이 든다. 어깨가 아프다는 사람도 많고, 오래 서서 움직이다 보니 허리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센터에서 가장 작업 환경이 열악한 곳은 단연 냉동창고다. 냉장창고 노동자의 휴식 시간에 인색한 업체들도 영하의 기온을 견뎌야 하는 냉동창고 노동자들에게는 50분 근무 뒤 10~15분의 휴식시간을 준다. 그만큼 일이 고되기 때문이다. 1년째 냉동창고에서 일하고 있는 ㄷ(43)씨는 “냉동창고에는 냉매제로 프레온 가스가 방출되는데, 이 수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쓰러지는 사람도 종종 나온다. 실제 일하다가 기절하는 사람도 봤다”며 “여름엔 (안팎의) 온도가 극과 극이라 몸에 더 안 좋은 것 같다. 우리끼리는 냉동창고에서 1년 이상 있으면 몸이 곯는다고 한다. 영하 22도에 있으니 장갑을 껴도 손가락이 얼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워 움직이다 보면 허리와 무릎에 더 무리가 간다”고 했다.
냉장이든 냉동이든 고된 물류노동이긴 마찬가지이지만, 신선물류센터는 일반 물류센터와 달리 상대적으로 무게가 덜 나가는 제품을 취급하고 일정 기간이 보장되는 계약직 채용도 잦은 편이다. 신선센터에 경력이 단절되거나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여성 노동자들이 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40대 여성 노동자 ㄹ씨는 “집품이나 포장은 여성과 남성 비율이 6대4 정도 되는데, 코로나 여파로 일자리가 없다. 지금 여길 그만둔다고 해도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몰라 (일단) 부여잡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선센터 여성 노동자들은 육체노동에 따른 근골격 질환뿐 아니라 생리불순 등 여성질환이라는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다. 방과후 강사로 일하다 코로나19로 일이 끊긴 뒤 신선센터에서 일했던 ㅁ(46)씨는 “냉장창고에서 야간근무를 하다 보면 신체 리듬이 깨지는데, 6개월 일하면서 생리불순이 생겼다. 2~3년씩 일한 사람들은 이러다가 폐경이 온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을 관두고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나아지더라”고 말했다. 냉동창고에서 일하는 ㄷ씨는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게 느껴지고, 난소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궁이 약해지는 경우도 봤다. 특히 여름이 그런데, 성수기여서 8시간씩 일해야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여름엔 막상 창고 같은 휴게실에 가면 또 너무 더워서 잠시라도 제대로 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원영석 산부인과전문의는 “찬 공간에 오래 있어 혈액순환이 감소하면 난소 기능이 떨어질 수 있고, 배란이나 호르몬 분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며 “또 여름철 고온다습한 환경에선 여성 질환 자체가 증가하는데, (냉장·냉동 창고에서) 보온을 위해 옷을 두껍게 입은 뒤 그 상태로 바깥에 나오면 더 더워져 여성질환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냉장창고 노동을 마친 뒤 쉴 수 있는 유일한 휴게공간.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한 대만이 돌아가 밖에서 쉬는 노동자들이 많다.
글·사진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