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아프가니스탄 한국 협력자 가족들이 23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한국 협력자들의 구출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탈레반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하자라 족인데다가, 카불에 살고 있는 형은 한민족복지재단(KFWA)과 함께 일을 한 경력이 있어 탈레반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출신인 ㄱ은 2008년 한국으로 유학 왔다가 최근 귀화절차를 마치고 국내 자동차 관련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23일 <한겨레>에 “아프간 카불에서 박해의 위험에 놓인 형과 가족들을 한국 정부가 안전하게 아프간을 빠져나올 수 있게 조처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는 ㄱ을 비롯한 국내 거주 아프간인 30여명이 아프간 현지에서 한국 정부와 국제기구, 기업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것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1인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은 “한국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프간 가족들에게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인도적인 조처를 해줄 것을 호소한다”며 “아울러 돌아갈 나라가 없어진 한국 거주 아프간 사람들의 난민 신청도 너그럽게 받아준다면 한국 사회에 보답하는 협력자가 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에서 왔다는 ㄴ은 “삼촌이 아프간에서의 한국 보건의료 사업에 참여했고, 사촌은 한국기업의 건설에 협력해 일했는데 탈레반이 점령한 이후 박해의 대상이 됐다”며 “탈레반은 일한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를 타깃으로 삼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이들을 데려와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도 현지인 조력자들에 대한 대책을 검토중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분들(현지인 조력자)을 안전하게 우리나라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선 정부로서도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프간인들의 수용을 반대하는 ‘반난민’ 여론도 일부에서 일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는 22일 ‘난민 받지 말아 주세요’라는 제목의 아프간 난민 수용 반대글이 올라왔다. 해당글은 미국 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미군기지에 아프간 난민 수용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 저널>보도가 나온 직후에 게시됐다. 청원인은 “현재 한국도 불경기와 코로나 장기화로 불우이웃이 넘치고 너무 힘든 상황”이라며 “난민들을 받는 순간 우린 테러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한국에 있는 아프간인들을 강제출국 시켜달라”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은 이날 오후 5시까지 약 6천명이 동의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아프간인들은 낯선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은 이해하지만 아프간의 비극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인정을 베풀어줄 것을 촉구했다. ㄴ은 “테러를 저지르는 이슬람 극단주의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한국에 살고 있는 아프간인과 그의 가족들은 전혀 이들과 무관한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아프간인들이 한국에서 작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산지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별다른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 이호택 대표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현 상황은 미얀마에서 쿠데타로 정권이 바뀐 것 이상으로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상황에 빠진 것이다. 정치인들이 소신을 갖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여론을 형성해가면 좋겠다”며 “2018년 예멘 난민 유입 당시에는 우리가 처음 직면해서 소모적인 논쟁에 빠진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작동하고 이들을 보호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 장관은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대한 질문에 “미국 측의 난민수용 문제는 전혀 한-미 간에 협의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바로가기
: “여권 만료 4개월 남았는데…” 국내 아프간인들 절망 속 하루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84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