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수확철을 앞 둔 강원도 태백 매봉산 고랭지배추밭. 태백/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낮 뙤약볕이 강원도 태백 매봉산 배추밭을 내리쬐고 있다. 마른바람에 산 정상 풍력발전기 날개가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해발 1303미터,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배추밭에 출하를 앞둔 여름배추가 익어가고 있다.
매봉산 배추밭은 1965년 화전민 정착촌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화전민들은 산비탈의 황무지에 자신들이 먹기 위해 배추를 심기 시작했다. 처음 ‘불배추’(속이 꽉 차지 않는 등 저품질 배추)로 불리기도 했지만, 품종 개량을 통해 아삭거리는 식감을 자랑하는 ‘금배추’로 거듭났다. 1980년 본격적인 산업화로 배추 수요가 급증하며, 부르는 게 값이었던 적도 있다. 2.5톤 트럭 한 차에 3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5톤 트럭 기준으로 300만원 정도의 가격을 받는다.
드론으로 하늘에서 본 매봉산 배추밭. 박종식 기자
고랭지 배추는 금배추라 불리며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기후변화 탓에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1.8℃ 오르며 꾸준히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날씨 민감도가 높은 배추 작황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이정만 태백매봉산영농회장은 “기후변화로 작황이 나빠져 대체 작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수년째 나오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말한다. 해발 고도가 높은 지역 특성상 배추 외의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도 쉽지 않다.
출하를 앞둔 배추가 익어가고 있다. 박종식 기자
농촌진흥청은 이대로 기온 상승이 이어진다면 2090년 강원도 태백에서 고랭지 배추 재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2010년 7449㏊였던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이 2050년 256㏊로 줄고, 2090년에는 ‘0㏊’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몇년내에 개마고원에서나 고랭지 배추밭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인력난도 버텼던 고랭지 배추지만 전세계적인 기후변화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대로 기후변화를 방치한다면 우리 식탁에서 여름배추가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태백/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anaki@hani.co.kr
2021년 8월 2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