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송정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아이들이 25일 오전 수업을 받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영재교육원의 학급당 학생 수는 20인 이하로 한다.’ 현행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은 과학고 한 반 학생 수가 20명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소규모 학급을 ‘특별한 교육 조건’의 하나로 본 셈이다. 아직 일반 학교엔 이런 규정이 없다. 여러 연구보고서는 20명 이하 교실이 학습과 사회관계의 기초를 다지는 어린 학생들에게 특히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최근 세종·울산시교육청이 내년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을 ‘20명 이하’로 운영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질까. <한겨레>는 ‘20명 교실혁명’을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사랑 가득 우리 반.”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송정초등학교 1학년 5반 교실 게시판엔 커다란 모자이크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학기 초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 제각각 종이를 받아든 아이들은 조각난 그림과 글씨에 색을 채워 넣으며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궁금해했다. 조각은 모두 16장, 1학년 5반 전체 아이들 인원수와 같다.(현재는 1명 전출로 15명) 1학년 5반뿐 아니라 현재 송정초의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17.1명에 불과하다. 올해 개설한 학급 수에 비해 입학생·전입생이 적어 의도치 않게 학급 규모가 작아졌다. 하지만 아이들과 선생님이 눈 맞출 시간이 는 건 의외의 수확이다.
학급당 20명 이하. 현장 교사들이 학생 간 학습 격차를 해소하고,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방역도 가능하다고 꼽는 수다. 하지만 보통의 국내 현실은 올해 교실당 학생 수가 유치원 16.1명, 초등학교 21.5명, 중학교 25.4명, 고등학교 23.0명 수준이다. 그나마 이러한 평균치를 훌쩍 넘는 과밀학급도 많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초·중·고등학교에서 28명 이상 과밀학급은 전국 4만439개로 다섯 학급에 하나꼴(18.6%)이다. 30명에 육박하는 교실과 20명 이하 교실, 수업의 질과 학생 참여도는 어떻게 달라질까.
“3년 전 1학년 학급을 맡았을 때 학생 수가 31명이었던 적이 있었어요. 1학년은 특히 선생님이 해줘야 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예를 들어 교과서를 못 챙기는 아이들, 가위질 못 하는 아이들, 급식 먹을 때 젓가락 쓰는 게 어려운 아이들…. 챙겨줘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31명을 맡았을 때는 좀 힘들었어요.”
올해 송정초에 부임한 12년차 오현정 교사는 다른 학교에서 31명 학급을 맡은 적도 있다. 그는 학급당 학생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지금, 아이들의 속도에 맞는 지도가 훨씬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오 교사는 “일단 (아이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교사 입장에서 수업의 질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게, 학급당 학생 수거든요. 아이들이 말을 걸면 거기에 대한 응답이라든가, 학습에 대한 피드백도 훨씬 자주 할 수 있어요. 31명 학급에서 한번 대답해줄 걸 여기는 두번 해줄 수 있는 거죠. 사소해 보이지만 교실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교사의 피드백이 많을수록 아이들은 교실에 더 빨리 적응하고, 더 많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이들끼리도 서로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응원하는 과정에서 수업 참여도도 높아진다는 게 오 교사의 설명이다.
“오늘 국어 시간에 바르게 듣고 말하기 수업을 했는데, 15명 모두 돌아가며 발표를 했어요.” 산술적으로 계산해봐도, 31명 교실에서는 한 아이가 1분씩 발표를 한다고 치면 40분 수업 시간 중에 피드백을 주고받을 시간이 9분밖에 남지 않는다.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많은 요소들이 작용하겠지만 그래도 인원이 더 많았다면 이렇게 발표를 잘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죠.”
서울 강서구 송정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아이들이 25일 오전 수업을 받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경기 고양시 덕양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이경탁 교사도 7~8명이 줄어든 교실의 빈 공간이 주는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그는 지난 5년 사이 학생 28~29명인 교실과 20~21명인 교실을 모두 경험했다.
