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진성씨가 자신에게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는 대학 후배인 문인을 상대로 ‘과거 사귀었다’고 주장한 것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박씨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8부(재판장 윤도근)는 지난 19일 시인 유진목씨와 배우자 손문상씨가 박씨를 상대로 제기한 총 2억1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유씨에게 800만원, 손씨에게는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박씨가 유씨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반소(맞소송)는 기각됐다.
유씨는 2016년 12월 <문예중앙> 겨울호에 실은 산문 ‘혐오사전’에서 실명 언급 없이 과거 경험했던 스토킹 피해사실 및 작품표절 피해를 언급했는데, 글이 게재되자 박씨는 트위터와 블로그에 45차례에 걸쳐 ‘유씨와 나는 2000년경 연인으로 교제했다’, ‘유씨와 부산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수십장 가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올렸다. 이에 유씨는 “과거 연인관계가 아니었는데도 박씨가 마치 연인이었던 것처럼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박씨가 유씨와 2000년경 서로 연인관계였다는 글을 게시하고 부산여행을 언급한 것은 전체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이라며 “박씨는 유씨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유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이들과 함께 대학 문학동아리를 함께한 복수의 증인들이 ‘둘이 사귄다는 말을 전혀 들은 적 없다’, ‘유씨는 신입생으로서 선배에 대한 공식적인 깍듯함을 유지했다’, ‘박씨가 유씨의 남자친구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증언이 있고 △박씨가 유씨와의 부산여행 사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하나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두 사람은 연인관계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2000년경 유씨가 박씨에게 쓴 이메일에 ‘사랑’, ‘외로움’ 등의 표현이 나온다’며 연인관계가 맞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메일의 전체 맥락상 ‘사랑’은 ‘이성적 호감이 아닌 타인을 아끼는 마음’, ‘외로움’은 ‘일방적으로 다가오는 상대방을 거절하면서 느끼는 외로움’ 등을 표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인의 연애사같이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해당하는 과거 행적에 관해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의 명성, 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해 사회의 객관적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유씨가 박씨와 서로 연인관계였다는 허위사실은 유씨 개인과 문학인으로서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박씨가 게시한 일부 글에 대해서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고 의견을 표명한 것 등에 불과하다며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유씨의 법률대리인 이은의 변호사는 24일 “박씨가 온라인에서 일방적으로 떠드는 허위사실들로 유씨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여러 구설과 의혹의 눈길에 시달려야 했다”며 “이 사건 판결이 유사한 피해사건들에 영향을 미치고 경종을 울려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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