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자가격리를 마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자녀들이 체육 활동을 하고 있다. 진천/사진공동취재단
초록색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 20여명의 아이들이 축구공을 찬다. 운동장 주변에 있는 육상 트랙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책하고 있다. 기자가 공놀이하는 아이에게 엄지를 치켜들자 환한 웃음이 돌아온다. 흔한 공원의 풍경 같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한국 정부 현지 조력자들이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정부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13일 아프간 특별기여자가 임시 생활 중인 충청북도 진천군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을 찾았다. 이날 특별기여자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세 번째 외출을 했다. 이들에겐 하루 1시간, 인재개발원운동장 약 1만㎡ 범위 내에서 외출의 자유가 허용된다. 그럼에도 특별기여자들은 이 시간만 기다린다고 한다. 통역 봉사를 하는 아프칸 출신 ㄱ은 “아무래도 기숙사 안에만 있는 것을 답답해한다. 그래서 1시간씩 밖에 나오는 것을 기대한다”며 “이런 생활이 계속되는 게 아니니까 조금만 참자고 얘기하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연령·성별에 따라 4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유소년 축구 활동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축구 활동에 참여하는 65명 중 22명이 여성이기도 하다. 과거 현지에서 10년간 아프간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이성제(53)씨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씨는 “9·11테러 직후 아프간에 갔을 때는 여성이 축구 경기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여성팀을 만들 때 신청자가 많아서 놀랐다”며 “잘하는 아이들은 한국에 있는 축구팀과 연결되면 좋겠다”고 했다. 법무부는 다음 주 중 태권도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들은 아프간 탈출 당시 한국 정부의 도움만 기다리며 손놓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와 특별기여자와의 연락이 쉽지 않던 지난 7월,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일하던 ㄴ(40)이 처음으로 한국대사관에 협조를 요청하며 이들의 탈출은 급물살을 탔다고 한다. 탈출 과정에서 현지부터 특별기여자끼리 이어오던 연락망도 잘 작동했다. ㄴ은 “처음에 미군이 아프간을 떠난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았고 탈레반이 오면 우리 미래는 불안하다고 생각해왔다”며 “당시 한국대사관에 직접 연락했는데 직원분들이 밤을 새워가며 일해주셔서 우리가 여기 올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특별기여자와 직계 가족은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친척·지인은 아프간에 남아있는 상태다. 자신은 안전을 찾았지만 현지에 남은 친척들 걱정까지 지울 수 없다. 현지 한국직업훈련원에서 교수였던 ㄷ(37)은 “나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친척과 연락을 했지만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들은 아직 남은 친척과 연락하지 못했다”며 “여성들은 모든 자유가 금지됐고 외국인이나 정부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도망가는 상황이다”라고 했다. 그는 “(나도)아프간에 있을 때 언론 등에 탈레반에 반대하는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탈레반이) 집에 왔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13일 오전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자가격리를 마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체육 활동을 하고 있다. 진천/사진공동취재단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들 교육과 일자리는 특별기여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ㄷ은 “교육적인 도움이 있었으면 한다. 일자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에 따라 그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특별기여자가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천에서 2주간 건강검진 등 기본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23일부터 본격적인 사회적응 교육을 할 계획이다. 특히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 2명을 포함한 7명의 임산부에게는 산부인과 진료를 우선 지원한다. 유복렬 법무부 총괄단장은 “성인에게는 법무부가 가진 기본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 사회 질서, 금융 등을 종합적으로 교육할 계획”이라며 “전체 입국자의 60%가 넘는 미성년자에게는 교육부와 협의해 적정 연령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이 의료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임을 고려해 개인 전문성 등을 살려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