“학생 수가 적으면 토론 수업을 할 때 ‘ㄷ’자로 자리를 배치해보기도 하고, 원을 만들어보기도 해요. 아이들이 많으면 그런 건 상상할 수 없거든요. 공간의 여유와 쾌적함이 학습 효율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모둠별 프로젝트도 허겁지겁 진행하지 않고 아이들이 더 참여할 수 있죠.”
교사와 학생 간 상호작용이 많아지고, 수업 몰입도가 높아지면 관계의 질도 개선된다는 것이 이 교사의 설명이다. “확실히 아이들이 한명 한명 보이거든요. 20명이면 교사를 중심으로 가장 뒤에 있는 학생과의 거리도 훨씬 당겨져요. 공간이 주는 거리감은 아이들과 연결되는 심리적 거리감과도 연결돼요. 아이들 한명 한명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기도 해요. 그러니 (아이들이) 요구하는 것과, 어디를 어려워하는지를 빨리 파악하게 되죠. 30명과 20명 초반은 완전 다른 게임이에요.”
20명 이하 교실은 아이들 성장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까.
2013년 서울시교육청이 구로구 ㄱ중학교 2학년 학급당 인원을 기존 31.5명에서 23.6명으로 줄이는 시도를 했다.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가 이듬해 발표한 ‘학급당 학생 수 감축효과에 대한 참여관찰 연구’ 보고서를 보면, 당시 수업에 참여한 ㄱ중학교 교사 99%가 “효과가 있다”(아주 높다 84%, 조금 효과가 있다 15%)고 답했다. 교사당 학생 수가 줄면서 ‘수업→학생들의 개별학습→협동학습→학생 수준에 따른 차별화된 접근→교사의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교육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교실 내 사각지대 해소, 학생과 눈을 맞추는 수업, 학생끼리 활발한 의사소통, 수준별 개별학습 지도 확대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학생에 대한 접근도가 높아지면서, 학교폭력 전 단계의 조짐을 발견해 예방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3년간 12조원대 예산을 투입해 초·중·고교 학급당 평균 학생 수를 35명 이하로 낮추는 사업이 추진됐다. 이때 한국교육개발원이 낸 ‘학급 규모의 교육재정·경제적 분석’ 보고서를 보면, 교사 열에 아홉이 “(학생 수 감소로) 학생 관리와 지도가 쉬워졌고, 수업 집중도와 학생 상호 간 친밀도가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학생들 역시 “개인적 지도와 관심을 받기 쉬워졌다”, “수업 분위기가 좋아졌다”, “학급 운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내놨다. 보고서는 “특히 학습과 사회관계의 기초를 다지는 연령기의 학생들(유치원 또는 초등학교)이 교사의 관심을 많이 받아 동료 학생들이나 교사와의 상호관계에서 건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장 교사들은 ‘20명 이하 교실’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해 8월 전국 교사 40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55.8%가 학습 격차 해소 방안으로 ‘학생 수 감축’을 꼽았다. 지난해 광주교육정책연구소 연구에서도 교원 757명 가운데 ‘토의식 수업에 적당한 교실당 학생 수가 20명 이하’라고 꼽은 비율이 95.6%였다. 학생에게 발표와 질문 기회를 제대로 주기 위해서도 20명 이하는 돼야 한다는 응답이 97.5%나 됐다.
전교조는 지난 8월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 포기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앞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 3월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 법제화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일반 시민들 또한 지난해 9월 전교조가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한 ‘학급당 20명 이하’ 범국민 서명운동에 한달 동안 10만7420명이 참여했다.
학급당 50명을 훌쩍 넘었던 1980년대 교실 풍경. 연합뉴스
국회에서도 관련 법 규정 마련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학급당 최대 학생 수를 20명으로 제한하는 ‘교육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을수록 학습 여건, 방역에서 불이익을 받는데다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등교 일수가 학습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8월 관련 법은 ‘학급당 20명’ 대신 ‘학급당 적정 학생 수’로 바뀌어 통과됐다. 올 1월에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면서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 범위에서 교육감이 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으나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명은 국제적 교육 복지 수준과 키를 맞추는 기준이기도 하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교육지표 2021’을 보면, 오이시디 회원국의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는 평균 21.1명이다. 유럽 22개국 평균은 이보다 적은 19.5명이다. 한국은 23.0명이다. 30개 나라 가운데 일곱번째로 학생 수가 많다. 중학교에서는 국내 학급당 학생 수가 26.1명, 오이시디 평균은 23.2명이다.
혹자는 되물을 수 있다. 오이시디 회원국과 비교했을 때 2~3명 차이면 적은 편 아니냐고,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한 교실에서 50~60명씩 수업을 들었던 때가 불과 몇십년 전인데, 과밀학급 기준이 28명이면 과거의 절반 수준이 아니냐고. 이에 대해 교육단체 쪽에선 이렇게 반박한다.
“과밀학급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상호작용하기 어렵고,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학교가 추구하는 (개인별 맞춤형 교육) 방식이 절대 아니죠. 과거와 견줘 상황이 좋아졌다고 해도 학생 중심, 활동 중심 교육을 30명에서 2명을 빼놓은 학급에서 하긴 어려워요.”
(강양희 전교조 정책연구국장)
전경원 경기도 교육정책자문관 또한 비슷한 지적을 한다. 전 자문관은 지난 5월 ‘2021 교육현안 국회 연속토론회’에서 “발표와 토론, 프로젝트 위주의 학습을 교수학습 방법의 핵심으로 삼은 현재 교육과정과 가장 심각하게 불일치를 일으키는 지점이 바로 학급당 학생 수”라고 말했다.
교육 관련 단체와 정부, 국회 등이 오랫동안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논의했는데도, 왜 현실화하기 어려웠던 걸까.
우선 예산 문제가 걸림돌로 꼽힌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2024년까지 학급당 28명 이상 과밀학급 해소에 예산 3조원가량을 배정했는데, 이를 20명까지 끌어내리는 데 상당한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교실당 학생 수를 줄이려면 그만큼 학급 수가 늘어나야 하는데, 특히 도심에서 빈 교실 확보가 어렵고 최대 수만명에 이르는 교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초등학교 1학년부터 ‘20명 학급’을 시작하기로 한 세종시교육청. 세종/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아울러 교육부에선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급 인원 자연 감소 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학령인구 감소 추이를 보면 저희가 28명 (상한을) 해놨더라도 그 이후에는 25명으로 가다가 어느 시점에는 20명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추이를 보면,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학급 수 또한 줄여왔다.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2010년 대비 2020년에 초등학교는 416개, 중학교는 6178개 학급이 줄었다.
정부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세종시·울산시교육청이 먼저 ‘한 교실 20명의 벽’을 깨겠다고 나섰다. 세종교육청은 내년 관내 초등학교 1학년부터 53개 학급을 늘려 학급당 20명 상한을 두기로 했다. 울산교육청도 내년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급당 20명 상한을 두고, 나머지 2~6학년은 과밀학급 기준인 28명을 넘지 않도록 방침을 정했다. 모듈러(조립교실) 등을 활용해 공간을 확보하고, 기간제 교사 채용으로 교원 증원도 준비하고 있다. 노옥희 울산교육감은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은 코로나 이후 미래 교육을 위한 맞춤형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경탁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공교육이 질 높은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설 학원에서 10명 앉혀놓고 가르치는데, 학원 가면 더 잘 배운 것 같다는 말이 나오잖아요. 더구나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이 무언가를 경험하고, 배움을 확장하도록 하는 곳이에요. 질 높은 교육을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요? 컴퓨터도 중요하고 미래 가치도 중요한데, 일단 학생 한명이 교육받을 수 있는 ‘엔(n)분의 1’ 몫이 커지게 했을 때, 아이들이 자기주도적이 되고 참여도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